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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리 Sep 28. 2020

새벽 네시의 사람들

짧은 여행을 간다고 새벽 네시부터 설레는 마음으로 집을 나서던 날이다. 7월 초여름, 동이 트기 전 새벽 온도는 알맞게 시원했고 며칠 전 새로 산 원피스 치맛자락 속으로 걸음마다 간지러운 바람이 넘나들었다.


서울역까지는 약 한 시간이 걸렸다. 다행히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었다. 새벽 네시. 평소라면 한참 꿈속을 유영하고 있을 시간. 남들도 다 그럴 거라고 알고 있는 그 시간. 정류장에서 기다리며 몇 대의 버스를 보냈는데, 놀랍게도 꽤 많은 승객들을 태우고 있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곧 내가 기다리던 버스가 도착했다. 여기에도 몇몇의 승객들이 보였다.


새벽 네시는 설령 일곱 시가 출근시간이라 할지라도 너무 이른 시간이다. 장장 3시간이 걸리는 통근 거리라면 말이 되겠지만 흔치는 않으니까. 그렇다면 퇴근 시간일까? 이도 아닌 것 같다. 나는 나인 투 식스 회사원 경력이 전부니까, 미치는 생각도 이 뿐이다. 어쨌든 분명 그들은 나와 다른 일정을 소화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새벽 네시에 어딜 가는 것일까? 앞에서 두 번째, 울 엄마 또래로 보이는 파란색 폴리 셔츠를 예쁘게 차려입은 아주머니는 꾸벅꾸벅 졸면서 버스의 흔들림에 몸을 맡기고 있다. 그 뒷자리엔 도수 높은 안경에 하얀색 캔버스 백팩을 멘 앳되 보이는 학생이 열심히 핸드폰을 한다. 맨 뒤에서 네 번째, 캡 모자에 그을린 얼굴을 한 다부진 체격의 중년의 남자는 한참을 졸다가 크고 뚱뚱한 가방을 움켜쥔 채 내릴 역을 놓칠까 눈을 부릅뜬다. 내 앞의 남자는 족히 40은 넘었을 것 같은 외형에 목덜미와 어깨의 뼈가 그대로 드러날 만큼 말랐다. 이 사람은 뭐가 바쁜지 한참을 통화한다. 버스가 노선에 맞춰 툴툴거리며 제길을 가는 동안 창밖의 하늘은 어느새 맑은 하늘빛을 띄고, 계속해서 새로운 사람들이 타고 내린다. 사람들은 어딜 이렇게 아침부터 바삐 갈까? 알록달록 꽃이 그려진 원피스에 여행용 에코백을 매고 앉아서 상상하다가 어느새 서울역에 도착했다.


코세 글자 때문에 답답한 마음에 바다라도 보자고 당일치기 강릉여행을 떠나는 초입부터 설렌다. 버스 안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거운걸 보니 이 설렘은 진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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