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는 거문도에서 가장 똑똑한 학생이었다. 4명의 여동생과 막내 남동생를 말 그대로 업어 키운 엄마는 머리가 좋아서 육지에 있는 고등학교에 다녔다. 홀로 자취하며 자신을 부양한 엄마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대학이 아닌 시집을 갔다. 대학에 갔으면 잘 배웠을 사람이지만, 가난한 해녀 집안에서 등록금을 내줄 수 있는 건 아들뿐이었다. 만약에 내가 1960년대 초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아마 대학은 못 갔을 것이다.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모르고, 우리에게 언어가 없는 줄도 모르고, 여성의 주 영역은 가정이라 생각하며, 저임금 직업조차 갖기 어려워 순응하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나는 여성혐오를 배움보다 먼저 목격을 통해서 깨우쳤다.
우리 아빠는 위로 3명의 누나를 둔 막내아들이다. '막내아들과 그 누나들 이야기'는 비단 부모님 집안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나 또한 언니, 오빠 후에 계획 없이 생긴 애였다. 얼마나 많은 여성이 우연에 기대어 기적처럼 태어났을까? 남아선호사상은 가부장제가 수행하는 여성혐오의 극단을 보여준다. 1990년은 60년 만에 돌아오는 백말띠의 해였다. '백말띠 여아는 팔자가 드세다'는 속설 탓에 그해 여아들은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낙태 및 살해당했다. 그 결과 한국은 역대 최악 성비인 116.5를 기록했다. 나는 역사책에서 배운 제노사이드(Genocide)가 남 일이 아님을 알았다.
우리 오빠는 예의 바르고 싹싹하기로 정평이 났다. 어른들에게 인사도 잘하고, 부모님께 비싼 한우 선물을 턱턱 사주며, 사촌 동생들의 용돈도 챙겨주기 때문이다. 내게는 “xx 년아”라고 욕하고, 위협하고, 물건을 던져 맞추고, 죽여버리겠다 협박하는 사람이지만, 어른들에겐 듬직하기 짝이 없는 집안의 기둥이다. 그래서 나는 늘 강요받았다. 오빠에게 숙이고 들어갈 것을, 애교를 부릴 것을, 화해의 손을 먼저 내밀 것을. 하지만 나는 일방적인 폭력을 당했고 그 이유는 부모님, 언니, 오빠 친구들도 모를 정도로 내 잘못은 적다. 그런데도 부모님을 비롯한 어른들은 나에게 오빠와 사이좋게 지낼 것을 강요했다. 가정 폭력 피해 경험은 가부장제 사회의 남성성이라는 폭력의 본질을 직시하게 했다. 대부분의 폭력이 사적이고 개인적으로 이뤄지지만, 그것의 책임은 정부와 사법부 그리고 한국 사회의 여성혐오 문화에 있음을 알게 했다.
위의 경험들은 '페미니스트'라는 용어를 모르던 시절에 나를 페미니스트로 만들었다.
2016년,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로도 2020년 N번방 성 착취 사건, 2022년 인하대 강간 및 살인 사건, 2022년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 등 가부장제와 강간 문화 아래에 남성이 여성을 죽이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국가와 사법부는 가해자를 단죄하지 않았고, 언론은 페미사이드 범죄를 남성 가해자 개인의 문제로 축소하며 2차 가해했다. 이에 무력감과 두려움을 느낀 나는 피해자 페미니즘에 매몰됐다.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는데 매일 같이 여자들이 죽었다. 우연히 살아남았다는 감각이 나를 그들과 같이 죽였다. 길거리를 거니는 모든 여자가 유령처럼 보였다. 절망스러워서 탈코르셋도 하고, 각종 시위에도 나갔다. 연대를 몸으로 느끼며 용기를 얻고자 했다. 하지만 그 효과는 일시적이었다. 그만큼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삶이 척박했다. 이제는 피해자 페미니즘을 벗어나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새로운 미래를 얻을 수 있을지 고민했다. 이 에세이를 쓰면서 알았는데, 가장 먼저 할 일은 역사를 다시 쓰는 일이었다.
이건 페미니스트로서 나의 역사 다시 쓰기다.
첫 각성은 고등학생 때였다. 온라인 여성 커뮤니티를 통해 페미니즘의 목소리를 처음 듣게 되었다. 그곳은 여성에게 주어지는 꾸밈 노동에 대한 의문과 함께 MTF 트랜스 여성을 향한 의문을 던지는 곳이었다. 나는 모든 의문에 공감했다. 전자는 당연한 거였고 후자는 여성들의 증언이 뒷받침해줬다. 수술이나 치료받지 않고, 자신을 여성으로 느낀다는 MTF 트랜스가 여성 모임에 참여해 성추행 및 강간 시도를 했다는 증언들이었다. 그로 인해 커뮤니티 발 생물학적 여성만 안고 가는 레디컬 페미니즘을 추구하며 이화여대에 들어왔다.
