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COLA Asia] Sustainability, Innovation, and Merger Regulation: 'What Is the Role of EU Merger Control in Ensuring Sustainability? Innovation Output, Innovation Diversity and the Commission's Innovation Theory of Harm in Agrochemical Mergers' (Sep 20, 2020)
Speakers: Elias Deutscher (University of East Anglia) and Stavros Makris (European University Institute)
유럽 학계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정말 많은 면에서 부러움을 느끼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부러운 것은 대학원생이나 신임 박사 등에게도 연구 과정을 발표하고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정말 많이) 주어진다는 점이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신진 학자'라는 이름의 행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들이 연구를 발표하고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매우 드문 편이고, 대학원생의 경우에는 대학원 수업을 제외하면 기회가 거의 없다. 물론 우리는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인문사회계 대학원생(full-time) 수 자체가 거의 희소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일 테지만... 체념을 한다고 부러운 마음이 가시지는 않는 것 같다.
각설하고, 어제는 영국 University of East Anglia의 Elias Deutscher와 유럽 European University Institute의 Stavros Makris가 ‘유럽연합(EU) 기업결합 심사 과정에서의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고려 방법’을 주제로 발표한 세미나에 참석하였다. ASCOLA Asia에서 주최하는 세미나 시리즈 중 하나인데, 꽤 재미있었다. 개인적으로 내가 요즘 관심 있는 주제인 지속가능성 이슈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재미있었던 것도 있지만, 꼭 개인적 관심이 아니었더라도 상당한 리서치 내용을 본인들 시각에 따라 논리 정연하게 잘 구조화 하고 있어서 유익한 시간이었다. 그동안 지속가능성에 대해서 흥미는 많았지만 공부를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발표를 통해서 정말 많이 배웠고, 논문이 나오면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발표 내용을 간략하게만 요약하면, 우선 이들의 연구는 주로 기업결합 심사에서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려를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에 집중되었다. 이들은 '유럽연합 기업결합 법제에서 지속가능성 고려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연구 질문으로 두고, Dow/DuPon 사건과 Bayer/Monsanto 사건을 연구 대상으로 분석, 평가하면서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하였다. 결론적으로, 이들은 '위 사건들에서 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는 경쟁이 많아지면 혁신이 많아지고 지속가능성에 긍정적이라는 접근을 취하였지만, 앞으로는 좀 더 다극적(polycentric) 이해에서 출발하여 경쟁과 혁신 다양성(innovation diversity)의 관계를 고려하는 접근을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하였다. 내가 제대로 이해했다면, 기존 집행위원회의 접근법은 '혁신 산출(innovation output)' 중심적 접근, 이들의 접근은 혁신 생태계 중심적 접근으로 나누어지는데, 이러한 분류 위에서 이들은 기업 결합 심사에서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려는 '경쟁과 혁신 다양성의 관계를 고려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물론 여기서 '경쟁과 혁신 다양성의 관계를 고려해야 한다'는 이들의 주장이 곧바로 '둘이 양의 관계에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은 아니었다. 이들은 둘의 관계가 양의 관계에 있다는 가설을 지지하는 연구 결과와 기각하는 연구 결과 모두를 충실하게 제시하였으며, 이에 따라 '둘의 관계는 관련 산업이나 연구 개발의 종류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는데 앞으로 기업결합 심사에서 이러한 부분을 제대로 고려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는 정도로 주장하였다. 다만 이들은 가까운 경쟁자가 없으면 혁신 다양성에 대한 부정적 효과가 커질 수 있다는 점은 꽤 힘주어 강조하기는 하였다.
개인적으로 이번 발표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혁신 다양성'이란 개념이었다. 그동안 나는 그냥 막연하게 '슘페터 식으로 독점 이윤이 혁신을 만들어내는가 아니면 애로우 식으로 경쟁이 혁신을 만들어내는가' 정도만 고민해왔지, 경쟁과 혁신 다양성, 즉, 혁신 생태계라는 시각에서는 생각을 해 본 일이 없었기 때문에 이번 발표에서 처음 접한 '혁신 다양성'이란 표현을 매우 흥미롭게 느꼈다. 나뿐만 아니라 (다소간 논란은 있지만 어쨌든) 현재 질서자유주의적(ordo-liberal) 성격을 많이 나타내고 있는 유럽연합 경쟁법 담론에서 '혁신 다양성'이라는 개념은 앞으로 꽤 설득력 있게 논의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동시에 과연 유럽연합 외 다른 관할권들에서도 위와 같은 고려를 차용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조금 의문이 들었다. 시장 단위가 작은 개별 회원국 레벨에서도 위와 같은 접근이 과연 유용할지, 단위가 작은 시장에서는 'icentive to innovatie'보다는 'capability to innovate'가 중요한 게 아닐지, 이런 의문들이 머릿 속에서 계속 이어졌다. 만약 우리나라 공정거래법 기업결합 심사에서 지속가능한 발전, 혁신 다양성 고려를 한다면... 상대적으로 작은 시장 단위에 대한 고려와, 경쟁과 산업정책적 접근 사이의 밸런싱이 더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속가능성은 사실 그동안 관심만 많았지 제대로 공부해본 적 없는 주제였기 때문에, 내가 이들의 발표와 이어지는 토론 내용을 얼마나 제대로 이해하고 소화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특히 지속가능성 공동행위가 아닌 기업결합 분야에서, 그것도 디펜스가 아닌 오펜스 방향에서의 고려라서 조금 더 생소했던 것 같다. 어쨌든 분명 흥미로운 시간이었고, 지금 당장의 연구 주제와는 직접적 관련은 없지만 이후의 연구에 좋은 자극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내 연구 주제와 관련해서도 이런 자극이 좀 많았으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