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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그린 판결: 대법원의 파기환송

by 이상윤
바탕화면.png 판결이 나온 건 좋은데... 한국은 많은 것들이 너무 '오징어 게임'처럼 진행되는 것 아닌가 싶다;; 승패에 따라서 결과가 너무도 다른 모험적인 일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요즘 개인적으로 진행 중인 일이 있어서 한동안 최신 이슈들을 체크하지 못하고 있다가, 오늘 메일함을 열었는데 모처럼 반가운 소식이 와 있었다. 바로 에버그린 사건 (또는 해상 화물운송사업자들의 운임 담합 사건)의 파기환송 소식이다.


지난 2022년 공정거래위원회가 에버그린을 포함한 국제 정기선 해운사들의 담합을 적발하고 과징금을 부과했었고(의결2022-090), 2024년 고등법원이 공정거래위원회의 관할권을 시비로 뒤집은 것을(2022누43742) 다시 대법원이 뒤집어 다시 심리, 판단하라고 돌려보낸 것이다(대법원 2025. 4. 24. 선고 2024두35446 판결). 정말 타당한 결론이 아닐 수 없다.


참고로 고등법원 판결에 대한 의문점들에 대해서는 이미 이곳에도 올렸었고, 법률적 측면의 분석과 비판을 좀 더 자세히 다룬 글은 이후 Kluwer Competition Law Blog에도 기고했었다. 그리고 예전에 이곳에서 밝힌 적 있듯이,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홈페이지를 개편하면서 기존 URL을 모두 불능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에, 위 기고문은 약간 세미 논문 포맷으로 수정해서 내 SSRN에 다시 올렸두었다(https://ssrn.com/abstract=5172277). 혹시 관심 있으신 분들은 위 글을 확인해보시길 바란다.


이 글은 대법원 판결문을 읽고, 주요 내용들만 노트해본 것이다.


(리마인드를 위해서 간략히만 언급하면: 계속 말했듯, 이 사건은 언뜻 복잡해보이지만, 단순한 사건이다. 여러 해운 사업자들이 10년 넘게 담합해서 운임을 올렸고, 그게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를 받은 것이다. 사업자들은 반발했고, 해운법(제29조)이 정기선의 경우엔 운임 담합을 허용하고 있다거나(제1항), 해양수산부의 배타적 관할이 된다고 주장했는데(제2-6항), 이게 고등법원에서 받아들여지면서 공정거래위원회 처분이 취소된 사건이다.)


순서대로 보면, 먼저 대법원이 분명히 짚고 간 전제들이 눈에 뜨인다.

(1996년 12월 30일 개정으로 금융 및 보험업 적용제외 규정을 삭제한 이래) "이후 공정거래법은 특정 산업분야에 대하여 적용을 제외하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5면)
"다른 법공정거래법은 국민경제 전반에 걸쳐 헌법상 요구되는 사회적 시장경제질서를 구현하기 위한 법률로서, 다른 법률에 특별한 정함이 없는 이상 모든 산업분야에 적용되어야 한다." (5-6면)


그리고 공정거래법의 적용을 배제하는 "다른 법률에 특별한 정함"이 있는지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해운법에는 그런 규정이 없단 점을 분명히 한다.

(해운법은 예전부터 공동행위 관련 규정들을 두고 있긴 했지만) "일반적으로 사업자들의 부당한 공동행위 등을 규율대상으로 삼는 공정거래법이 제정된 이후에도 해운법에서는 그러한 공동행위에 대하여 공정거래법 적용을 제외한다는 명시적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6면)


물론, 해운법 제29조를 보면, 정기 화물운송의 경우 운임 담합을 허용하는 내용이 있고 (제1항) 이 경우 해양수산부장관에게 신고하도록 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제2항). 하지만 법은 분명히 그 범위를 "경쟁을 실질적으로 제한하는 경우"가 아닌 때로 제한하고 있으며(제5항 제3호) 그걸 넘는 때는 해양수산부장관이 협약 시행 중지, 내용 변경, 조정 등 필요한 조치를 명하고 공정거래위원회에 통보하도록 하고 있다(제5항 본문). 대법원도 이 점을 짚으면서 법이 허용하는 범위를 분명히 한다.

