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개들이 새끼를 밴 어미 토끼들까지 다 물어 죽였어요. 용케도 생후 한달된 토끼 한 마리만 살아 남았는데 이녀석을 볼때마다 짠하고 눈물이 나요. 부모를 모두 잃었으니...”
전남 담양에서 축산농장을 운영하는 문희주씨(70).
지난 20일 외출을 마치고 농장에 돌아온 그는 축사 앞에서 그대로 얼어 붙었다. 농장 한켠에 자리한 토끼와 닭 ‘사육장’이 ‘살육장’으로 처참하게 변해 있었기 때문이다.
들개 2마리가 사육장에 침입해 토끼 40마리를 순식간에 물어 죽였다. 빈틈을 보인 철조망을 이리저리 물어뜯은 후 충실히 사냥본능에 따랐다. 들개들은 출산을 앞둔 토끼 10마리도 모두 물어 죽였다. 이 과정에서 새끼토끼 한 마리만 구사일생 살아 남았다. 몸집이 작아 구석의 볏집더미에 숨어 있어 목숨을 구한 것이다.
바로옆 닭 사육장도 폭격을 맞았다. 들개들은 청계 13마리의 숨통도 끊었놓았다. 수북하게 쌓인 깃털을 보면 아수라장 같은 당시의 모습이 투영된다. 현재 살아남은 닭들은 트라우마에 빠졌다. 며칠째 달걀을 낳지 못하고 닭장 지붕위에서 꼼짝도 못하고 있는 상태다.
주인을 잃은 떠돌이 개들의 습격으로 농가의 한숨이 깊어가고 있다.
인간이 기르다 버린 개들이 야생화 되면서 본능으로 가축들을 물어 죽이면서 농가 피해가 현실화 되고 있다. 이들은 배가 고파 먹이를 찾는 경우도 있지만 재미와 사냥본능으로 가축을 죽이기도 해 대책마련이 요구된다.
실제 도시와 달리 농촌에서는 들개들이 먹이 활동을 위해 인근 농가를 침입, 피해를 주는 사례가 보고 되고 있다.
24일 담양소방서, 119구조대원 등에 따르면 해마다 8만여건에 달하는 반려동물이 버려지고 있다. 병이 들거나 경제적으로 감당하기 힘들 때 유기하는 경우다. 이 중 상당수가 개와 고양이과 동물이다. 특히 중대형견의 경우 야생화 과정에서 공격본능이 강해지는데다 인간과의 접촉 자체를 꺼리면서 문제가 되고 있다. 일부는 가축과 사람에게 공격본능을 보이며 피해를 줄 수 있다.
하지만 해결과정은 쉽지 않다. 마취총과 덫 등을 사용하지만 인간을 극심히 경계하면서 포획이 녹록지 않아서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반려동물 양육시 끝까지 책임지는 자세다. 키울 능력과 자질이 부족하면 애당초 기르지 않는것도 한 방법이다.
포획한 유기동물은 지자체 동물보호센터에서 관리한다. 동물보호법에 따라 공고가 있는 날부터 10일이 경과해도 소유자 등을 알 수 없는 경우 해당 지자체가 소유권을 취득한다. 이 가운데 상당수가 안락사된다.
피해농민 문희주씨는 “떠돌이개 6마리 뭉쳐 다니면서 가축과 농작물 피해가 나타나고 있다. 몇 번의 공격으로 크고 작은 피해가 발생했는데 이제는 개만 보면 울화통이 터진다” 며 “119 구조대원이 출동해 들개 2마리를 포획, 동물보호센터에 보냈다. 다같은 동물인데 마음은 아프지만 우리도 살아야 할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15년 경력의 119소방구조대원 A씨는 “신고를 접수받고 수백번 현장에 출동했는데 이번 사례는 전국적으로 보기 드문 케이스” 라며 “메뉴얼에 따라 살상 위험이 있는 동물은 마취총으로 완전 진압하고 일부는 동물보호센터에 보내 처리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