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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윤 Sep 22. 2020

일본의 플랫폼 규제 동향


홍순강, '일본의 디지털 플랫폼 사업자 규제 지침 및 법률에 관하여' 경쟁저널 제204호, 2020. 8.


일본에 대해서는 영문 기사를 통해 간헐적으로나마 소식을 전해들었을 뿐 그동안 제대로 정리한 문헌을 정독해 볼 기회가 없어 아쉬웠다. 그런데 이번 경쟁저널에 홍순강 교수님(Kanazawa University)의 글이 실려 읽어보게 되었고 몰랐던 내용들을 알게 되어서 좋았다. 원문과 일일히 대조해보는 작업까지는 아직 못했기 때문에 정확성은 아무래도 떨어질 수 있겠지만, 그래도 내가 글을 읽으며 생각했던 부분들이 혹시 다른 관심있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해서 메모를 남겨본다.


1. 유럽연합 플랫폼 규칙(Reg. 2019/1150)으로부터의 영향


전반적으로 일본 플랫폼 규제는 유럽 논의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사실 이런 인상은 이 글을 읽기 전부터 많이 받았는데, 당장 "특정 디지털 플랫폼 투명성 및 공정성 향상에 관한 법률(特定デジタルプラットフォームの透明性及び公正性の向上に関する法律案)"(이하 "특정 플랫폼법")이라는 명칭만 봐도 그렇다. 유럽연합의 "온라인 중개 서비스 이용 사업자를 위한 공정성과 투명성 증진에 관한 규칙(Regulation (EU) 2019/1150 on promoting fairness and transparency for business users of online intermediation services)"과 매우 흡사하다. 시기적으로도, 유럽연합은 위 규칙을 2018년 초부터 도입을 본격화하고 2019년 6월 20일 최종 통과시켰는데, 일본의 경우 2019년 6월부터 디지털 플랫폼 사업자 거래투명화법 제정 시도를 본격화한 뒤 2020년 6월 3일 위 법을 공포하여서(홍순강, 2020:25-26) 유럽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물론 명칭과 시기뿐만 아니라 내용 상으로도, 플랫폼 사업자와 이용 사업자 간 거래 관계에서 정보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투명성 조치들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둘은 매우 닮았다.


2. 독일 페이스북 사건으로부터의 영향


영향을 받은 것은 특정 플랫폼법에만이 아니다. 이 법에 앞서 2019년 8월 29일 초안이 발표된 뒤 2019년 12월 17일부터 시행에 들어가고 있는 플랫폼 남용행위 가이드라인, “디지털 플랫폼 사업자와 개인정보 등을 제공하는 소비자와의 거래에서 우월적 지위의 남용에 관한 독점금지법상의 방침(デジタル・プラットフォーム事業者と個人情報等を提供する消費者との取引における優越的地位の濫用に関する独占禁止法上の考え方)” (이하 “플랫폼 남용행위 가이드라인”) 역시 많은 부분에서 독일 페이스북 사건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독일 연방카르텔청 결정(2019년 2월)을 전후로 유럽에서는 경쟁법의 데이터 착취 행위 포섭 여부에 대한 많은 논란이 오갔는데, 일본 가이드라인은 이러한 논의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물론 일본 경쟁법 체계상 착취 남용(exploitative abuse)은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abuse of dominance)보다는 거래상 우월적 지위의 남용 행위(abuse of superior bargaining position)로 포섭되기 때문에, 유럽과 달리 일본은 기존의 우월적 지위 남용 행위 적용 범위를 사업자 간 거래(Business-to-business)에서 사업자와 소비자 간 거래(Business-to-consumers)까지 확장시킴으로써 데이터 착취 행위를 포섭했다는 점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었다(홍순강, 2020: 19-21). 그래도 일본과 유럽(특히 독일) 모두 경쟁법상 착취 남용으로 접근하고 있기 때문에 둘 간에 본질적인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3. 유럽연합 플랫폼 규칙과 일본 특정 플랫폼법의 차이: '특정' 플랫폼 대상


앞서 말했듯, 유럽연합 플랫폼 규칙과 일본의 특정 플랫폼법은 플랫폼 사업자와 이용 사업자간 거래에서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은 유사성을 갖고 있다. 하지만 차이점도 적지 않은데, 가장 먼저 일본의 플랫폼법은 "특정" 사업자들에게만 한정하여 적용된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논문의 설명에 따르면, 일본 특정 플랫폼법은 일정 규모 이상을 가진 일부 플랫폼들을 "시행령 및 경제산업대신의 지정"으로 지정해서 의무를 부담시킨다고 하는데(홍순강, 2020: 26) 이처럼 규제 당국이 소수의 대형 플랫폼 사업자들을 지정해서 특별한 의무를 부담시키는 접근은 제10차 독일 경쟁법 개정안 제19a조 등 최근 유럽 각국에서 논의되고 있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흥미로웠다(이상윤, 2020: 310-311). 다만 유럽의 경우는 특별한 의무가 정보 제공 중심의 투명성 의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부 행위들에 대한 금지와 입증 책임의 전환을 포함한다는 점에서 일본과는 다른데, 유럽연합 플랫폼 규칙의 투명성 의무 범위를 소수 사업자에게만 좁게 적용시키는 것이 일본의 접근이라고 이해되었다.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일본이 유럽에 비해 비교적 좁은 규제 범위를 선택한 것은 플랫폼 시장에서 글로벌 플랫폼 사업자들이 강력하게 활동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들의 지배력이 유럽만큼 심각하지는 않다는 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생각하였다. 아무튼.