새내기 시절의 나는 오만했다. 페미니즘 기본서가 하는 이야기는 여성들의 목소리로 들어 다 알고 있다고 여겼다. 트랜스와 함께 가야 한다고 말하는 서적들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여겼다. 관념적 젠더의 허상이 눈앞에 있는 실체인 자매의 안전을 위협하는데 이론적인 이야기나 한다고 여겼다. 그래서 젠더 개념을 버리면서 레즈비언은 안고 간다는 모순적인 결말을 내렸다. 그 모순을 알면서도 섹스와 젠더의 본질을 배우려 하진 않았다. 교차 페미니즘에 대한 책은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할 것 같았다. 책을 읽는 대신에 마블 영화에 나오는 타노스가 인류의 절반인 남성만 죽이는 사회를 상상했다. 물론 우리 아빠랑 좋아하는 남자 연예인, 일부 ‘정상남’은 뺐다. 그 생각이 너무도 모순적이라 나 자신이 한심하고 우스웠음에도, 기꺼이 ‘엉성한 페미니즘’을 이어갔다. 이성애 로맨스 콘텐츠를 좋아하고, 남자 아이돌을 좋아하고, 긴 머리를 하고, 가끔 화장하고, 그러면서도 ‘한남’은 모두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스스로 페미니스트라 호명했다. 가끔은 부끄럽고 죄스러웠다. 그런데도 ‘온전한 페미니즘’을 하는 사람으로 바뀌고 싶진 않았다. 숏컷을 했을 때 불편했던 기억, ‘온전한 페미니즘’을 하려다 나를 미워하게 됐던 기억이 이를 말렸다.
그때 무엇이 ‘엉성한 페미니즘’이며, 누가 나의 페미니즘이 엉성하다 지칭하는가에 대해 고민을 하게 만든 건 페미니스트인지 아닌지도 모를 사람의 글이었다. 우리 학교 커뮤니티에는 종종 블라인드 채용을 비판하는 글이 올라온다. “뽑고 나면 어차피 명문대생인데.”, “명문대생이 성실하고 똑똑하니까 명문대 들어왔지.”, “이게 역차별 아니면 뭐임?” 등의 주장을 보고 있으면 어떤 문구가 떠오른다. 레디컬 페미니스트 사이에서 주창되는 “정상에서 보자”다. 거친 논리적 점프가 있겠지만, 둘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 능력주의로 환원되는 적자생존* 논리다. ‘사회적 약자인 여성으로 태어났지만, 노력과 능력으로 차별을 극복해 정상에 올라가자.’ 이게 다음의 문장과 다를 게 무엇인가? ‘장애인으로 태어났지만, 노력과 능력으로 차별을 극복해 ‘슈퍼 장애인’*이 되자.’ ‘가난한 집안에 태어났지만, 노력과 능력으로 차별을 극복해 정상에 올라가자.’ 응용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때 비로소 내가 가진 페미니즘에 물음표를 던지게 됐다. 능력주의와 신자유주의와 결탁한 커뮤니티 발 레디컬 페미니즘은 내가 사랑하는 여성들을 버려야 가능한 것이었다.
내가 나온 고등학교는 지방에 있는 여고로, 대부분 학생이 맡은 바에 최선을 다하는 성실함을 갖추고 있었다. 그들은 선하면서도 영리했지만, 그들 중 명문대를 상징하는 인서울 대학에 간 이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나는 이화를 다니면서 고등학교 동창들이 이곳에 왔다면 성실하게 배워서 좋은 성적을 받을 뿐만 아니라, 뛰어난 발전을 이뤘을 거란 생각을 종종 했다. 이화는 입학한 사람이 누구든지 뛰어난 발전을 시켜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남들이 말하는 ‘좋은 대학’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좋은 사람’을 사귀면서 든 생각은 ‘다행이다’가 아니었다. ‘이렇게 달라도 되나?’였다. 우리가 모두 알고 있듯 한국의 입시는 단지 ‘노오력’만으로 원하는 곳에 갈 수 있지 않다. 특히 입시를 보좌하는 경제적 자본, 사회적 자본, 긍정심리 자본을 마련해주는 가정 환경은 우리가 태어날 때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런데도 한국 사회는 다른 출발선에 선 이들에게 교육이란 기회의 평등을 주고 있다고 말한다. 성공은 노력과 능력의 영역이라며 실패의 책임을 개인에게 떠민다. 한 발만 잘못 디뎌도 탈락하고 마는 레이스에서, 남들보다 뒤처진 출발선에서 달리기 시작한 이들이 앞선 자들에게 좋은 결승점을 빼앗긴다. 과연 이들의 밀려남을 개인의 노력과 능력 부족으로 돌려도 괜찮은가? 한국 페미니즘의 전신인 이화여대에서, 페미니즘과 상치되는 적자생존의 논리를 펼치며 명문대 출신이 아닌 학생들을 손쉽게 무능력하다고 단정하고 역차별 논리를 펼치는 게 괜찮은가? 처음부터 잘못됐다는 생각이 비로소 들었다.
