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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윤 Oct 19. 2020

세미나 후기: 제8회 한일미래대화


지난 10월 17일 토요일, 동아시아연구원, 최종현학술원, 겐론 NPO가 공동으로 주최한 '제8회 한일미래대화'에 참석했다. 온라인으로 진행되었지만 운 좋게도 제한된 숫자의 청중은 입장이 된다고 해서 참석해보았고 덕분에 유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한일 이슈에 대해 관심만 많고 아는 바가 별로 없었는데 세미나에 참석한 전문가 분들의 의견을 통해서 깊이 있는 내용을 많이 배울 수 있었다. 특히 최근 일한 양국 국민들을 대상으로 상호 인식을 조사한 결과와 이에 대한 다양한 해석은 상당히 흥미로웠다. 물론 세미나 내용이 전부 여기에 매몰된 것은 아니었으며 중국의 팽창주의에 대한 대응, 쿼드(Quadrilateral Security Dialogue) 참여 필요성 등 현안과 관련된 다양한 이슈들도 논의되었고 모두 좋았다.


2020년 한일국민 상호인식조사는 이미 언론 등을 통해 여러 차례 보도된 것처럼 많은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다. 그중에서도 세미나에서 중요하게 언급된 점들은 (i) 한국인들의 일본인들에 대한 호감도 폭락 및 비호감도 급증, (ii) (큰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지만) 일본인들의 한국인들에 대한 호감도 소폭 증가, (iii) 한국인들의 경우 호감 그룹 내 20-30대 층 대거 이탈 등이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하여 패널로 나온 전문가분들이 여러가지 해석과 분석을 제시했고 주요 포인트들만 추려본다면 다음과 같다. (i) 한국인의 경우 사실과 어긋나는 현실 인식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예컨대 일본이 사과하지 않았다거나 일본이 군국주의라는 인식 등이 강한 점 등) (정재정 명예교수), (ii) 한국과 일본에서 모두 언론과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계속해서 잘못된 시그널을 보내면서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는 분석(오쿠조노 히데키 교수)(다만 언론과 정부가 국민감정을 이용해먹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국민감정을 오도하는 것인지 여부는 논쟁적인 것 같다), (iii)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맥락에서 일한 관계는 분명 개선되고 있으며 다만 현재의 갈등은 작은 변화와 일시적인 모순에 대한 적응으로 볼 수도 있다는 시각(소에야 요시히대 명예교수), (iv) 한국인들 특히 젊은 층들은 한국을 선진국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이러한 토대에서 일본과 대등한 관계의 파트너십을 요구하고 있다는 분석(권용석 교수) 등.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꼽으라면 양측 모두 '현재 상황이 문제’라는 인식을 갖고 있으며 이러한 문제가 ‘양국의 중앙집권적(대통령 중심/총리 중심) 의사결정 구조와 국민들이 갖고 있는 지나친 민족주의적 감정 등에 기인하고 있다’는 진단에서 상당히 일치된 공감대를 이루고 있는 점이었다. 물론 이번 세미나의 참가자 대부분은 이미 일한 관계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로 구성되었을 수 있기 때문에 지나치게 긍정적인 평가는 지양해야겠지만, 그래도 위안부 합의 및 파기, 그리고 징용공 판결과 이어진 수출 규제 조치 이후 완벽히 단절되고 앞으로도 영영 대립될 것만 같았던 둘 사이에 이만큼의 공감대가 있다는 사실은 상당히 고무적으로 느껴졌다. 물론 한국과 일본이 유럽이나 아세안처럼 진정한 지역 통합(regional integration)까지 나아가기 위해서는 앞으로 가야할 길도 멀고 넘어야 할 산도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이 정도도 통합의 출발점으로 삼기는 충분하며 사카모토 류이치 감독이 말했던 것처럼 한국과 일본이 민족주의적 성향을 극복하고 유럽연합(European Union)처럼 초국가적 공동체를 이루는 것도 실현 불가능한 꿈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반적으로 유익하고 희망적인 세미나였다.



