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에게 배신당해 고혈압 환자 된 24년차 운동전문가

스물한 살 운동선수를 고혈압 환자로 만든 운동법

by 이상대 중년 홈트

운동해야 되는데…'

'나이 들수록 중요한데 큰일이네…'

'정보가 너무 많은데 누굴 믿어야 할까…?'



아마 유튜브 채널의 구독 버튼을 누르기 전, 사람들은 이런 고민을 할 것이다. 이 글은 내가 어떤 마음으로 '이상대 중년 홈트'유튜브를 운영하는지 내 운동 철학의 뿌리는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이것은 광고가 아닌, 나의 고백이다. 반응이 괜찮다면 브런치에도 앞으로 글을 작성할 예정이다(협박중)



이 글을 끝까지 읽는다면, 당신의 몸을 맡길 전문가를 선택하는 명확한 기준이 생길 것이다. 나와 같은 실수는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24년차 운동전문가의 경험을 담아 이 글을 쓴다. 지금까지 1,080명 이상의 헬스 PT회원을 지도했기에 믿어도 좋다.



(이번 글은 편의상 경어는 생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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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버티게 해 준 유일한 동아줄, 운동

나의 10대 시절 부모님이 이혼하셨다. 당시에 어머니 2명, 새어머니의 자녀, 친할머니 5명과 가족이 되었다가 이별했기에 많이 혼란스러웠다. 두 살 아래 남동생, 아버지, 그리고 가끔 나타나던 쥐 두 마리와 함께, 5평 남짓한 반지하 방의 축축한 공기 속에서 살았다. 경제적으로 어려워 아버지께 먹고 싶은 것을 차마 말하지 못했다. 검도선수였던 나는 영양 부족으로 훈련 중에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간 게 세 번이었다. '탈진'이라는 진단 결과는 어쩌면 당연했다.

이상대중년홈트.jpg 왼쪽에 후배보다 작고 왜소한 중3 때 모습


가장 서러웠던 것은 엄마의 빈자리였다. 동료들의 부모님들이 수시로 숙소에 찾아와 아들의 등을 두드려주고, 함께 밥을 먹는 모습이 정말 부러웠다. 그럴 때마다 나는 조용히 자리를 피했다. 학교 매점의 빵으로 허기를 채우고 숙소로 돌아와선, 엄마 없는 티가 날까 봐 오히려 더 밝게, 더 크게 웃곤 했다. 한 번은 그런 내 모습이 안쓰러우셨는지, 한 선배의 어머님께서 말없이 신라면 한 박스를 건네주시며 나를 꼭 안아주셨다. 따뜻한 품 안에서 소리 없이 흐르던 눈물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렇게 위태롭던 나를 붙잡아준 것이 바로 ‘운동’이었다. 땀 흘리는 시간만큼은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고, 덕분에 나는 엄마의 빈자리를 견디며 대학을 전액 장학생으로 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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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대중년홈트 (3).jpg 실제 취득한 메달과 트로피


가장 큰 믿음이 가장 큰 배신이 되었을 때

하지만 대학생이 되어서도 나의 고민은 계속되었다. 운동 자체는 좋았지만, 코치님께 맞으면서 억지로 해야 하는 훈련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코치님이 없으면 눈치를 보며 대충 하는 날들이 반복되었다. 이런 방식의 훈련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고, 나는 잠시 멈춰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결국, 대학 생활 도중 해병대에 지원했다.



그렇게 11년간 운동선수로서 건강만큼은 자부심이 있었지만 스물한 살, 해병대 신체검사장에서 받은 '고혈압' 판정은 내 모든 것을 흔들었다. 21살의 운동선수가 고혈압이라니, 정말 억울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결과적으론 원하던 해병대에 입대했으니 가볍게 넘길 수도 있었지만 당시엔 용납할 수 없었다. 마치 지난 11년의 세월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억울함과 당혹감에 며칠 밤을 잠 못 이루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대체 무엇이 잘못된 걸까?’ 이 사건을 계기로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무조건 열심히만 하는 운동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구나.”

이상대중년홈트 (2).jpg 해병대에서 군 복무 중인 모습(왼쪽)


나의 아픔에서 당신의 희망을 발견하다

그날 이후, 나는 11년간의 검도선수 길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지난 13년간, 트레이너로서 내 인생을 걸고 오직 '올바른 운동'이 무엇인지 연구하는 데만 매달렸다. 서점에서 책을 파헤치고 해부학 영상을 밤새워 공부하며 주말엔 오프라인 강의도 듣고 몸의 언어를 다시 배웠다.

이상대중년홈트 (4).jpg 2012년 1월 16일 '트레이너'가 된 모습


이 과정에서 나 자신의 건강을 회복했을 뿐만 아니라, 내가 진짜 나아가야 할 사명을 발견했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자살률 & 노인 빈곤율 1위'라는 아픈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늘어나는 약 봉투, 자식에게 짐이 될까 하는 걱정… 중년 이후의 삶이 외롭고 아픈 기억으로 채워져서는 안 된다.

그래서 나는 24년 차 운동 전문가로서, 내가 쌓아온 모든 것을 '이상대 중년홈트'유튜브에 아낌없이 공개하고 있다. 1,080명이 넘는 분들을 지도하며 얻은 데이터와, 잘못된 방법으로 내 건강을 잃었던 경험을 녹여냈다. 많은 분들이 건강하고 자신감 넘치는 중년을 맞이하도록 돕는 것, 그것이 나의 일이다.



나는 이 사명을 온전히 이루기 위해, 내가 운영했던 PT샵 '쓰리핏스튜디오'를 2025년 9월 1일에 다른 대표님께 양도했다. 한 공간에서 제한된 소수의 인원이 아닌, 온라인에서 더욱 많은 중년 분들을 지도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이제 나의 모든 시간과 경험은 오직 '이상대 중년 홈트'에만 쓰일 것이다.

이상대중년홈트 (5).jpg KBS 인터뷰하는 모습


마무리하며

지금까지 내가 어떤 마음으로 '이상대 중년 홈트'를 운영하는지, 내 철학은 무엇인지 공개했다. 과거부터 남몰래했던 생각까지 두서없이 적었더니 부끄러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이 글을 읽고 단 한 명이라도 '운동과 친해졌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 같다.



나는 뇌사 시 장기기증 서약을 했다. 그래서 9명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이것은 내게 운동을 통해 한 사람의 인생이 얼마나 깊고 넓게 변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과도 같다. 감사하게도 2017년부터는 '사랑의 장기기증 운동본부' 홍보대사가 되어 건강의 가치를 알리는 일도 하고 있다. 앞으로 '이상대 중년 홈트' 유튜브와 블로그를 통해, 당신에게 '건강하고 자신감 넘치는 중년'을 선물하는 것으로 나의 약속을 지켜나가겠다.


참고로, 이 글을 읽고 아무도 반응하지 않으면 나는 삐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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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대중년홈트 (6).jpg 장기기증서약 명동 길거리 캠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