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은 다양한 스타일의 앨범과 싱글들이 특히 많이 발표된 한 해였다. 그리고 아티스트의 유명세나 앨범의 판매량, 해당 음악이 대중문화에 끼친 영향력 등 다양한 이슈들이 다양하게 논의된 해이기도 했다. 그 시간 동안 K-POP 씬에서 큰 존재감과 의미를 가진 앨범과 싱글 8개를 소개하며 2018년을 돌아보자. 소개된 순서는 순위와는 무관하다.
정규 앨범 [Perfect Velvet]은 실험적인 사운드와 독특한 이미지 컨셉이 돋보이는 앨범이었다. 레드벨벳은 긴장감과 불안을 유발하는 플럭신스 사운드와 레드벨벳 특유의 그로테스크한 아트워크들은 '호러'라는 새로운 장르적 가능성을 열었고 아이돌 팝 씬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다. [The Perfect Red Velvet]은 정규 앨범의 성과 위에 레드벨벳이 그동안 '벨벳' 컨셉의 앨범들을 통해 시도해왔던 R&B적 요소들과 SM엔터테인먼트 특유의 정교한 프로덕션이 더해져 최고의 시너지 효과를 낸 앨범이었다. 감각적인 신스 사운드와 트랩 비트의 과감한 조합과 멤버들의 탄탄한 보컬이 돋보이는 'Bad Boy'는 전작에서의 서늘한 이미지 컨셉, 태도와 맞물리며 매우 입체적이고 독특한 생명력을 가지게 되었다. 아이돌 팝 씬에서 지금 레드벨벳만큼 사운드적으로 탄탄하면서도 실험적이고 신선한 느낌을 동시에 전달할 수 있는 팀은 몇 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 앨범.
청량한 팝 댄스나 깊은 R&B, 부드러운 어쿠스틱 사운드까지 종현은 다양한 스타일과 장르의 음악들을 선보여왔다. [Poet|Artist]는 그의 디스코그래피에서 들을 수 있었던 많은 음악적 요소들을 재확인하고, 그의 보컬과 작사 및 작곡, 프로듀싱에 대한 열정과 능력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앨범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의 과거 스타일에 머무르지 않고 다음의 목표를 향해가는 진취성과 실험성을 갖춘 곡들 역시 돋보였다. '환상통 (Only One You Need)', 'Rewind', '하루만이라도 (Just for a day)'과 같은 트랙들은 지난 종현의 앨범에서 들을 수 없었던 태도와 스타일의 곡이었다. 그 완성도나 성취와 함께, 지난 행보를 정리하고 다음을 준비하던 그의 행보를 더 이상 우리가 함께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아쉬움을 가지고 자꾸 들여다볼 수밖에 없는 앨범이다.
힙합과 뭄바톤, 댄스는 최근 몇 년간 아이돌 팝 씬에서 가장 사랑받은 요소들이었다. (여자)아이들의 [I AM]은 이런 트렌드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은 앨범이다. 보통 이렇게 트렌드에 충실한 앨범들은 홍수처럼 나오는 신곡들 사이에 묻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여자)아이들은 같은 해에 데뷔한 어떤 그룹들보다 성공적인 성과를 거뒀다. 정교하고 화려한 안무와 멤버들 각각의 역량이 탄탄한 점도 그들의 무대가 어딘가 달라 보이도록 만든 요인이지만 그중 돋보이는 것은 소연의 송라이팅 능력이다. 멤버들의 특장점을 최대한 반영한 관찰력과 자신의 랩이 어디에 들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감각, 곡의 전체 구조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능력을 갖춘 소연은 앨범 대부분의 작사, 작곡, 편곡에 참여했다. 지금까지 곡을 쓰는 걸그룹 멤버는 많았지만, 곡을 쓰는 남자 아이돌에 비해 비교적 주목받지 못하는 것이 아이돌 팝 씬의 폐단이었다. 소연과 (여자)아이들은 그 경향성을 뒤집고 걸그룹의 음악을 감상하는 새로운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환기시켰다.
화려한 뮤직비디오와 쫀득하고 파워풀한 힙합 댄스 음악은 오랫동안 YG의 가장 강한 색이었다. 그리고 블랙핑크는 지금 현재 YG 고유의 음악을 선보이고 있는 사실상 유일한 팀이다. 그렇지만 블랙핑크는 단지 YG의 음악을 리바이벌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거칠고 날카로운 사운드의 타이틀 곡 '뚜두뚜두(DDU-DU-DDU-DU)'에서 멤버들은 정확하게 나뉜 파트 안에서 최고의 존재감과 역량을 드러내면서도 잘 정돈된 하나의 실루엣을 해치지 않는다. 서정적인 벌스와 질주하는 듯 한 코러스의 대비가 인상적인 'Forever Young'에서도 멤버들은 곡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타면서도 독특한 음색으로 정체성을 드러내길 꺼리지 않는다. YG가 지금까지 선보인 많은 팀은 멤버 각자의 캐릭터가 뚜렷하게 드러나는 경향성이 강했지만, 이렇게 무대 위에서 하나의 팀으로서의 정체성을 강하게 드러내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이는 오히려 정석적인 아이돌 프로듀싱의 법칙인데, 블랙핑크는 두 방향성에서의 어필을 모두 성공적으로 해낸 팀이다. 2년간에 걸친 블랙핑크의 출사표는 [SQUARE UP]에서 완전해졌다.