다만 앞으로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번 행사의 몇 가지 아쉬웠던 점들을 남기지 않을 수가 없다. 무엇보다도 한일 '미래' '대화'라는 세미나 제목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게 일한의 '과거' '현재' 치우친  그리고 '대화' 부족했던  등이 크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물론 징용공 판결을 둘러싼 문제와 수출 규제 조치로 촉발된 갈등, 쿼드 등 현안들도 중요하다. 하지만 한일 관계가 지향하는 모델이 무엇인지 등과 같은 미래지향적 이야기가 거의 없었다는 점은 분명 이번 세미나의 치명적인 한계였다. 특히  번째 세션은 "한일 청년 대화"라는 제목을 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시간은 기성 세대의 발제로 채워졌으며  10-20명에 달했던 양국 청년 패널의 발표는 행사 마지막에 가서야 고작  마디씩 하는 정도로 급하게 마무리되었는데, 아쉬움을 넘어 심각한 문제라고 느꼈다. 아울러 1, 2 세션에서 발표하고 토론한 전문가 패널 20 가량이 100% 중년 이상의 남성으로 구성되었던 부분 역시 상당히 실망스러웠  누구도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분위기는  충격적이었다.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것은 청년 패널에서는 남녀 성비가 어느정도는 균형을 맞추어 구성되었고, 청년 패널들 사이에서 이번 세미나 운영 대한 문제의식이 공유되고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제2세션이 끝나자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자리를 비우는 한국 패널분들을 보면서 상당한 당혹감을 느꼈는데, 이 부분을 김보람(마쓰시타 정경숙)씨가 발언 중 위트 있게 지적해주셔서 정말 시원하고 좋았다.


사실 기성 전문가 패널의 발제와 토론은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론, 기술적 측면에서는 유익했지만, 미래 지향성과 상상력 부분에 있어서는 정말 많이 부족했다. 그들에겐 청년 패널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자세가 꼭 필요했다. 나는 세미나 중 '앞으로 한국과 일본이 유럽연합처럼 공통의 가치를 지향하는 지역 공동체로 나아간다면 그 핵심 가치는 무엇이 되겠느냐'는 질문을 했었는데(세미나 3:10:57 부분), 전문가 패널분들의 발언보다는 청년 패널들의 발언 속에서 더욱 만족스러운 답을 얻을 수 있었다. 특히 김보람(마쓰시타 정경숙)씨의 경우 (발표 시간이 너무 제약되었던 관계로 정확히 듣지는 못했지만) 현재 기후환경 변화와 관련된 활동을 하고 있다고 밝혔는데 나는 이렇게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과 같이 초국가적인 연대가 이뤄져야하는 가치가 바로 한일 양국이 함께 성공적으로 지향해나갈 가치라고 생각했다. 아울러 성평등, 비차별, 비핵화 등에서 한일 양국이 협력을 강화하고 동아시아에서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 멋진 일은 없을 것이다. 만약 마지막 세션이 이렇게 자유롭고 미래지향적인 상상력이 펼쳐질 수 있는 청년들에게 제대로된 ‘대화’를 할 수 있는 장(forum)을 제대로 제공해주었다면 이번 세미나는 더 뜻 깊고 성공적인 자리가 되었을 것이다.


여러 아쉬운 점들에도 불구하고, 서두에서 말했듯 최근 수년간 악화 일로를 걸어 온 양국 관계에 비추어볼 때 이번 세미나는 충분히 의미 있고 유익한 시간이었다. 이러한 행사를 계기로 한일 간에 좀 더 대화가 많아지고 이를 통해 관계 개선이 이뤄지면 좋을 것이다. 한 가지 더 바람이 있다면 이제는 '국가 간 협력 관계'라는 낡은 틀에서 벗어나 ‘동아시아 지역 공동체’라는 좀 더 현대적인 틀에서 우리 공동체가 추구해야 할 가치와 나아가야할 지향점에 대한 담론들이 좀 더 활성화되었으면 좋겠다. 특히 한일 양국의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말이다. 기성 세대가 말하는 자유와 민주, 기술 협력 외에도, 기후변화, 성 평등, 차별 금지, 비핵화, 불평등 경제구조 개선 등 일본과 한국의 젊은 세대가 함께 이야기하고 지향할 수 있는 가치와 논의들은 정말 무궁무진하다. 사회 구석 구석 많은 부분들에서 세대 교체가 꼭 필요하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Image from facebook.com/koje.compet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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