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홍콩대학교 세미나, 'Competition Law, Innovation and Growth: Connecting the Dots'에 참석한 뒤 교토에 돌아왔다. 오랜만에 사람들과 만나 교류하는 것도 좋았고, 음식도 맛있고.그리고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던 홍콩의 야경까지. 참 많은 것들이 좋았다. 참 감사한 날들이다.
세미나는, 최근 유럽을 중심으로 재조명되고 있는 거시경제에 있어서 경쟁 정책의 역할, 그러니까 경쟁정책과 산업정책의 관계가 중심 테마였고, 난 세 번째 패널, 'Competition and Industrial Policy: Reimagining the Field'에 Ninette Dodoo (좌장), Payal Malik, Eun Hye Kim, Ju Heng, 그리고 Ioannis Lianos 등과 함께 참석했다. 라인업을 보며 기대했던 것처럼(Thomas는 다른 사정으로 Thomas는 참석이 어려웠다), 역시나 주제를 다양한 관점에서 보고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내 발표는 "On the 'Pro-Growth' Merger Policy"를 제목으로, 드라기 리포트(Draghi report) 등을 통해서 제안되고 있는 이른바 '친성장 기업결합 정책'을 비유럽권(non-EU) 시각에서는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일 것인가가 주된 내용이었고... 이미 행사 전부터 링크드인에 주요 내용을 공유해두었기 때문에, 발표 자체는 짧게 했고 내용과 메시지도 비교적 단순하게 했는데,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 혹시 관심있는 분들은 이곳 슬라이드 쉐어, 또는 아래 첨부 파일을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내 'findings'는 한 마디로, EU에서 나오는 '산업정책적 고려를 강화한 기업결합 정책'은 EU의 특수한 상황과 맥락을 전제로 정당화가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비EU 관할권들이 보고 따라할 부분은 극히 제한적이라는 것이었다.
난 EU가 제안하고 있는 것들(예컨대 innovation defence 등)은 결국 역내 단일시장의 분절(fragmentation)을 (통신 시장 등에서의) 기업집중(consolidation)으로써 극복하고 이를 통해 (중국과 미국을 따라잡는 데 필요한) 충분한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했고, 이런 제안이 타당한 것이든 아니든, 다른 관할권들에는 대부분(ASEAN 등을 제외하면) '역내 시장의 분절'이라는 이슈 자체가 없기 때문에 시사점이 제한적이라고 보았다.
다만 한 가지, 예외적으로 유용한 시사점도 있다고 보았는데, 바로 국경을 넘는(cross-border) 기업결합 활동의 촉진, 지원이다. 즉, 지금 EU가 생산성, 경쟁력 회복을 위한 해법으로서 시장 통합(market integration)을 강조하고 국경을 넘는 인수합병을 통한 규모의 경제 달성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은 설득력이 있으며, 다른 나라들(예컨대 한국과 일본, 대만)도 지역 경제 통합으로써 경쟁력 향상을 도모하고 이를 위해 기업들의 국경간 인수합병을 정책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한국과 일본 연구자들을 위한 첨언으로서, 연구자들이 유럽 논의에 집중할 게 아니라, 지금 양국의 'nationalist'들로 인해 전혀 발전적 논의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사안들(예컨대 라인-야후 사태 등)에 관심을 쏟을 필요가 있지 않겠냐는 내용을 담기도 했지만... 잘 전달되었을진 모르겠다.
사실, 발표를 준비하기 전까지 이 주제에 큰 관심은 쏟지 않고 있었는데, 점점 이 이슈가 홍콩을 거쳐 도쿄로, 아시아로 점점 확장해오는 걸 보고 있으니, 좀 더 목소리를 높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플랫폼 규제의 광풍처럼, '친성장 기업결합 정책' 역시 EU의 문제에서 나온 EU의 정책인데, 가뜩이나 정부 입김이 센 한국 등 아시아권에서 호응이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친성장 기업결합 정책이 EU에서 잘 통할지 아닐지, 그건 EU의 일이니, 잘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히 아는 것은, 플로어 토론 중 아시아 개발은행의 Yesim Elhan-Kayalar가 지적한 것처럼, 그리고 패널이 끝난 후 Ninette Dodoo와 내가 서로 공감하며 이야기 나눴던 것처럼, 아시아권에서는 이미 정부 주도 발전에 대한 의존이 충분히, 지나치게 강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로 인해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정부실패(세금으로 독점 항공사를 탄생시킨 희대의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결합이 대표적인 사례)가 반복되는 현실이 더욱 심각하다.
아직 개발도상에 있는 국가들은 또 다른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난 한국을 포함해서, 어느 정도 발전한 아시아의 중견국들이라면,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특히 기업결합에 있어서만큼은) 성숙해가는 경쟁 정책을 더욱 잘 되게 하는 것이지 산업정책으로의 회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좀 더 욕심을 내자면, 아시아에서도 단일 국가나 민족적 정체성을 넘어서, 'globalist'까지는 아니라도 적어도 'regionalist' 만큼은 확장된 정체성을 인식하면서 더 넓은 시야에서 정책 논의와 제도 설계의 큰 흐름이 만들어질 수 있기를 바라지만... 이건 일단 희망 사항으로 속으로만 바래본다.
아무튼, 국가보안법 사태 이후 내심 방문을 망설이게 되는 홍콩이었지만, 걱정과 달리 'fruitful' 하고 생각할 거리도 많았던 감사한 시간이었다. 형언하기 어려운, 화려함 속의 조용한 침묵이 슬프긴 했지만, 그래도 한국과 일본에 비해선 훨씬 수평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참 좋았던 홍콩이었다.
* 혹시 관심있는 분들을 위해, 한번 더, 발표 내용은 이곳 또는 아래 첨부 파일을 참고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