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Exclusion & foreclosure (2)
(cont'd)
"Exclusion"과 "foreclosure"에 대해서는 이미 지난 글에서 한번 다루었지만 부가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 다시 또 한 번 글을 쓰게 되었다. 지난번 글이 한국어의 '배제'라는 표현을 영어로 표현할 때에 관한 것이라면 이번 글은 영어 표현, 특히 "foreclosure"를 한국어로 번역할 때에 관한 것이다.
한국 경쟁법 문헌들을 보면 가끔 "foreclosure"를 '봉쇄'로 번역하는 경우를 본다. 아마도 봉쇄와 배제의 의미를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인식 위에서 "foreclosure"를 사전 번역 그대로 '봉쇄'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별 문제없어 보이지만 경쟁법 연구의 맥락에서 본다면 이것은 재고해볼 필요가 있는 용례다.
왜냐면 두 표현이 의미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봉쇄'는 시장에 대한 접근에 관한 것이고, '배제'는 경쟁자의 존속에 관한 것이다. '행위'라는 관점에서 보면, '봉쇄'는 시장 전체 또는 일부를 남들이 접근 못하게 막아버리는 행위를 뜻하고, '배제'는 경쟁자들을 시장 안에 있지 못하게 만들어버리는 행위를 뜻한다. 한발 더 나가서 '효과'의 관점에서 보면, '봉쇄 효과'는 시장 일부를 내 영역으로 막아버리는 효과를, '배제적 효과'는 다른 사업자들이 시장에 끼어들지 못하고 주변화(marginalization)되거나 제거되어버리는 효과를 뜻한다. 비슷하지만 분명 다른 표현이다(같은 취지로, 정재훈 (2022), 127-128면).
예컨대, 커피 원두를 파는 사업자가 까페까지 차린다고 해보자. 수직 통합(vertical integration)이다. 그리고 이 사업자는 다른 사업자들에게는 커피 원두를 팔지 않기로 한다. 이 경우 해당 사업자는 시장을 봉쇄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꼭 성공적인 배제 효과(exclusionary effect)를 만든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만약 해당 사업자가 그다지 대단한 사업자도 아니고, 다른 까페 사장님들이 어디서든 원두를 구할 수 있고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면? 봉쇄가 어떻든 해당 시장은 아직 경쟁이 살아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달리 볼 수도 있다. 만약 저 이기적인(?) 커피 원두 사업자가 시장 점유율이나 브랜드 파워 등에서 매우 독점적인 강력한 사업자고 그가 차린 까페도 역시 시장에서 막강한 장악력을 자랑하는 경우라고 해보자. 그의 수집통합과 시장 봉쇄는 곧 배제 효과를 만들어낼 것이다. 기존 사업자들은 비실비실 시장 주변이나 맴돌다가 사업을 접을 것이고 다른 사업자들은 진입을 단념하게 될 것이다. 다소 극단적이지만, 그럼 소비자들은 다양한 커피 맛도 누리지 못하게 되고 어쩌면 울며 겨자먹기로 높은 가격의 커피만 마시게 될 수 있다.
그렇다. 이게 배제 효과고 단순한 봉쇄 효과와 다른 점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과거와 달리 현대 경쟁법은 경제학의 발전과 함께 후자의 경우에 위법성을 맞춰 변화해왔다. '봉쇄'와 '배제'를 구별하지 않는 것은 단순한 실수 혹은 이러한 발전을 의도적으로 숨기기 위한 것일 수 있다. 물론 그간의 변화에 반대할 순 있지만, 이 경우 오인 여지가 없도록 왜 '봉쇄'란 표현을 썼는지에 대한 자세한 논증이 뒤따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참고로 행위 관점에서 좀 더 부연하면, 봉쇄는 끼워팔기나 전속계약 같은 경우를 생각할 수 있고 배제는 리베이트, 약탈적 가격, 이윤압착 이런 경우를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애매하거나 헷갈리면 어떤 경우든 한국어로는 그냥 '배제'라는 표현만 쓰는 편이 적어도 현대 경쟁법에서는 더 안전한 용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행히도, 한국어로 번역할 때와 달리, 한국어를 영어로 바꿀 때는 이전 포스팅에서 설명한 것처럼 단어 선택에 큰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없다. 놀랍게도 영어 표현인 "foreclose"는 배제하다는 뜻과 봉쇄한다는 뜻 모두에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즉, 경쟁자를 배제한다고 할 때 "exclude competitor"뿐만 아니라 "foreclose competitor"라고 해도 문제 없이 알아 듣는다는 것이다.
다만, 이것도 유럽에서의 이야기며 미국은 또 다르다. 미국에서는 "exclusion"과 "foreclosure"를 배제와 봉쇄로 구별해서 쓰고 있으니 주의하는 편이 좋다 (e.g., Whinston (1990), p.839, p.840, p.844, and p.855).
한 마디 덧붙이면, 사실 유럽에서도 그리 안전한 것은 아니다. 지난번 글에서는 EU 위원회(European Commission)의 배제적 남용행위 가이던스(2008 Guidance)의 표현을 예시로 들며 "foreclosure"나 "exclusion"이나 대부분 비슷하게 배제의 뜻으로 쓰인다고 설명했지만, 이는 영어판의 이야기다. 프랑스어판을 보면, 정확히 시장 봉쇄를 지칭하는 경우(20번 단락과 40번 단락)에만 "verrouillage"라는 표현을 쓰고 있으며, 그 외의 경우 (경쟁사업자 배제 또는 봉쇄 등의 결과로 발생하는 배제적 효과를 지칭하기 위하여) "éviction"이라는 표현을 쓴다. 한편 EU 법원의 판결문에서는 영어판에서도 "foreclosure"라는 표현은 봉쇄로 쓰인다(e.g., Generics, para 157). 웬만하면 '배제'는 "exclusion"으로 표현하는 것이 좋다.
아직 내가 제102조 가이드라인(초안)의 내용을 꼼꼼히 보진 않았지만, EU 법원의 기존 판례법(e.g., Superleague, paras 129-131)을 뒤집지 않는 한 봉쇄 효과가 그 자체로 배제 효과가 될 일은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