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별 전력 수요 이슈와 전력 인프라 구축의 필요성
"골드러시에는 금맥을 찾지 말고 청바지를 팔아라"
19세기 중반, 미국 캘리포니아 준주 콜로마의 슈터 밀에서 금광이 발견됐다.
황금을 발견했다는 소식에 미국 각지, 해외에서도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많은 사람이 금을 채굴하기 위해 찾았다. 이때 금을 찾아 몰려들었던 수많은 사람이 모두 돈을 벌었을까? 사실 돈을 많이 번 사람들은 따로 있었다.
바로 청바지 장사꾼이다.
모두가 광산에서 금맥을 찾기 위해 경쟁할 때 거친 환경에 필요한 튼튼한 바지를 판매한 청바지 장사꾼들이 이득을 가장 많이 챙긴 것이다.
그럼 이 사례가 오늘 글의 제목인
'다가오는 전력 시대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
시야를 좀 더 확대해 보자. 현재 미래를 선도하는 산업은 'AI, 전기차, ESS, 신재생 에너지, 로봇'이다. 특히 AI와 전기차는 최근 가장 뜨거웠던 산업일뿐더러 현실에서도 우리가 체감할 정도로 눈앞에 와 있다.
하지만 AI도 전기차도 '이것'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바로 전기다.
아무리 성능이 좋은 전기차, AI도 전기가 공급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AI를 구동하기 위해 필요한 데이터센터, 전기차 수요에 맞추어 같이 보급되어야 하는 충전소, 신재생 에너지 전환으로 인한 새로운 전력 인프라 구축, 여기에 30년 만에 돌아온 북미 시장의 노후 전력망 교체 수요까지
이 모든 것들이 동시에 한꺼번에 닥쳐오면서 전기의 수요가 갑작스럽게 증가하고 있고 이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닌 향후 몇 십년 동안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즉, AI와 전기차, 신재생 에너지가 골드 러쉬라면 기하 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전력 수요가 바로 청바지인 셈인 것이다.
이런 이유로 향후 다가올 미래는 가히 전력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위와 같은 배경 지식을 가지고 '산업별 전력 수요 이슈와 전력 인프라 구축의 필요성'에 대해 자세하게 알아보자.
AI와 데이터센터
생성형 인공지능이 등장하면서 인공지능의 저변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글로벌 인공지능 시장은 2030년까지 최소 10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전기차 못지 않게 전력을 소비한다는 점에서 주의할 필요가 있는데 특히 기존 전기차 수요는 예측이 되었지만 혜성 같이 등장한 AI에 따른 전력 수요는 전문가들조차 추정치만 있을 뿐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1750억개의 매개변수를 가진 Chat GPT-3 모델을 한번 학습시키는데 1.3GWh 전력이 들어간다. 이는 무려 한국 전체에서 1분간 소비되는 전력량 규모이다.
Chat GPT 같이 AI 가 결합된 검색에 쓰이는 전력량은 일반 검색보다 10배나 더 크다.
표준 구글 검색은 1회당 0.3와트시(Wh) 전력이 든다면 생성 AI를 활용한 검색 엔진은 1회당 3Wh 전력이 소비되는 셈인 것이다.
AI는 데이터센터가 없으면 안 된다. 특히 데이터를 한곳에 모으고 대규모 연산이 필요한 AI용 데이터센터는 여타 데이터센터 대비 3~5배 가량 전기를 더 소모한다고 알려져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 세계 데이터센터가 쓴 전기 소비량을 340TWh라고 추산했다.
같은 해 우리나라가 쓴 전체 전기 소비량은 568TWh이니 이는 5,000만 국민이 1년간 사용한 전기의 60%가 데이터센터에 들어갔다는 얘기가 된다. 심지어 위 수치는 클라우드용 데이터센터만 해당할 뿐 여기에 AI 데이터센터를 포함하면 전기 소비량은 400TWh를 초과한다.
IEA는 불과 2년 뒤인 2026년 데이터센터가 쓰는 전기 소비량이 800TWh가 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어 이는 불과 4년새 경제 규모가 세계 10위 안에 드는 나라 하나가 더 생기는 셈이다. 오죽하면 테슬라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2025년에는 전기와 변압기 공급 부족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정리하면, AI 시스템을 가동하려면 막대한 전력을 사용하는 대규모 데이터센터 구축이 필수이고 이를 뒷받침할 초고압 변압기와 배전반 등의 전력 인프라, 시스템 수요가 자연히 급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전기차 & 신재생 에너지
2024년 올해, 전기차 시장 성장세가 주춤하고 있지만 중, 장기적인 관점(자율 주행, 각국의 탄소 중립)으로 보면 앞으로도 글로벌 전기차 시장은 계속 성장할 것이다.
-BEV (Battery Electric Vehicle, 배터리 전기차): 전력만을 사용해 구동되는 순수 전기차
-PHEV (Plug-in Hybrid Electric Vehicle,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전기차): 배터리를 충전하여 사용할 수 있고, 필요시 내연기관을 사용하는 하이브리드 차량
-HEV (Hybrid Electric Vehicle, 하이브리드 전기차): 내연기관과 전기 모터를 조합하여 효율적으로 연료를 사용하는 차량
한전 경영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2022년 글로벌 전기차 충전 전력 수요는 121TWh를 기록했다.
BP(British Petroluem)가 분석 발표한 같은 해 전 세계 발전량 209,165TWh와 비교하면 전기차 충전 수요 비중은 아직 0.4%에 머무르고 있다. 하지만 2040년 글로벌 전기차 충전 전력 수요는 2997TWh로 2022년 대비 24배가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여전히 발전량이 전기차 전력 수요를 크게 앞설 것이지만 문제는 전기차 보급을 장려하는 근본 배경인 탄소 저감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친환경 전기 생산이 동반되어야 한다.
친환경 전력 생산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연비 향상과 연료 환경 성능 개선 등에 속도를 내는 내연 기관차에 비해 전기차가 딱히 친환경적으로 평가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기차 글로벌 판매량 증가에 따른 전기 수요 증가와 신재생 에너지로의 발전 원천 변화는 함께 성장할 것이며 이는 동시에 '송배전망' 전력 인프라 투자 확대의 중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발전된 전기를 전기차 충전소까지 송전하고 풍력 및 태양광 발전소에서 수요처로 전기를 수송하기 위해서는 고압 송전선, 배전선 및 변압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전기차와 신재생 에너지 발전이 늘어나면 송배전망의 보강 뿐만 아니라 기존 중앙화 된 에너지망에서 분산형 전원으로의 변화에 따른 신규 발전지가 개발돼 기존보다 더 많은 송배전 인프라 구축이 필요할 것이다.
탄소 중립, 4차 산업 혁명으로 대변되는 AI, 데이터센터, 전기차, 신재생 에너지 기술의 도입은 전 세계적으로 전기 인프라 혁명을 야기시켰고 우린 현재 그 거대한 변화의 소용돌이에 놓여있다.
그동안 우리는 일상에서 너무나 쉽고 편하게 전기를 사용했다. 버튼을 누르면 불이 켜지고 콘센트 코드만 꽂으면 전기장치들은 자연스럽게 작동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는 망각한 채 너무나도 당연하게 전기 에너지를 사용해 왔다.
하지만 우리에게 공기와도 같은 전기 에너지가 이제는 부족한 지경에 다다랐다.
전기 에너지 공급망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그리고 이 잠재된 위험을 우리는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지 이제는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