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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쳐야 산다'는 내러티브

by 이상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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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학기 강의를 마치고 한동안 열어보지 못했던 메일함을 열어보니 위와 같은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중요한 뉴스로 보이진 않지만 오랜만에 자리에 앉아 의자나 데피고 있으니 이런 저런 단상들이 떠오르고 연구 워밍업 겸, 입력창을 열어 생각들을 적어보았다.


"저상장 시대, 뭉쳐야 산다"—맞는 말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어쨌든 이렇게 경제 전체 또는 특정 산업군의 성장이 둔화될 때마다 이렇게 기존 사업자들의 인수합병을 통한 대형화가 이슈되는 것이 새로운 일은 아니다. 또 그럴 때마다 이를 독과점 관점에서 심사하고 필요한 경우 제재를 부과하는 경쟁당국(한국의 경우 공정거래위원회)의 역할론이 쏟아지는 것도 마찬가지고.


이후의 전개도 식상하리만큼, 거의 언제나 같다. 기존 기업들을 중심으로, '경제가 어려우니 규모의 경제 실현이 필요하고, 그러니까 '예외적'으로 독과점적 결합을 승인해달라고, 그래야 한다'는 주장이 이뤄지고, 그러면 일부 친시장 성향을 주장하는 언론들이 이러한 (반시장적) 주장을 받아쓰면서 경쟁당국을 압박한다. 이때 쓰이는 당국의 "엄격한 독과점 심사가 걸림돌"이라는 표현은 만국 공통의 교과서적 표현이다.


(관련해서는 내 지난 글, ''친성장 기업결합 정책'에 대해서' 참고.)


정말로 시장 경쟁이 아닌 인위적인 독과점 형성 방식으로 더 큰 기업을 만드는 게 이 경제 성장과 사회 전체에 도움을 줄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아니라고 알고 있고 그렇게 생각하지만, 과거 한국처럼 산업화 경험도 없고 자본 축적도 이뤄지지 않은 그런 특정 상황이라면 어느 정도는 부작용을 감수하는 극약 처방으로서 효과가 있을 수 있으니, 다른 예외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할 따름이다.


(물론 과거 정부 주도 성장 과정의 한국에서도, 정부의 각종 특혜와 보호를 받는 국내 기업들간에 치열한 수출 경쟁이 없었다면 인위적인 자본 집중은 그대로 폐해만 낳았을 것이다.)


하지만 산업정책과 경쟁정책에 관한 논의와는 별개로, 위와 같이, 경제 성장이 둔화될 때마다 고개를 드는 '뭉쳐야 산다' 같은 주장에는,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본질을 호도하고 일반 사람들을 오도하는 점들이 많아 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간단히 짚어보면, 첫째는, 경제 위기 상황에 대한 고려는 이미 지금도 공정거래위원회뿐만 아니라 대부분 국가들의 기업결합 심사 기준에도 반영되어 있다는 점이다. 즉, 위와 같이 '뭉쳐야 산다'는 주장이 이뤄지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에 경쟁법(한국의 경우 공정거래법) 상 예외적인 고려 기준들을 한참 뛰어 넘는 문제적인 독과점 결합들에 대한 것인데, '뭉쳐야 산다'는 주장하는 목소리들은 마치 이러한 예외가 전혀 없는 것처럼 호도한다.


다음으로 주의할 부분은, 위 주장은, 많은 경우에, 논의되는 산업을 이미 상당 부분 차지하고 있는 독과점적 사업자들을 중심으로 제기된다는 점이다. 즉, 기존의 독과점 사업자에 도전이 될만한 후순위 사업자들의 대형화(이 경우는 문제가 안된다. 예컨대 2위, 4위 사업자들인 티빙과 웨이브의 결합은 잘 승인되었다)가 아니라, 대부분 선두 사업자(들)의 초대형화가 문제되고(예컨대 기사에서도 언급된 SKT와 CJ헬로비전 결합 사건), 이걸 허락해줘야 한다는 식으로 논의가 전개된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결국 문제 삼을만 하니까 문제를 삼는 것인데, 당사자들과 일부 언론은 늘 마치 경쟁당국이 문제될 것 없는 일에 몽니를 부린다는 식으로 접근한다.


