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상윤 Mar 19. 2019

유럽의회 선거에 대한 단상들...

(Image from the European Parliament's website)


작년 8월, 메르켈이 독일 연방은행의 Jens Weidmann을 유럽중앙은행(European Central Bank) 수장으로 밀어주려던 계획을 접고, 그대신 현 경제부 장관인 Peter Altmaier를 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의 위원장으로 밀어주려 하고 있다는 기사를 매우 흥미롭게 읽었다. 물론 집행위원장이 누가 밀어준다고 되는 자리는 아니다. 다양한 맥락이 있었겠지만, 아무튼 유럽연합이 단순한 경제적 통합을 넘는 복합적인 단일체임을 잘 보여주는 기사라서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잘 알려져 있듯이, 집행위원회는 독점적 입법발의권과 집행권을 부여받고 현재 유럽연합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기관이다. 당연히 이런 기관의 수장이 누가 되느냐는 유럽연합 정치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다. 더군다나 2014년 이후 집행위원장의 임명은 사실상 "spitzenkandidaten process" 방식(유럽연합의 각 정치그룹이 유럽의회 선거 전 대표후보를 내면 선거에서 다수득표를 한 그룹의 대표후보가 집행위원장이 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고, 오는 5월 23-26일에는 2019-2024년 임기의 유럽의회 선거가 있기 때문에 관련 이슈는 올해 더욱 흥미롭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잠깐 찾아보니, 현재 가장 큰 정치그룹인 중도보수 EPP에서는 Manfred Weber가, 제2그룹인 중도진보 S&D에서는 Frans Timmermans가, 유럽연합 회의주의를 대표하는 제3그룹 ECR에서는Jan Zahradil이 각각 대표후보로 확정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더해 리버럴 그룹인 ALDE 측에서는, 아직 미정이지만, 현 그룹대표이자 유럽의회 대표인 Guy Verhofstadt 또는 현 경쟁담당 집행위원인 Margrethe Vestager 등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고 한다. ALDE가 아직까지 대표후보를 확정짓지 않고 있는 이유는, 현재의 선출방식이 제4그룹인 ALDE에는 불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ALDE의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그동안 "spitzenkandidaten process" 방식은, 한편으로는 집행위의 민주적 정당성 확보 차원에서 지지를 받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법률적 근거가 불분명하고 다수당 EPP에만 유리한 방식이라는 점에서 계속 지적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즉, 현 선거제도는 회원국별 정당 단위의 비례대표제에 기반해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제1그룹인 EPP 외 다른 그룹이 위원장을 배출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유럽의회의 선거결과가 곧바로 위원장을 결정하는 방식은 유럽연합조약(TEU) 제17조 7항의 해석에도 꼭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되어 온 것이다. 
* 참고로 제17조 7항은 정상회의(European Council)가 집행위원장 후보를 추천할 때 의회의 선거결과를 “고려”만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당연히 정상회의는 "spitzenkandidaten process"의 법률적 구속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미 ALDE는 현행 선거제도를 수정하는 "transnational list(TNL)"를 지지한다고 밝힌 바 있다. 앞서 말했듯 현행 선거는 회원국별 정당 단위의 비례대표제(national list)인데, TNL은 여기에 더해 영국의 탈퇴로 만들어지는 공석을 유럽연합 차원의 비례대표(transnational list)로 같이 뽑자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유럽시민들은 1인당 2표를 갖게 되고 한 표는 회원국의 정당 리스트에, 다른 한 표는 유렵연합의 리스트에 투표할 수 있게 된다. TNL도입은 작년 2월 유럽의회에서 부결되기는 하였으나, 아직 논란의 불씨가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다. ALDE는 여전히 "spitzenkandidaten" 제도를 비판하고 있으며, 프랑스의 집권정당인 En Marche도 같은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TNL(적어도 그 취지만큼)은 유럽연합의 목표인 United States of Europe에도 부합한다.


ALDE는 이번 선거에 대표후보를 내지 않고 최소 7명의 후보'군'을 낼 것이라고 밝힌 상태다. 이 후보군의 역할에 대해서는 아직도 계획이 불투명한데, 분명한 것은 범유럽연합 차원의 선거제도 도입을 계속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ALDE가 아직까지도 이번 선거에서 어떻게 할지 구체적 그림을 못 내놓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아직 소속 그룹을 정하지 않고 있는 En Marche의 거취와 관련이 깊다. 기성 정치에 대한 저항을 기치로 정권을 잡는 데 성공한 En Marche는 그동안 EPP와 S&D와 거리를 두면서, 지향점도 비슷하고 정치적 이해관계도 크게 다르지 않은 ALDE와 상대적으로 가까운 관계를 맺어왔는데, 선거를 앞두고 노란조끼 시위 등으로 프랑스 국내 정치에서 어려움을 겪게되자 En Marche가 ALDE와도 거리를 두게 되었고 이 때문에 ALDE의 스텝이 꼬여버리게 된 것이다. ALDE로서는 이번 선거에서 20석 이상 가져갈 것으로 예상되는 En Marche의 참여가 절실한 상황인데, 막상 En Marche는 계속 거리를 두고 있으니 답답한 마음에 뭔가 이것저것 돌파구를 마련해보려고 노력하고 있는 느낌이다.


개인적인 예상으로, "spitzenkandidaten" 제도가 약점이 많기는 하지만, 마땅한 다른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는 (적어도 이번 선거는) 현재대로 갈 것으로 보인다. 정상회의도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선거결과를 뒤집는 밀실 결정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메르켈이 유럽의회의 선거결과가 결정적인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도 EPP의 후보를 지지한다고 말한 것이 대표적이다. 사실 유럽에서 많이 채택하고 있는 의원내각제 시스템에 비춰봐도 "spitzenkandidaten" 제도가 굉장히 잘못된 제도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것 같다.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ALDE가 좀 더 잘 되면 좋겠지만, 이번 선거 역시 쉽지는 않을 것 같다. 부디 ECR을 누르고 최소 제3그룹까지는 올라설 수 있기를...

작가의 이전글 독일 연방카르텔청의 페이스북 사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