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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리 Jun 29. 2020

퇴사의 기쁨과 슬픔

나는 마치 학교를 졸업하는 마음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를 받으며 퇴사했다. 퇴사를 결정한 건 내가 아니라 회사였지만 정말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코로나 이후 회사의 상황은 점점 기울었기에 구조조정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왔다. 그런 와중에 나도 퇴사자 명단에 이름이 올랐다. 이 결정은 분명 급작스러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선물처럼 다가왔다. 내 시간은 이제 회사가 아닌 나를 위해 온전히 쓰일 수 있게 되었다.


브런치에 ‘회사원’이라고 나를 수식하고 글을 올린 날부터 약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퇴사 후의 삶을 상상만 했다. 쉬이 퇴사를 결정하지 못한 겁쟁이에게 회사가 퇴사하라며 결국 용돈을 쥐어 준 모양새가 되었다. 나의 첫 직장에서의 퇴사는 이렇게 찾아왔다.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 회사에서 견디어 냈던 많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앞으로의 만남을 다짐하며 격려를 아끼지 않은 팀장님들, 치열하게 부딪혔던 동료들과 뜨거운 안녕을 외쳤다. 우리는 일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했기에 울고 웃을 수 있었다. 그리고 진심으로 서로의 앞날을 응원하며 길게 인사했다. 노란 색깔이 금빛과 비슷해서 돈이 들어온다는 의미를 가진 해바라기를 한 아름 안고 마지막 퇴근길에 올랐을 때, 난 벅찬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버스 창으로 바라본 노을이 유난히 더 노랗게 남산타워를 감돌고 있었다.


입사 이후의 삶은 이전의 것과 많이 달라서 회사 안과 밖의 삶을 이분법적으로 사고하는 버릇이 있었다. 내 인생의 키를 회사가 쥐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고, 삶의 대부분이 회사를 중심으로 하는 반경 몇 미터 내로 흘러갔다. 그런데 이제 그 중심이 내가 되었다. 갑작스레 새로운 챕터가 열렸지만 어떤 이야기로 시작해야 할지 걱정보단 설렘으로 가득하다. 취업이 쉽지 않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지만 지금 내 시점에서는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우쳤기 때문이다. 이제 이 키를 내가 잡고 항해할 것이다.


힘듦을 이겨내는 법 중에 이런 방법이 있다. 내가 두렵다고 생각하는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하는 것이다. 딱 1년 전에 기록한 걸 들춰보니, 나는 30살인데 백수로 있는 것이 가장 두렵다고 써 놓았다. 어라, 내가 지금 딱 그 상황이 되었는데? 오히려 가슴 뛰는 기쁨을 맛보았다. 종종 내가 상상하는 최악은 상상 속에 있을 때 더 끔찍한 법이다.


일은 내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부분이다. 나는 놀이만큼이나 노동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제부터 지속적으로 노동 가능한 ‘나’를 만들기 위해서 스스로에 대해 고찰하고 투자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진정 기쁜 마음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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