그리고, 공통적으로, 위 같은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당사자들은 꼭 관련시장 획정을 걸고 넘어진다. 관련 시장을 넓게 획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그 시장 안에서 독점력이 없는 것으로 평가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장 획정은 본질적으로 (수평적) 경쟁관계를 파악하는 일이다. 즉, 경쟁당국이 주관적으로 관련시장을 "정의"내리는 게 아니라 객관적으로 (오류는 있을 수 있지만) 경쟁 관계를 찾는 작업이라는 것이다. 기사에서 언급한 G마켓과 알리익스프레스 사건을 예로 들면, 관련 시장이 오픈마켓인지 해외직구시장인지는 소비자들의 행태 등을 파악한 뒤 그에 따라 알게 되는 경쟁관계에 따라 결정될 일이지 (다시 말하지만 오류는 있을 수 있다), 당국이 입맛따라 결정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문제적 기업결합을 허용하기 위해 관련시장을 넓게 획정해야 한다는 것은, 특정 사업자를 제재하기 위해서 관련시장을 좁게 획정해야 한다는 주장만큼이나 위험한 소리다.


마지막은, 논점의 이탈이다. '뭉쳐야 산다'는 식의 주장들은 꼭 구조적 조치보다는 행태적 조치가 적절하다고 주장한다. 즉, 결합 불허나 자산매각 결정 등을 하지 말고, 결합은 놔두되 이후 가격 인상 억제나 라이선스 의무 부과처럼 적절히 앞으로의 행동에만 제약을 가하자는 것이다. 위에서 첨부한 기사도 마찬가지로, IMF 외환위기 당시 현대차와 기아차 결합의 승인 사례를 들먹이면서 현재 진행 중인 사안들을 빨리 승인하고 필요한 경우 행태적 조치만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대차, 기아차 기업결합이 거의 모든 경쟁법 전문가들에게, 한국 정부의 역사에 길이 남을 대표적인 정책 실패 사례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은 논외로 하자. 관점은 다를 수 있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한 대형 로펌의 공정거래 전문 변호사"의 견해를 "법조계"의 목소리로 표현한 것은 지나치다.)


하지만, 구조가 문제라는데 시장 구조 문제는 그대로 놔두고, 행태 문제로 치고 대충 형태적 조치로 넘어가자는 주장은 아무리 생각해도 억지스럽다. 개인적으로 '문제의 원인을 알아야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는 식의 고지식한 논리는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조가 문제임이 뻔한데, 구조는 그대로 두고 앞으로의 행동에만 제약 걸자는 것은 분명 무리다.


독과점과 집중의 장점과 단점에 대한 평가는, 학자들(예컨대 경제학자들, 역사학자들 등...)의 실증 연구 결과에 따라 언제든 바뀔 수 있다. 그리고 연구자들, 특히 법학과 같이 문제의 피상적 측면만을 다룰 수밖에 없는 연구자들은 언제나 이런 다른 학문의 새로운 연구 성과들에 열려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동시에, 이른바 '열린 사고'를 강요하면서 정부와 사회를 압박하고 이면에서는 트정 소수의 이익만 추구하는 내러티브들에는 항상 강한 경계심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사업자들에게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이슈(과잉집행)는 있지만, 그래도 가능한 범위 내에서 대체로 시장과 경쟁에 친화적인 입장을 잘 지켜내어서 좋은 것 같다.


문제는, 어떻게 해야 이런 일부의 잘못된 주장들 효과적, 효율적으로 반박할 수 있는 학계의 영향력을 키우고, 또 꾸준히 그런 역할을 할 다음 세대 사람들을 길러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이겠지만... 존립이 아예 불가능해진 직군에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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