특정 사업자의 범위는 (본심은 어쨌든 "GAFA"겠지만) 여러 기준으로 결정되는데, 논문에 따르면 법은 매출액, 이용 집중도와 같은 전통적인 경쟁법적 판단 수단 외에도 "해당 분야의 국민생활 및 경제에 미치는 영향", "거래 실태 및 동향을 감안한 상품 등 제공 이용자 보호 필요성", "다른 규제 및 시책에서의 대응 상황" 등을 고려사항을 제시한다(홍순강, 2020: 27). 이 중 다른 규제 대응 상황을 고려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해보였지만, 국민생활 및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이해는 되지만) 그렇게 객관적이거나 바람직한 기준으로 생각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거래 실태와 동향을 감안한다는 것은 아마도 (제정 당시에는 예상치 못했겠지만) 코로나 같이 상거래 플랫폼의 중요성이 급등한 상황 등이 여기에 해당하지 않을까 싶었다.


4. 유럽연합 플랫폼 규칙과 일본 특정 플랫폼법의 차이: 거버넌스


규율 범위 외에도 눈에 띄는 부분은 거버넌스 부분이었다. 플랫폼 사업자가 자체적으로 분쟁해결 메커니즘을 도입하도록 하는 점에 있어서 유럽연합과 일본의 법은 큰 차이가 없어 보였지만, 정부 개입 여부에 대해서는 의미 있는 차이가 있었다. 연합 체계인 유럽연합과 단일 국가인 일본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당연한 부분일 수도 있지만, 유럽연합 플랫폼 규칙의 경우 당국의 공적 개입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특별한 내용이 발견되지 않는 반면 일본의 경우 경제산업대신 또는 경쟁 당국의 개입까지 허용하고 있다는 점은 상당히 흥미로웠다. 다시 말해서, 법 규정을 위반하는 사업자가 있을 경우 (현재까지 내 이해에 따르면) 유럽연합 투명성 규칙에 따르면 결국 해결은 원칙적으로 민사소송의 형태가 되지만(물론 회원국이 개별 법률을 통해 공적 개입의 근거로 규정한다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일본 특정 플랫폼법에 따르면 경제산업대신의 현장조사(제12조), 권고(제6조 제1항), 공표(제6조 제3항), 조치명령(제6조 제4항), 그리고 공정위의 개입(제13조)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홍순강, 2020: 29-31). 이러한 공적 개입의 가능성은 전에는 몰랐던 부분으로 읽으면서 매우 흥미로웠다. 기회가 있으면 원문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봐야겠다.


