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miniscence

인생 최초의 기억과 첫사랑

by 김영원

https://youtu.be/mlFDY5TMgeg


심리학에서 Reminiscence는 기억한 사항이 그 직후보다도 어느 정도 시간이 경과한 뒤에 명확하게 생각나는 일, 즉 잠재적 기억을 뜻한다.


나는 어릴 때 기억이 거의 없다. 원체 남의 얼굴이나 이름을 기억하는 데 젬병이었다. 아마 쓸모없다고 생각해 지운 것 같다. 나는 늘 선택적으로 기억해왔으므로.


그럼에도 끌어모은 유치원 시절 기억이 2가지 있는데, 하나는 유치원 끝나고 집에서 엄마랑 커피에 에이스를 적셔 먹던 느지막한 오후다.


해 질 녘, 덥지도 춥지도 않은 초여름 무렵이었다. 거실 창에서 노을 해무리가 투과돼 부엌에 선 엄마를 비췄다. 거실에서 나는 에이스가 커피에 퐁당 빠져 어쩌지 어쩌지 하고 있었다. 곧이어 엄마가 숟가락을 들고 와 웃으면서 건져줬다. 별일 아니란 듯이.


평화로웠고, 조용했고, 둘밖에 없었다.


이것이 나의 인생 최초의 기억이다.

EXO EX'ACT 앨범 Monster ver. 인터뷰


다른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인생 최초의 기억은 어떨까? 따뜻했으면 좋겠다. 꼭 최초가 아니라도 언제든지 주머니에서 꺼내 쬐는 모닥불 같은 기억을 안고 살면 좋겠다. 살다 보면 우연히 찾아오는 이해가 목구멍을 간질이는 순간이 많았으면 좋겠다. 좋은 것은 늘 빠르게 도망가니까, 그런 순간을 잃어버리지 않게 꽉 쥐고 살면 좋겠다. 그렇게 늘 무언가를 만지고 있는 사람으로 살면 좋겠다.


다른 하나는 울고 있던 기억이다. 그날은 반배정이 나온 날이었다. 꽃잎반에 가고 싶던 나는 열매반이라는 청천벽력 소식과 함께 새 크레파스를 선물 받았다. 갖고 싶던 선물을 받고도 울었다. 첫사랑이 꽃잎반에 간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물 받은 크레파스 뒤편에는 아빠의 정갈한 글씨로 열매반이라 적혀 있었다. 못내 서러워 그 위에 꾸불꾸불하게 꽃잎반이라고 덮어쓴 기억이 있다. 그럼에도 다음 해 나는 열매반으로 등교했고 성실히 다녔다.


7살. 같은 시이지만 멀리 이사를 갔다. 유치원은 1시간씩 통학하며 졸업했다. 다음 해, 집 근처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유치원 친구들과 멀어졌다. 자연스러운 망각이었다. 날 울게 했던 첫사랑의 얼굴도, 그 존재 자체도 잊게 됐다.


그러다 초등학교 5학년 때쯤, 이사하기 전에 살던 곳 근처 이마트에 갈 일이 있었다. 가족과 장을 보고 계산하는데, 그 앞 맥도널드에서 소프트콘 먹는 남자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그 애다. 하고 알아봤다.


어떻게 알아봤는지 모르겠다. 심지어 나보다 한참 어려 보였다. 그 애도 나만큼 나이를 먹었을 테니 적어도 초등학교 고학년처럼 보여야 하는데 아무리 봐도 저학년 같았다. 그럼 그 애가 아닌 건데 어떻게 알아본 걸까. 그 애를 닮은 친동생인가 싶어서 옆에 있는 형의 얼굴도 봤는데 글쎄, 전혀 모르겠더라. 이상하게도 어린아이가 걔가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람의 얼굴과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편이라 함부로 확신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내 감과 직관이 감히 확신했다. 꿈인가 싶어 손가락을 꺾어볼 만큼 진심이었다. ‘내가 꽃잎반에 가고 싶었던 이유가 쟤였는데.’하는 속마음이 들려와서 ‘그랬어?’ 하고 놀라기도 했다. 이러는데 어떻게 그 애가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겠나. 그 애가 아니면 어떻게 존재도 잊고 지낸 애를 알아볼 수 있겠나. 대체 어떻게 페이스 잠금처럼 찰나에 기억을 해금한 걸까?


난 사람을 기억할 때, 그 주위를 떠다니는 입자와 분위기를 각인해 기억한다. 새로운 사람을 기억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또 쉽게 잊는 이유다. 그때 롯데리아 소프트콘을 먹고 있던 어린아이에게 그 애와 같은 입자를 느낀 것 같다. 얼굴도 존재도 잊었지만 그것만은 기억하고 있었던 듯 하다. 둥글고, 모호하고, 연약하고, 그러면서도 내게 호의적이라 애먼 심장을 쿵 떨어트리던 그 애의 입자를. 추측하건대 뇌가 나에게 환대해준 사람을 나도 모르게 깊숙이 저장해둔 것 같다. 그 애가 또래에게 받은 첫 환대의 주인이었나.


마트에서 본 어린 아이에게 이름을 묻고 싶었는데, 그러면 안 될 거 같아서 말았다. 그 애 이름도 모르는데 물어서 무엇하겠나. 이제 저 애가 그 애가 맞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이거다. 그 애가 내 기억 속에서 되살아나는 순간이 얼마나 아름답고 다정했는 지. 잊고 지내던 인연을 평생 잊지 않도록 되새기면서 내가 얼마나 안온함을 느꼈는지. 꼭 해무리를 받은 오래된 벽지 같았다. 주황이 너울지는 느낌. 편안하고 포근했다. 다정한 호의와 환대의 기억.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여전히 그 애가 기억나지 않는다. 다시 만나면 알아볼 자신도 없다. 그래도 이제 죽을 때까지 그 애를 잊지 않을 자신은 있다. 그거면 나름 해피엔딩 아닐까?


사람들이 사귄 최초의 친구들이 궁금하다. 제대로 된 숫자나 한글보다 먼저 배운 친구들. 그때를 되찾으면 우리가 우리를 더 잘 알 수 있을 거 같다.


그걸 되찾아 나에게 들려주면 좋겠다. 서투르게 기억을 더듬으며 두서없이 꺼내는 이야기가 듣고 싶다. 편안함 속에서 맑은 낯빛을 띄운 사람들의 진심 어린 목소리를 듣고 싶다. 그건 마치 커피에 에이스를 적셔 먹던 느지막한 오후로 돌아간 기분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최초의 기억. 최초의 친구. 곰곰이 생각해보면 강렬한 기억이야말로 다정한 기억일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내가 힘을 얻기 위해 자주 꺼내 먹다 보니 기억에 남는 거겠지. 불면증 같은 기억보다 홍삼 선물 같은 기억을 자주 떠올리고 살고 싶다. 그럴 때마다 나부터가 누군가의 홍삼 선물 같은 기억이 되고 싶다. 아니, 그런 기억 말고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애처럼 다정해져야겠지. 호의를 베풀고, 수용해야겠지.


역시,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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