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으며, 나는 이 작가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그녀의 고요한 문장들은 고통과 사랑, 역사적 트라우마를 직시하게 만든다. 특히 이 작품은 타인의 고통을 헤아리는 불가능한 일에 도전하고 있다. 작가는 칼에 맞는 큰 상처를 묘사하기 전에, 손톱 밑에 살을 찌르는 작은 고통을 먼저 이야기한다. 손톱 아래 여린 살을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작은 상처조차 인간에게 얼마나 큰 아픔을 주는지 상기시킨다. 그것은 우리가 흔히 간과하는 작은 고통이 어떻게 인간을 무너뜨릴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단지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그 고통의 깊이가 전해진다.
이러한 고통은 제주 4.3 항쟁이나 5.18 광주 민주화 운동과 같은 대규모 참사를 겪은 이들의 아픔과 연결된다. 손톱 밑을 찌르는 고통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그들의 고통은 거대하고 처절했을 것이다.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국가폭력의 희생자들과 그 가족, 그리고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겪었던 고통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다. 한강의 고통 묘사는 역사적 사건들을 우리의 가슴속으로 끌어들이며, 그 고통을 과거의 일만이 아닌 현재 진행 중인 우리의 문제로 느끼게 만든다.
나는 20대 초반, 민주화 운동이나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에게 깊은 부채 의식을 느꼈다. 서울에 올라온 후 가장 먼저 찾아갔던 곳이 신촌의 이한열 기념관이었다. 그곳에서 이한열 열사의 일기를 읽으며, 어린 시절 5.18 광주 시청을 향해 울려 퍼졌던 방송 소리와 총성을 듣고 이불 속에서 떨었던 어린 소년이 결국 그 기억을 품고 독재에 저항해 앞줄에 서게 된 과정을 접하게 되었다. 나는 고등학생 때부터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내가 그날 그 자리에 있었다면, 종철이를 살려내라며 앞줄에 설 수 있었을까? 탱크가 다가오는데도 광주 도청에 남아 있을 수 있었을까? 그렇게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를 만들었기에, 나는 그들이 흘린 피에 대해 부채 의식을 품고 살아왔다.
한강 또한 광주 출신으로, 독재에 저항한 이들에 대한 부채 의식을 안고 이 소설을 썼을 것이라 생각했다. 1990년대 후반, 작가는 제주에서 세 달을 지내며 한 할머니에게서 제주 4.3 항쟁에 대해 들었다고 한다. 여기가 총에 맞아 죽은 이들이 쌓여 있던 곳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순간 이 소설은 시작됐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단순히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삶과 사랑을 이야기한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과 제주 4.3 항쟁을 다루며, 개인의 기억과 역사적 트라우마가 어떻게 교차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녀의 서술에는 가족의 사랑과 민족적 희생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겨 있다.
이 작품을 통해 한강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고통의 본질을 탐구하는 데 있다. 우리는 어떻게 고통을 견디고, 그 고통을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한강은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이야기한다. 그 고통 속에서 우리는 진실에 가까워진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사랑과 고통이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다시금 깨달았다. 고통을 겪는 순간, 우리는 진실에 다가설 수밖에 없다. 그것이 인간성의 본질이다.
예를 들어, 위안부를 다룬 영화 「눈길」을 보았을 때 나는 괴로움에 도중에 시청을 멈췄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진실을 직면해야만 그 고통을 잊지 않고, 비극적인 역사를 기억할 수 있다. 그래야만 공감하고 연대할 수 있다. 그래야만 인간성을 지킨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다. 찌르면 아플 줄 알면서도 신경을 잃지 않기 위해 바늘을 찌르는 것처럼, 우리도 직면하면 아플 걸 알면서도 인간성을 잃지 않기 위해 진실로 스스로를 찔러야 한다. 그것이 인간다움이자 사랑이다.
한강의 고통 묘사는 윤리적인 접근을 취한다. 화자가 가혹한 눈보라 속에서 빈사 상태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장면은 고통과 진실의 상관관계를 보여준다. 고통을 겪지 않은 사람은 함부로 그 진실을 마주할 수 없다는 듯, 끔찍한 진실을 알아가는 왕도는 비슷한 고통을 겪는 것뿐이라는 듯. 그래서 평론가는 이 책을 “재현의 윤리에 대한 가장 결연한 답변”이라고 평했다.
또한 작가는 학살의 폭력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기보다는, 피해자의 가족들이 겪는 내면의 고통과 절박함을 통해 그 참혹함을 전달한다. 어리고 약한 아이들이 맞고 죽는 장면을 보여주는 대신, 엉망이 된 자식을 살리려 피를 먹이는 가족의 모습을 그린다. 창자가 끊어지는 부모의 슬픔을 경험하고 나서야 우리는 피해자들의 고통에 조금이나마 다가갈 수 있다.
집에 있는 아버지가 동시에 서대문 형무소에 갇혀 있다는 서술은 또 어떤가. 이는 고통을 겪은 이들에게 그 고통이 결코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징한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여전히 전쟁의 트라우마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처럼 그들은 과거의 고통을 여전히 현재로서 경험하고 있다. 이 초현실적인 장면은 고통을 받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그 고통이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작가는 『작별하지 않는다』라는 제목이 "어떤 것도 종결하지 않겠다는, 그것이 사랑이든 애도든 끝내지 않고 끝까지 끌어안고 가겠다는 결의"라고 얘기했다. 나는 이 제목이 사랑하는 이의 고통을 짊어지며 애도를 끝내지 않겠다는 선언인 동시에 피해자는 과거의 고통과 영원히 작별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이중 독해했다. 세월호가 질린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드글거리는 세상에서, 이 소설은 피해자의 영원한 고통을 감히 과거로 치부하지 말라고 얘기한다. 작가의 윤리적인 접근은 작금의 한국 사회에서 찾아보기 힘든 품위와 인격을 보여준다.