5. 일본 플랫폼 남용행위 가이드라인에서 눈에 띈 점들


앞서 독일 페이스북 사건을 둘러싼 유럽의 논의에서 일본이 영향을 받아 이번 플랫폼 남용행위 가이드라인을 제정하게 된 것 같다고 말하였지만, 아무래도 '논의'에서 영향을 받았으며 '가이드라인'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만큼 플랫폼 규칙의 경우만큼 높은 유사성을 보이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보였다. 유사점 보다는 독특한 지점들이 많았는데, 읽으면서 눈에 띄었던 점들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우월적 지위에 대한 부분이다. 논문을 보면 우월적 지위는 "소비자가 디지털 플랫폼 사업자로부터 불이익을 받더라도 소비자가 해당 사업자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경우"로 설명되고 있으며(가이드라인 제3부 (1)) 이로한 경우는 구체적으로 (i) 대체 가능한 서비스가 없거나, (ii) 대체 가능한 서비스가 있더라도 서비스 이용이 사실상 곤란하거나, 또는 (iii) 문제된 플랫폼 사업자가 스스로의 의사로 어느 정도 자유롭게 가격, 품질, 수량 기타 거래조건을 좌우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경우(가이드라인 제3부 (2)) 등이다(홍순강 2020: 20-21). 쉽게 말해서 (i) 독점, (ii) 고착(lock-in), (iii) 시장지배(dominance) 세 경우에 우월적 지위가 인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고착은 서비스의 성격(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인지 여부), 데이터 이동성(portability) 등을 고려하여 판단된다. 독점과 고착에 대해서는 이해에 크게 어려움이 없었는데, 마지막 경쟁제한적 지위가 들어간 점은 사실 조금 의아했다. 글쎄, 내 이해에 따르면 (iii) 부분에서 설명하고 있는 지위는 주로 배제력(power to exclude)을 판단할 때 쓰이는 전통적인 시장지배력을 판단할 때 쓰이는 표현인데, 착취력(power to exploit)이 문제되는 수직적 상황에서 굳이 이와 같은 고려를 포함시킬 필요가 있었는지는 의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는, 남용에 대한 부분이다. 페이스북 사건에서와 마찬가지로 일본 가이드라인 역시, 앞의 취지 부분에서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데이터 남용행위를 금지하는 이유는 "소비자의 자유"와 "경쟁상 유리"에서 찾고 있다고 한다("거래의 상대방인 소비자의 자유롭고 자율적인 판단에 의한 거래를 저해하는 한편, 플랫폼 사업자는 경쟁자와의 관계에서 경쟁상 유리하게 될 우려가 있다" - 홍순강 2020: 20).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데이터 착취 행위는 전통적인 경쟁사업자 배제(exclusion of competitiors)와 소비자 후생(consumer welfare) 기준에서는 잘 포섭되기 어려운 행위인데 이를 변경하여 소비자 선택(choice, autonomy)와 부당한 데이터 취득으로 인한 데이터 서비스 품질 강화 등 경쟁상의 이점(competitive edge) 차지 등을 남용 피해(harm) 분석의 중심에 두면 경쟁법적 규율의 논리와 정당상이 한층 더 강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일본과 한국 경쟁법의 고질적 문제인 "정상적인 상거래 관습에 비추어 부당하게"라든지 "공정한 거래를 저해할 우려"와 같은 애매 모호하고 누구도 객관적 정의를 내릴 수 없는 개념들을 또 반복하고 있다는 점은 절망스러웠지만... 그래도, 논문에 따르면, 가이드라인은 단순히 정상적 상관행으로부터 벗어난 행위가 아니라 크게 벗어난 행위(largely deviate from)를 남용으로 보는 태도를 보인 것으로 이해되었는데 이는 다행스러운 부분이라고 생각하였다(홍순강, 2020: 22). 다만, 가이드라인과 직접 상관은 없지만, 최근 독일에서 집행 효력에 관한 대법원(Bundesgerichtshof) 결정에서 나오는 것처럼 '남용' 논의와 관련하여 소셜 네트워크 사업자의 민주주의 커뮤니케이션의 포럼 제공자로서의 성격 등 다양하고 좀 더 심도 있는 논의가 한국이든 일본이든 많이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셋째는, 지위와 남용의 인과성(causality) 부분이다. 독일 페이스북 사건에서 이 부분은 지위와 행위 간 엄격한 인과성의 증명을 필요로 할 것이냐 아니면 규범적 인과성에 만족할 것이냐를 두고 치열하게 다투어졌었는데, 일본 가이드라인은 입증이 필요하지 않은 부분으로 본 부분이 눈에 띄었다(홍순강, 2020: 22). 즉, 문제된 행위가 그 사업자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것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따로 입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인데, 독일 대법원도 인정했듯, 나는 이러한 부분을 두고 논쟁이 있다는 것 자체가 사실 좀 인위적인 면이 있다 생각했다. 우리나라 안희정 지사의 위력간음죄 사건에서 보듯이 '위력이 있고 행위가 있었으며 그 행위로 피해가 발생했지만 그 행위가 위력을 이용한 것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에 둘의 인과 관계에 대해서는 좀 더 증명이 이뤄져야 한다'는 이런 식의 태도는, 정말 트집을 위한 트집 잡기 이상의 의미가 없는 것 아닐까. 백번 양보해서 인과 관계가 없다는 명명백백한 반증을 허용해주는 것이라면 몰라도. 아무튼 인과성 증명이 필요 없다고 명시한 것은 가이드라인의 잘 된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그 외 디테일한 부분에 있어서도 흥미로운 부분들이 꽤 있었지만, 지엽적인 부분일수록 원문을 확인하지 않은 내가 코멘트를 남기기에는 오류 위험이 꽤 커보여서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미루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읽으면서, 한국과 일본은 참 가까이에 있고 서로 협력을 이유도 정말 많은데 (정치인들에겐 서로를 악마화시켜서 얻는 이득이 더 큰가?) 서로 알지도 못하고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 (나아가 요즘엔 알려고 하면 다칠 수도 있다는 분위기까지...) 현실이 안타까웠다. 당장 나부터도 일본쪽 리서치에는 크게 시간과 노력을 할애하지 못하는데 바람직한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누군가 관련 연구를 하는 분이 있어서 이 글이 그 연구에 아주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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