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만 원보다 더 큰 사랑

가족이란 이름으로 건넨 가장 따뜻한 응원

by 반서기




강사일이 중단이 되면서 본의 아니게 두 달 정도 알바를 했었다.

생각보다 일이 힘들지 않았고, 다음 날 바로 시급이 입금되었던 터라 밀린 대출을 조금이라도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살짝 기대가 되었다.

그때만 해도 오랫동안 진행 해오던 일이 있었기에 알바는 일주일에 두 번밖에 할 수 없었는데, 담당자는 주 5일 근무를 원했다.

결국 조건이 맞지 않아 일을 그만두었으나 나름대로 꿀알바라 생각했던 터라 아쉬움이 컸다.

모든 강의가 끊기면서 고정 지출을 감당할 수 없어 고민 끝에 시작한 일자리였으나 그마저도 못하게 되자 마음이 급해졌다.

그즈음 남편도 사업에 고전을 겪고 있다 보니 차마 내 사정을 말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당근알바’를 통해 프랜차이즈 대형 한식당의 오후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게 되었다.

하지만 공장 일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고된 나날이 시작되었다.

백 평 남짓한 넓은 공간에 점장과 주방 이모를 제외하고는, 알바는 나 혼자였다. 처음엔 그 사실이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이내 현실이 되었다.

손님 응대, 상차림, 주문 확인, 정리 정돈까지 모든 업무가 내 몫이었다. 알고 보니 점장 갑질에 아르바이트생들이 계속 바뀌었던 것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 당연히 서툴 수밖에 없었고, 이틀도 안 되는 시간에 능숙하길 기대하는 점장의 눈빛은 날 점점 작게 만들었다.


점장은 계속 굴욕적인 잔소리를 퍼부었고 모욕적인 언사를 그치지 않았다.

점장의 말 한마디는 내 자존심을 날카롭게 베어내는 칼날처럼 마음이 쓰렸다.

나는 그저, “죄송합니다. 더 신경 쓰겠습니다”라고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점장은 숨돌릴틈도 주지 않고 분풀이를 해댔고 속사포같이 쏟아낸 후에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주방이모랑 농을 섞으며 웃기 시작했다.

그런 이중적인 성격의 점장에게 점차 환멸을 느꼈던 나는 결국 일을 그만두고 말았다.


9시가 넘은 밤, 거리는 한산했고, 정류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어느 때보다도 무겁게 느껴졌다.

순간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가 서글픈 감정들이 주체가 안 되자 모든 상황을 알고 있던 작은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봉봉(딸의 예명)아…”


“엄마, 일 끝났어요?”


그 한 마디에, 꾹꾹 눌러두었던 감정이 터지고 말았다.

엄마의 우는 모습을 처음으로 본 딸이 놀란 나머지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는 곧장 내가 있는 곳으로 날아왔다.

그렇게 한참을 딸 품에 안겨서는 어린아이처럼 소리를 내며 울었다.


“엄마, 고생했어요. 잘 그만두었어요. 진짜 수고 많았어요.”


나는 아무리 슬프고 힘들어도 사람이 보는 앞에서는 절대로 내색을 하지 않을만큼 철저했었다.

그런 내 자신안에 단단히 버티고 있던 울타리가 무너지면서 감당하기 힘든 무력감이 엄습을 해온것이었다.


내가 진정이 되자 딸이 나를 달래며 말했다.


“엄마, 늦은 저녁 할래요? 그리고 우리 카페도 가요. 엄마가 좋아하는 ‘아아’ 라도 마시면 기분이 한결 나아질 거예요.”


딸은 프리랜서 디자이너로서 아무리 바빠도 내가 힘들기라도 하면 당장이라도 내가 있는 곳까지 와주곤 했다.

나는 오랜 시간 우울증에 노출이 되어 있었고 선천성 갑상선 질환 탓에 외출조차 힘들 때가 많았다.

이제는 많이 회복되었지만 체력적으로는 여전히 약했다.


일을 그만둔 지 이틀도 안되어 허리에 극심한 통증을 느끼게 되었는데 앉을 수도, 설 수도, 누울 수도 없는 극심한 고통이 시작되었다.

척추협착증이라는 생소한 병명을 진단받고는 두 달 가까이 치료를 받게 되었는데, 조금씩 나아지자, 딸이 단호하듯 말했다.


“엄마, 이제부터 진짜 일하면 안 돼요. 돈이야 어떻게든 되겠지요. 제발,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딸이 건네는 진심 어린 말이 참 따뜻하게 들렸지만 수년간 공방을 운영하면서 이어진 고정적인 지출이 여전히 존재했던 까닭에 막막하기만 했다.


그다음 날, 핸드폰에 알림이 떴다.

딸이 평소보다 훨씬 많은 금액의 용돈을 입금한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알람이 울렸다.

무려 500만 원이 입금된 것이었다.

너무 놀라 말을 잇지 못하고 전화를 걸었다.


“봉봉아, 이게… 이게 무슨 돈이야? 왜…?”


딸이 말없이 웃으며 말했다.


“사위가 엄마한테 드리는 용돈이에요.”


말 수 적고 신앙심 깊은 사위. 언제나 조용히 가족을 챙기는 사람이었다.

그 돈은 단순한 금액이 아니었다.

내게는 오천만 원보다 더 큰 사랑이자, 존중이자, 위로였다.


그날 이후, 딸과 매주 한 번씩 갖는 ‘데이트’는 바쁘고 분주한 생활 속에서 만나는 활력소와 같았다.

내가 걱정이 되었던 딸이 제안한 소중한 일상이었다.

따뜻한 커피 한 잔, 조용한 대화 한 조각.

그 시간이 내 삶에 다시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다.


때로는 세상의 작은 인정 한 마디보다, 사랑하는 사람의 다정한 말 한마디가 지친 삶에 더 큰 빛이 되어준다.

이제 거창한 닉네임보다 지극히 평범한 엄마라는 이름으로 다시금 새롭게 발돋움하고 있다.


“봉봉아, 고마워.”



일러스트 ‘반서기’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