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윤, '유럽연합의 플랫폼 규제 동향과 시사점', 미디어법 세미나 발표자료, 2020. 9. 24.
최근 우연한 기회로 행정법 교수님들의 소그룹 스터디 모임에서 유럽연합의 플랫폼 규제 동향과 시사점을 주제로 발표할 기회가 있었다. 내 발표 내용 자체는 그동안 이황 교수님과 함께 연구하고 발표해온 내용들을 요약 정리하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특별할 것 없었지만, 발표 중간과 이후 이어진 토론 자리가 너무나도 유익하고 좋았다. 특히 이승민 교수님께서 구글 프랑스 사건(12번 슬라이드)에 대한 내용을 보충해주셨는데 나도 자세히 몰랐던 (하지만 너무 알고 싶던) 내용이라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구글 프랑스 사건은 아직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지만 유럽에서도 논란이 많고 ASCOLA Asia(7월 11일, 10월 2일 세미나)에서도 관심을 갖고 공부하고 있기 때문에 머지 않아 우리나라에서도 서서히 논의가 이뤄질 것 같다. 특히 이 사건에서는 가처분 조치(interim measure)의 활용 가능한 범위가 거의 극한까지 테스트되고 있어서 집행 당국(공정거래위원회)에서 관심을 가질 것 같다(이미 내부에서 스터디 중일지도..?).
아무튼. 유럽의 플랫폼 규제에 대해서는 암스테르담에서 석사 논문 쓸 때부터 그러니까 대략 2018년 하반기부터 2년 가까이 이 주제를 따라온 건데, 이번에 그동안의 연구 내용들을 요약 정리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아래에 몇 가지 단상들을 적어보았는데 관련해서 앞으로도 다른 분들과 생각을 나눠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
제일 궁금한 것은 과연 이번 기회를 계기로 경쟁법이 기존의 정체성을 버리고(또는 조금이라도 바꾸어서) 새로운 역할을 하게 될 수 있을지 여부다. 요즘 플랫폼 규제 논의에서 탄력을 받아 흥행하고 있는 많은 논의들은 기존의 자유 시장 경제 체제를 구현하는 효과적인 정책 수단으로서 경쟁법의 정체성을 전면 또는 부분적으로 부인하는 시각에 기초하고 있는데 과연 이러한 움직임이 실제 어느 수준까지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정말 기대가 된다. 독일 페이스북 사건에서 연방 최고법원의 결정처럼 소비자의 주도적 선택권이 남용 판단의 핵심적 기준이 될까, 더 나아가 '기본권의 대사인적 효력'까지 경쟁법 판단에서 이뤄지게 되는 것일까, 프랑스 구글 사건처럼 민주주의적 고려까지 담기게 될까, 경제적 의존 남용행위의 존재감은 드디어 주류 무대로 올라가게 될까, 시장 구조와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정부의 거침없는 개입과 조정은 새로운 트렌드가 될까 ... 물론 현재의 움직임도 한 때의 유행이며 과거 인터넷 산업에 대해 잠깐 일어났던 먼지바람처럼 이 또한 잠잠해지고 지나가리라는 예측도 있고 이런 예측도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는 생각한다. 그래도 나는 개인적으로 지금의 유행이 변화가 되기를 응원하고 싶다. 뭐가 바람직한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만, 적어도 시카고 학파의 재탕인 기존의 고루한 논의들보다는 지금 논의들이 훨씬 더 창의적이고 다양하고 재밌으니까.
다음으로 드는 생각은, 유럽연합의 미래다. 나는 '유럽연합(European Union)'이라는 공동체가 전세계에 주는 메시지의 가치를 굉장히 소중히 생각하는데 그래서인지 유럽의 통합과 발전에도 항상 큰 관심이 간다. 물론 우리나라 국민이 파시스트들에게 불법적으로 사살 당하는 판국에 무슨 다른 동네 미래까지 걱정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우리나라 같이 불편한 정권들을 이웃으로 두고 있는 나라일수록 가치 중심(value-based)의 국제적 연합체를 이뤄낸 유럽연합에 관심을 갖고 시사점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유럽연합에 있어 소위 "GAFA"라고 하는 플랫폼 사업자들에 대한 규제 논의는 단순히 경쟁법 운영이나 경제 영역에 한정해서만 이해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약간 멋을 내서 표현하면 이는 유럽연합이 가치 기반의 사회적 시장 경제 체제(social market economy, Art 3(3) TEU)를 구현해가는 과정 속의 한 갈래로 이해되어야 하는 주제이며, 좀 더 현실감 있게 말하자면 플랫폼 규제 논의는 유럽연합 공통의 의제를 제공함으로써 유럽의 담론(European discourse)을 형성하고 통합을 가속화시키는 촉매제로 이해되어야 하는 주제다. 이러한 역할은 과거 브렉시트 담론이 했던 것과 비슷한데(당시 국내 언론에서 이야기하던 것과는 달리 브렉시트는 유럽연합에 공통의 의제를 제공함으로써 정치적 통합을 촉진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나는 우리가 유럽 논의를 접할 때, 현재의 플랫폼 규제 논의를 통하여 앞으로 디지털 산업 규제 체계가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데서 더 나아가 향후 이 논의가 영국이 없는 유럽연합의 통합과 정체성(identity) 형성에 얼마만큼 큰 영향을 줄 것이냐에 대해서도 주의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미 유럽연합의 플랫폼 규제 체계 개편과 경쟁법 수정 논의에는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민주주의, 대표 기업(European champion) 육성 등 다양한 가치들이 녹아들고 있으며 유럽연합 특유의 정체성 형성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이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는 유럽에 플랫폼들을 어떻게 규제할지보다는 이들이 이러한 논의들을 통하여 형성해갈 유럽 단일 시장(internal market)과 그들이 구성하고자 하는 사회, 공동체의 모습이 더욱 궁금해진다. 유럽연합의 법과 규제 기준은 좋든 실든 글로벌 스탠다드로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도 상당한 직간접적인 영향을 줄뿐만 아니라, 보다 궁극적으로는 국가라는 틀 밖에서 개인이 어떤 삶을 살아게될지에 대한 상당한 시사점을 준다. 나는 플랫폼 규제 논의를 볼때 사실 경쟁이나 혁신같은 문제들보다는 미국과 중국 기업들에 대한 경쟁심을 뗄감으로 자신들이 만든 초국가적 가치 공동체의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는 유럽연합의 역동성을 보는 데 더욱 흥미를 느낀다.
조금 더 이야기를 해도 좋겠지만, 이미 글이 너무 길어져버려서 오늘은 이쯤에서 마무리하는 것이 좋겠다. At any rate, 이번 세미나는 정말 즐거우면서도 유익한 값진 경험이었다. 아직 대학원생인 내게 기꺼이 발표 기회를 허락해주신 이황 교수님, 이성엽 교수님께, 그리고 부족한 발표를 경청해주시고 소중한 시간을 할애하여 많은 격려와 유익한 조언을 아낌없이 해주신 교수님들께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조금 더 욕심을 낸다면, 앞으로 유럽 담론(European discourse)으로서 경쟁법 개편, 플랫폼 규제 논의의 의의와 시사점에 대해서도 연구하고 다뤄볼 기회가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