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그림을 보는 안목이 없다. 즐기는 법도 모른다. 그래서 미술관에는 잘 가지 않는다. 더러 가고 싶은 때가 있어도 집에서 가만히 검색을 해볼 뿐 진짜 미술관을 찾아 나서는 일은 잘 없다. 단 유학하는 동안은 예외였다. 말로만 듣던 유명한 미술관들이 등하굣길 곳곳에 있었고, 그런 곳들은 나 같은 문외한들도 작품들을 재밌게 볼 수 있도록 구성을 잘해놔서 자주 찾았다. 그때 일부러라도 최대한 많은 시간을 내어 즐길 껄 괜히 바쁘단 핑계로 좀 더 많이 가지 못했던 게 아직까지도 큰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당시 보았던 그림 중 "Flying Fox"라는 그림이 있었는데 지금도 가끔 생각날 정도로 인상이 깊었다(아래). 특별한 것은 없고 그냥 아주 커다란 박쥐 그림이다. 사실 반 고흐 뮤지엄에 걸려있지 않았더라면 다시 보지 않았을 못생긴 그림이었다. 실제로 이 그림에 대한 평가는 당시에도 별로 좋지 않았고, 지금도 그다지 좋지는 않다고 들었다. 구성도 이상하고, 아름답지도 않고, 그렇다고 작품의 의도가 이해되는 것도 아니고. 그 유명한 빈센트 반 고흐의 초기 작품이라는 의미가 없었다면 아마 진작에 잊혔을 그런 그림이었다. 나도 다른 게 아니라 '빈센트 반 고흐 같은 거장이 그린 그림 중에도 이런 졸작도 있구나' 싶어서 인상 깊게 보았던 것 같다.
또 하나 비슷하게 인상적이었던 그림은 "The Potato Eaters"였다(아래). "Flying Fox"에 비하면 꽤 많이 알려진 그림이지만 역시 특별한 작품은 아니다. 지금이야 '당시 서민들의 애환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라고 하면서 의미 있게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당시의 평가는 엄청 끔찍했다고 한다. 너무 어둡고, 구성도 형태도 이상하고, 작품 의도도 뻔하고. '네덜란드 사실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던 반 고흐의 초기작'이라는 의미가 없었다면 이 역시 빠르게 잊혔을 그림이었다. 실제로 반 고흐는 그림이 안팔리니 돈이 없었고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결국 동생이 있는 파리로 떠났다고 한다.
이후의 인생 스토리는 잘 알려진 그대로다. 그는 파리에서 동생과 함께 2년을 지냈고 이후 아를(Arles)로 떠났으며 그곳에서 계속 작품 활동을 했다. 하지만 전혀 인정받지 못했고, 친구(고갱)와 다툰 뒤 귀를 잘랐으며, 이후 정신병자가 되었고, 얼마 못 가 총상으로 요절했다. 물론 아를에서의 작품들은 나중에 높은 평가를 받기는 했지만 그건 그의 삶이 다 끝난 뒤의 일이었다. 화가로 사는 동안 그에게 "The Potato Eaters" 이상의 평가가 주어진 적은 없었다.
한동안 잊고 있던 반 고흐의 두 작품과 그의 인생 스토리가 다시 생각난 것은 얼마전 학위논문 심사를 받으면서였다.
세 번의 심사와 수정을 거쳤지만 내 학위 논문은 마지막까지 졸작이라는 평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연구 질문부터 방법 그리고 시사점 도출 과정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 구석도 지적받지 않은 곳이 없었다. 솔직히 심사 전까지만 해도 남들이 잘 시도하지 않는 어려운 주제를 나름 잘 풀어낸 좋은 연구라고 생각했고 해외 학회 발표 때 반응도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심사에서의 혹평에 당혹감이 들었고 상심도 컸다. '내 논문이 그렇게 별로인가,' '그 긴 시간 동안 난 대체 뭘 한 거지,' '취직은 할 수 있을까' 많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남의 인정을 받으며 살기 위해 대학원을 온 것은 아니었지만, 돈과 시간을 쏟은 결과가 혹평뿐이라는 사실은 나를 크게 위축시켰다. 이 길이 내 길이 맞나, 이런 부끄러운 실력으로 앞으로 얼굴 들고 살아갈 수 있을까, 반 고흐가 평생 “The Potato Eaters” 이상의 인정을 받지 못했던 것처럼 나도 평생 논문심사 때의 혹평 이상을 받지 못한다 해도 계속 이 일을 좋아할 수 있을까... 심란했다. 심사가 끝나고,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이 축하해주었지만, 정작 나는 이런 저런 생각들로 이전보다 심적으로 더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다행히도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최종본을 제출하고 일상을 되찾아가면서 조금씩 지난 시간을 긍정적으로 돌아볼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
생각해보면, 결과에 있어서 아쉬움은 당연한 것이었고, 그리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내가 남들보다 탁월하지 않은 것도 이미 알았고 큰 성취를 내지 못하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감생심, 그런 것들을 바라고 대학원에 들어온 것은 아니었다. 내가 진정 바라고 좋아했던 것은 과정이었다. 내가 내 생각을 갖고, 나로서,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교류하며 그 속에서 성장하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 ‘박사 과정’이란 여정 그 자체를 추구했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감사하게도 나는 그런 여정을 잘 거쳐왔고, 또 그 속에서 많은 것들을 얻었다. 내가 누렸던 많은 것들을 생각하면, 결과에 있어서 아쉬움은 정말 사소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반 고흐의 두 졸작을 보면서, 나는 그가 그림 그리는 일을 정말 대단히 좋아했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그에게 있어 그림은, 남들의 인정과는 상관 없이, 자신의 유한한 시간을 의미있게 만들어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여정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새삼 자신의 선택을 지키며 마지막까지 자신만의 여정을 살다 간 그가 정말 존경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의 서투른 삶이 결과를 떠나 과정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빛나고 소중한 것일 수 있음을 일깨워주는 두 작품이, 졸작이지만, 그래도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다.
박사 과정이 끝날 때가 되자 많은 사람들이 내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어본다. 이제 뭘 할 것이냐고. 그때마다 뭔가 준비한 대답을 내놓긴 하지만 사실 아무말이나 내뱉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앞으로 내가 무슨 일을 하며 어떤 삶을 살아갈게 될지 모르겠다. 계속 공부를 할 수 있을지, 회사에 가게 될지, 한국에 있을지, 외국으로 나갈지... 전혀 모르겠다. 다만 무슨 일을 하게 되든, 앞으로도 어떤 소중한 의미가 있는 여정을 떠나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 속에서 성장하고 내 일에 대한 기쁨을 찾고 삶에 대한 만족감을 잃지 않는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박사 과정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힘든 시간들도 많았지만, 돌이켜보면, 정말 즐거운 여정이었고,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