처음으로 돌아가봤다. MTF 트랜스를 향한 적대를 그대로 받아들이던 때로. 그때는 버리고 가는 존재가 오로지 트랜스 여성으로 끝날 줄 알았다. 그러나 다층적인 매트릭스 안에 살아 있는 여성들이 하나하나 버려지기 시작했다. 그 안에는 저학력 여성, 장애 여성, 가난한 여성부터 긴 머리 여성, 화장하는 여성, 기혼 여성 등 다양한 이들이 있었다. 실제로 이화여대에도 “정상에서 만나자”고 말하는 비장애인 여성과, ‘정상성’의 반대 지점에 존재하며 그 말이 공허할 뿐인 장애 여성이 공존한다. 이들의 차이는 존중되어야 하나, 더 큰 목소리와 더 작은 목소리로 나뉘기만 했다. 물론 두 목소리 모두 이화를 벗어나면 들리지도 않는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서 페미니즘이 여성 인권신장만을 위하는 협소한 의미에 그쳐선 안 됨을 알았다. <코로나 시대의 페미니즘>에서 읽은 것처럼, 사회 어디에나 ‘여성’의 자리가 있다. 남성-여성, 백인-유색인, 이성애자-동성애자, 비장애-장애, 고학력-저학력, 부자-빈자 등에서 후자가 그렇다. 이때 ‘여성’의 자리에 있는 이들을 사회적 약자라고 부른다. 이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살아 있는 존재들이 그 교차성을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만 선택적으로 해방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가 연결되어 있음을 증명하는 사례로는 장애인 교통권을 위한 지하철 역내 엘리베이터가 있다. 해당 엘리베이터는 장애인뿐만 아니라 노인, 유모차에 탄 영유아, 큰 캐리어를 끌고 가는 비장애인, 일시적으로 몸이 좋지 않은 사람에게도 편리함을 준다. 약자를 위한 사회가 곧 모두를 위한 사회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러한 생각 끝에 결론을 냈다. 우리는 사람이 가진 특성으로 차별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모두가 자신이 가진 약자성을 개성으로 존중받는 사회, 각자의 역량을 발휘해 먹고 살 수 있는 사회. 그런 사회를 만들 필요를 느꼈다.
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하면 가능할까? 내가 레디컬 페미니즘을 할 때 거부했던 ‘뜬구름 잡는 소리’와 다를 게 무엇인지 모르겠었다. 이상적이기만 한 신념을 어떻게 현실로 끌어올 수 있을지 고민이 깊어졌다. 고민을 해결하기엔 내가 모르는 게 많았다. 이 가치 규범은 언제 어떤 사회적 맥락 안에서 정해진 것인지. 날 때부터 타고나는 자연적인 특성에 가치평가를 해온 주체는 누구인지. 모두가 노력이나 능력만으로 강자의 자리에 설 수 없다면, 약자의 자리에 선 자들은 무엇을 통해 살아남아야 하는지. 해답을 알기 위해 책을 읽고, 강연에 참석하고, 강의를 듣는다. 그것이 나의 페미니즘 현주소다.
엉망으로 얽혀 있는 나의 페미니즘 역사를 정리하고 나니, 새삼 페미니즘에 감사하다. 페미니스트들에게 페미니즘은 ‘빨간약’으로도, ‘나를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로도 불린다. 나는 페미니즘을 ‘나를 구원하러 온 나의 구원자’라고 새롭게 호명하고 싶다. 페미니즘은 양가적이고 복합적인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해줬다. 묻혀 있던 본질에 질문을 던지게 해줬다. 누군갈 버리고 가기보단 함께 가는 것을 꿈꿀 수 있는 상상력을 줬다. 나의 페미니즘은 여성이 안전한 사회, 여성도 성공할 수 있는 사회만을 추구하지 않는다. 이를 모두 포괄하는 사회, 즉 약자가 약자성을 극복하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사회를 추구한다. 그런 사회를 위해 나는 ‘모두의 페미니즘’이라는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슈퍼 장애인 : 장애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을 말한다. 헬렌 켈러, 베토벤, 스티븐 호킹 등이 있다.
*적자생존 :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진화의 승자가 신체적으로 강한 최적자가 아니라 다정한 자였다고 새롭게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