한강은 소설 속 바다를 인간성의 메타포로 활용한다. 인간은 바다에 깊이 내려갈수록 숨이 막히고 고통스럽지만, 진실에 더 가까워진다. 이 과정은 민주화 운동이나 독립 운동에 헌신한 이들의 삶과 닮아 있다. 그들은 인간성의 바다 속으로 뛰어들어 진실을 찾아냈다. 우리는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한강은 이러한 질문을 던지며 인간이 인간답게 살고 싶게 만드는 소설을 쓴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단순한 소설을 넘어, 고통과 사랑의 본질을 탐구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인간이 어떻게 인간일 수 있는지, 사랑이 그걸 가능하게 하는 것 아닌지" 생각한다는 작가의 소설은 우리의 마음을 흔든다. 역사와 고통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 지에 대해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진다. 이 작품은 오래도록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 우리가 역사와 인간을 바라보는 방식을 끊임없이 성찰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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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
작가는 작별하지 않는다 기자 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사랑이라는 것 자체가 두 개의 삶을 살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나만의 삶이 아닌 여러 개의 삶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삶을 동시에 살게 하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할 때 내가 여기에 있지만 동시에 있는 것이고, 그 상태가 초자연성을 가지고 있지요.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의 마음이 그러한 간절한 상태라고 생각했고, 거기에 이르기 위해서 불가능하지만 애써봤던 소설입니다.”
나는 이 정의를 보고 엄마를 떠올렸다. 작가가 말한 '두 개의 삶을 사는 것'이라는 정의는 나와 엄마의 관계에 정확히 맞는 이야기였다. 엄마가 살았던 옛날 삶을 마치 내 것처럼 느끼곤 한다. 동생들을 업어 키우고, 가고 싶었던 대학에 가지 못하고, 혼자 자취하며 돈을 벌어야 했던 그 시간들을 내가 바톤터치를 받아 이어서 사는 것만 같다. 그게 아니면 엄마의 오래된 설움이 2024년의 나를 여전히 아프게 할 리가 없다. 나는 나만의 삶이 아닌, 엄마의 삶을 동시에 살고 있는 것 같다. 이에 관한 이야기도 언젠가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여담2)
왜 제주 4.3 항쟁은 ‘4.3 사건’이 공식 명칭인지 모르겠다. 난 그렇게 부르고 싶지 않다.
“제주4·3사건은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경찰·서북청년단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선·단정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p536>
그러니까
1. 3.1에 무장 경찰이 무고한 시민을 총살하자 제주 민심이 들끓어 민관 총파업을 했고 2. 이에 경찰과 서청의 탄압이 시작되자 제주 사람들 중 남로당 제주도당이 3. 5.10 남한 단독 선거와 반민주주의적 행태에 반대하며 + 북한과 통일된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4. 무장봉기를 일으켰다. 5. 이에 경찰은 오라리 방화사건을 일으키고 ‘무장대’에게 혐의를 뒤집어씌우는 조작을 감행하여, 그들을 무력 진압할 명분을 만들었다. 6. ‘무장대‘의 주도로 5.10 선거와 6.23 선거가 실패하자 정부는 대대적인 강경 토벌 작전를 시행해 제주도민 1/10에서 1/4을 학살했다. 7. 이 과정에서 ’무장대’도 우익인사나 경찰가족을 살해했으며, 무고한 주민들이 무수히 희생됐다.
나는 이를 세계적인 이념 전쟁의 축소판이었던 한국의 분단 상황 속에서 남한의 공권력이 민족 길들이기 차원으로 자행한 학살로 본다. 그렇기에 이는 국가권력자들이 부당한 폭력을 휘두를 때 맞서 폭력을 쓰며 싸우는 항쟁이었다.
https://jeju43peace.or.kr/kor/sub01_01_01.do
(+여담3)
스웨덴에 간 한강, 동화 속에서 5.18을 떠올리다
입력2017.05.20. 오전 11:02
https://n.news.naver.com/article/469/0000204061?sid=103
“고백하자면, 『사자왕 형제의 모험』과 그 소년들을 거의 잊은 채 오랜 시간을 살아왔다. 어린 시절에 가장 좋아했던 책들 중 한 권이라는 사실 외에는 실상 많은 것이 희미했다. 그러니 당연히, 『소년이 온다』를 쓰는 동안 이 오래된 책을 기억하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이제 삼십여 년이 흐른 뒤 다시 읽게 된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불꽃에 손바닥을 덴 것처럼 놀라며 깨달았다. 열두 살의 내가 어두워져 가는 방의 벽에 기대앉아 이 책을 쥐고, 무엇이 내 눈과 목구멍을 뜨겁게 하는지도 명확히 알지 못한 채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들의 의미를. 그 질문들이 여전히 내 안에서 생생히 살아 어른어른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그들은 그토록 사랑하는가? 그들을 둘러싼 세상은 왜 그토록 아름다우며 동시에 폭력적인가?
그 열두 살의 나에게, 이제야 더듬더듬 나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가 절망하는 거라고. 존엄을 믿고 있기 때문에 고통을 느끼는 것이라고. 그러니까, 우리의 고통이야말로 열쇠이며 단단한 씨앗이라고.“
한강 작가가 고통에 대해 말하는 소설을 쓴 것은 불가역적인 수순이었을 것이다. 인간다움을 향한 그의 뼈를 깎는 고찰이, 국가 폭력의 ‘피해자’는 오히려 그들 자신이 ‘피해자’로만 남지 않기 위해 인간다운 선택을 했던 고결한 인간이라는 빛나는 통찰을 길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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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사랑하는 한강 작가님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