"결국 해운법은 외항 정기 화물운송사업자들의 운임에 관한 공동행위를 제한 없이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공동행위가 부당하게 경쟁을 실질적으로 제한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허용하고 있다." (7면)


물론, 대법원이 '해운법이 그렇게 규정하고 있다'는 사실에만 기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엄격히 법 문언만 놓고 보았을 땐, 정기선사들의 운임 담합이 경쟁법의 제재 대상이 되는 것이 맞느냐 아니냐 논란이 될 수도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법 문언 외에 경제 현실까지 고려해도 정기선사들의 운임 담합이 일률적으로 허용된다고 해석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판단한다.

"... 그러나 원심이 판시한 것처럼 최근에는 해운산업에 관해서도 경쟁법적 규제를 면제할 필요가 없고 오히려 경쟁원리에 따라 규율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시각이 대두되고 있다. 특히 운임에 관한 공동행위는 원칙적으로 불허하고 선박의 배치와 화물의 적재 등에 관한 상호협력만을 허용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고, 실제로 미국, 유럽연합(EU), 캐나다, 호주, 일본 등 여러 법제에서 위와 같은 취지로 해운동맹에 대한 경쟁법적 규율을 재정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8면)


난 대법원 판결문에서 위와 같은 설시도 판시 부분이나 다른 법리적인 판단 부분들의 내용 못지 않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단순히 현재 법이 어떻게 규정되어 있느냐를 넘어서, 법적인 평가가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지에 대한 시사점을 주기 때문이다.


사실 단순히 법 규정의 문제라면, 이러한 판결 이후 입법자가 공정거래법의 적용을 완전히 면제하는 식으로 법을 고치는 것도 가능할 수 있다. 실제 민주당 위성곤 의원이 (내 시각으로는 산업 이해관계자들에게 포획되어) 관련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번에 법 문언에 명시적인 면제 규정도 없을 뿐더러 그렇게 보는 것이 현실적으로도 타당하다는 점을 잘 짚어준 것이다.


앞으로 입법적으로 정비를 한다면, 해운법처럼 정기선사들의 운임 담합에 확실한 면죄부를 주는 방향이 아니라,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경쟁법의 틀 내에서 경쟁제한효과와 정당한 사유 등을 따져보도록 하는 데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하는 것이, 대법원 판시와 일치하는 정비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다음. 내가 가장 짜릿함을 느낀 파트를 보자. 바로 규율 권한(법원은 모두 "규제 권한"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나는 늘 이야기하듯 경쟁법 집행과 규제는 다르게 쓰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비록 공정거래위원회의 심의 의결 기능이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는 하지만, 그래도.)에 대한 부분이다.

"아울러 아래 ⑵항의 사정까지 고려하면, 적어도 외항 정기 화물운송사업자들의 운임 등에 관한 공동행위 중 ‘신고되지 않은 공동행위’에 대하여는 두 법 사이에 모순ㆍ저촉이 있다고 보기 어려우며, 해양수산부장관과 피고가 모두 규제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 (7면)


나도 이전 블로그에서, 서울고등법원의 규율 관할에 대한 접근이 의아하다고 말했는데, 대법원도 정확히 이 지점을, 더 타당하고 정교한 논리를 통해 보완하면서, 해양수산부의 배타적 관할이 현행 규정의 해석으로부터 바로 도출될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잠깐 리마인드 차원에서 다시 쓰면, 내가 서울고등법원 판결에 대해서 의아했던 것은, 결론 자체보다는 그 결론에 이르는 논증 과정에서, "적용제외와 관할이라는 서로 다른 문제를 섞어버리는 게(conflating)" 과연 맞는지 의아하다는 것이었다.