엠버는 믹스 테이프 [ROGUE ROUGE]를 통해 K-POP 씬에서 가장 아이코닉하고 중요한 아티스트가 되었다. [ROGUE ROUGE]는 지금까지 엠버의 디스코그래피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던, 정석적인 팝과 감성적이고 세련된 사운드와 엠버가 오랫동안 해온 랩을 내려놓고 온전히 보컬로 채웠다는 점에서도 매우 도전적인 시도였다. 그렇지만 가장 주목할만한 부분은 메시지이다. 엠버는 믹스테이프 자체와 인터뷰 등을 통해 LGBTQ 커뮤니티에 대한 연대를 약속하고 K-POP 산업 내의 여성으로서 경험하는 편견과 차별, 자기혐오를 극복하는 과정을 그려냈다. [ROGUE ROUGE]는 지금의 K-POP 산업 내에 있는 여성과 소수자들,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는 팬들이 앞으로의 흐름을 어떻게 이끌어 나가야 할 지에 대해 제시한다. 그리고 그 흐름의 선두에는 엠버가 있을 것이다.
아이유는 꽤 오랫동안 대중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에 대해 꼬집는 곡들을 발표하곤 했다. 그는 '누구나 비밀은 있다'나 '스물셋'을 통해 이미 스스로의 생각과 입장을 밝힌 바 있지만, 삐삐는 앞선 두 곡에 비해 매우 직설적이다. "요즘엔 뭔가요 내 가십", "요새 말이 많은 걔랑 어울린다나", "또 나만 나뻐" 같은 가사는 아이유를 둘러싼 가십과 대중들의 판단을 빙빙 돌리지 않고 그대로 옮인다. 이런 직접적인 가사를, 가벼운 비트와 경쾌하고 아기자기한 신스 사운드의 위에서 아이유는 그의 서정적이고 아날로그적인 음색과는 조금은 다른 표정의, 시니컬하고 툭툭 내뱉는 듯한 말투로 노래한다. 그동안 자신을 둘러싼 소문과 공격에 대해 이야기하는 아티스트들은 적지 않았다. 아이유의 이야기는 수년 전에도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하고, 또 각기 다른 표정과 음색과 장르를 통해 이어지고 있다. 그의 곡들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스트리밍 되었고, 그 경고에도 불구하고 또 그를 둘러싼 가십은 이어지고 있다. 아이유의 디스코그래피에서, 그리고 2018년의 K-POP에서 가장 부조리하고 또 그렇기에 더 큰 의미와 상징을 가질 수밖에 없는 곡.
오랫동안 좋은 사운드를 촘촘하게 쌓아 올려 최상의 구성을 만들려는 SM의 집착이 가장 잘 드러난 앨범이다. 실험적인 4집에 비해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웰메이드 앨범'에 가까운만큼, 장르성을 반영하려는 시도가 눈에 띈다. 곡을 구성하는 사운드 소스와 연주는 촘촘하고 정교하게 쌓여 있고, 멤버들의 능수능란한 보컬, 그를 믹싱하는 감각과 배치 역시 매우 노련하다. 훌륭한 비주얼 컨셉과 메세지성이 짙은 곡이 많았던 한 해였던 만큼 전형적인 컨셉이 아쉬웠지만, 아이돌 팝의 퀄리티가 어느 수준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 새로운 지점을 제시한 앨범.
'가시나'와 '주인공'으로도 이미 놀라운 성취를 거두었지만, 원더걸스 활동을 포함해 선미가 오랫동안 보여줬던 레트로와 선미의 입체적인 캐릭터가 합쳐져 가장 독보적이고 생동감 있는 앨범이 나왔다. 선미 특유의 즉흥적인 안무나 표정 연기, 뚜렷한 취향의 아트워크는 그 어느 때보다 돋보이고 신스팝과 유로 디스코와 같은 장르를 세련된 사운드로 풀어낸 선미의 송라이팅 능력으로 그만의 독특한 세계관을 경험할 수 있다. 자신을 함부로 정의하거나 통제하려들지 말라는 메세지성 역시 3부작이라는 시스템 안에서 점점 단단하고 명확해졌다. 지난 2년간 여성 아티스트들에 대한 대중들의 주목도가 올라가고 많은 여성 아티스트들이 조금은 더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활동을 이어갈 수 있게 한 원동력은 선미였다. 앞으로의 K-POP 씬을 지탱할 그의 새로운 시작이 될 앨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