서울고등법원은 규율 권한이 해양수산부장관에게 있으므로, 공정거래위원회가 규율 권한을 갖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는데, 내가 당시에도 지적했듯이, 어떤 행위가 다른 규제 당국의 관할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 문제가 자동적으로 경쟁 당국(공정거래위원회)의 관할이 되지 않는다거나 경쟁법(공정거래법)의 적용이 되지 않는 문제가 된다고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위에서 살펴본 실체법적인 적용 제외 규정이 없다면, 오히려 공정거래위원회의 "권한을 인정"하는 데 왜 다른 특별한 법령상 근거가 필요한지 설명이 필요한데(사실 실체법적인 적용 제외 규정이 없다면, 공정거래위원회의 권한을 부정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법령상 특별한 근거가 필요하다고 봐야하는 것이 맞다), 서울고등법원은 그런 설명 없이 갑자기 공정거래위원회의 권한을 부정하니까 '이게 맞나?' 의문이 생겼던 것이다.


(더 나아가, 연구자로서 내가 강조한 부분, 즉 '서울고등법원처럼 특별히 입법자나 행정부의 의사가 확인되지 않는 부분을 단정적으로 판단해버리는 것은 입법부나 행정부의 영역인 조직과 제도 설계에 대한 사법부의 과도한 간섭이라고 한 부분'은, 지금도 유효하며 꼭 논문으로 써야겠다고 생각한다).


대법원은, 너무도 타당하게도, 법이 그렇게 해석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모두 규제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 현실적으로도 현행 규정들만으로 해양수산부장관이 공동행위에 관하여 배타적 규제 권한을 부여받은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설명한다.

해운법 제50조 제1항 제7호, 같은 법 시행규칙 제27조 [별표 5] 제9호에 따르면 위와 같은 공동행위에 관하여 확인이 필요한 경우 해양수산부장관이 해운업자에게 협약서, 운임표 및 운임산출명세서, 선박 배치, 화물의 적재, 그 밖의 운송 조건에 관한 계약이나 공동행위와 관련된 증빙자료, 화주단체와 협의한 내역을 제출하게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자료는 사업자들이 신고한 협약의 존부와 구체적인 내용 등을 확인하는 데에 필요하고 적절한 것일 수 있지만, 구 공정거래법 제49조부터 제55조의2까지에 규정된 조사절차 등과 비교해 볼 때, 사업자들이 신고하지 않고 은폐하려는 협약의 존부와 내용 및 이에 관한 사업자들의 목적ㆍ의도 등을 파악하여 해양수산부장관이 적절한 규제와 조정을 하기에는 매우 불충분한 것이다.

그렇다면 해운법 제29조를 포함한 관련 해운법령이 외항 정기 화물운송사업자들의 공동행위가 허용된 범위를 벗어나거나 필요한 정도를 넘는 부당한 경우에 대하여 이를 직접 금지하면서 그에 관한 규제권한의 소재와 구체적인 규제의 방법ㆍ절차까지 별도로 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 (7-8면)


나는 이 부분 또한 이번 대법원의 판결이 빛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대법원은 위 내용을 통해, 현실적으로 해양수산부가, 적어도 현재의 제도적 배열(arrangements) 하에서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경쟁법 집행을 대체할 수 있을 만큼의 툴이나 역량을 갖고 있지 않음을 밝히면서, 민주당 위성곤 의원안처럼 법 기술적인 변경만으로는 타당하지 않음을, 에둘러서, 보여준 것이다.


만약 입법자나 행정부가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정말 해양수산부가 배타적 관할을 갖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면, 그에 맞게 대대적인 개편을 준비할 필요가 있을 것이고(개인적으로는 이건 타당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검증이 필요한 가설이지만, 난 한국의 많은 규제 당국들은 산업계와 산업계와 필요 이상의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 않나 하는 의심이 든다), 그게 아니라면 이번과 같은 오해나 분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적 정비를 할 필요가 있겠다.


가끔은 실망스럽고 이상한 모습도 보이지만(2025도4697), 대법원이 괜히 대법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은데, 이번 판결도 그중 하나에 속하는 경험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다른 교수님들이나 판사님들은 싫어하는 것 같지만, 내가 보기엔 나쁘지 않은(혹은 많은 분들이 그 beauty를 놓치고 있는) 지멘스 판결에 대해서도 생각을 정리해봐야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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