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전시회
전시회 업무를 맡은 지 정확히 10년 차가 되는 24년 3월, 올해 전시 중 가장 큰 전시회가 진행되었다. 이번 전시회명은 SF+AW 2024 (스마트공장·자동화산업전).
10년이면 익숙해질 법도 같지만, 전시 업무는 매년 변동성이 크고 현장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이슈들이 있어서 항상 새롭고 긴장감을 늦출 수 없다.
그간의 노하우가 쌓였을 수도 있고, ‘보편’이라는 단어에 휩싸여 습관적인 형태도 생겼을 수 있다. 하지만 더 시간이 흐르기 전에 전시회를 준비하고 운영하는 과정을 소개도 하고 그 과정들의 사례들과 함께 짧게라도 나눠보고자 한다.
[1] 언제부터 준비를 시작하나?
전시회를 본격적으로 준비하는 기간은 길게는 6개월에서 짧게는 3개월 전부터다. 물론 회사의 사정에 따라, 전시회의 규모에 따라 이 기간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연간 제일 큰 행사로 진행되는 전시회의 경우, 전시회를 마친 직후에서부터 바로 1년 뒤의 전시회 컨셉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기도 한다. 특히, 전시회에서 선보일 대형 데모 키트가 있는 경우에는 6개월 전부터는 기획과 제작을 진행해야 전시 납기를 맞춰 고객들에게 선보일 수 있다.
[2] 고객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
전시회를 기획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메시지”다. 이번 전시회를 통해서 고객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가를 결정하는 것이다. 보고서를 작성하든, 광고를 제작하든 간에 이 메시지만 명확하게 잡으면, 그 이후에는 비교적 쉽게 일이 진행된다. 일이 꼬이는 경우는 이 메시지를 정하는 가운데서 사공이 너무 많거나, 사공이 변경되는 경우이다. 전시회를 진두지휘하는 임원진이 여럿 되거나 혹은 준비기간에 임원진이 변경되는 상황이 생기면 메시지가 흔들리게 되어 담당자는 곤욕을 치를 수 있다.
이번 전시회의 경우, 대표님(COO) 퇴임과 취임하는 과정을 통해 한 번의 흔들림이 있었고 새 대표님과 함께 다시 컨셉을 정리하며 메시지를 수정하는 절차를 거쳤다. 새로 취임한 대표님의 경우 전시회에서 고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명확하였고, 덕분에 빠르게 제자리를 잡아갈 수 있었다. 대표님이 요청한 사항은 아무리 멋있고 신기술적인 내용이라도 당장 1-2년 안에 고객에게 전달할 수 없는 기술이라면 전시회에서 소개하지 않고 실제로 단기간에 고객에게 제공가능한 제품과 기술만을 전시회에서 소개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회사 창립 50주년인 점을 기념하여 이를 위한 이벤트들을 함께 하되, 우선순위는 이벤트가 아닌 우리의 제품과 솔루션에 두는 것이었다.
참고로 매년 3월에 있는 전시회를 운영하다 보면, 1월에 진행되는 CES(국제전자제품박람회)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최첨단 기술들과 화려한 전시회를 직간접적으로 접한 임원진, 운영진들은 우리도 그들과 유사한 컨셉의 기술과 화려한 전시 장치들이 사용되어야 하지 않냐고 논의하게 된다. 예를 들어, CES에서 22년에는 VR/AR, 메타버스가, 23년에는 로봇, 웹3.0, 자율주행이, 24년도에는 AI가 대세를 이루었다. 유사한 컨셉을 우리 전시회에 차용하기도 하고, 그 곳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넣어 또 다른 컨셉이 탄생하기도 한다.
[3] 메시지에 맞는 콘텐츠는 어떻게 모을까?
메시지가 확정되고 나면, 구체적인 콘텐츠를 모으기 시작한다. 마케팅팀 뿐만 아니라 연구소, 영업, 기술팀 등에서 현재 고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콘텐츠들을 메시지와 연관해서 추려내는 작업이다. 이 과정은 여러 팀과의 커뮤니케이션이 필요로 하기 때문에 수차례의 미팅을 거쳐 비로소 콘텐츠들이 모인다. 신기술 관련 내용은 연구소나 기술팀에서, 고객과 관련된 내용들은 영업팀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신제품의 경우는 기존 제품(경쟁사 제품)과의 차이점이나, 고객에게 어떤 가치를 줄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랜드마크가 될 만한 좋은 적용 사례가 있는 경우에는 그 회사에 적용 사례를 활용하여 어떻게 다른 회사에도 적용할 수 있을지 대략적인 내용을 보여줄 수 있다. 다만, 사전에 고객사의 동의를 구하는 작업은 선행되어야 한다. 또한, 최근에 전시회에서 많이 활용되고 있는 ‘COLLABORATION’의 경우에는 서로 다른 양사의 제품/서비스가 합쳐서 고객에게 어떠한 혜택을 제공하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나타낼 필요도 있다.
[4] 고객 동선에 따른 공간 구획은 어떻게 하나?
메시지와 콘텐츠가 정해지면, 전시 공간을 나누기 시작한다. 물리적인 공간을 어떤 비율로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메시지의 전달력이 달라진다. 공간을 구분할 때 있어서 가장 먼저 보는 것은 ‘참관객의 동선’이다. 전시장 부스 위치에 따라, 주위에 있는 경쟁사 부스에 따라, 전시장 메인 문의 위치에 따라 참관객들의 동선은 달라진다. 이런 주변환경들을 모두 고려하여 참관객들의 관람 동선이 어느 쪽으로 흘러가게 될지를 시뮬레이션 한다. 그에 맞춰서 전시 공간을 나누는 작업을 한다. 우선순위별로 전시할 내용들을 고객들이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배치하거나, 고객들의 시선을 끌 만한 콘텐츠를 전시장에 잘 배치하여, 전시장 안쪽으로 고객의 발길이 이동되도록 동선을 기획한다.
전시 동선을 구성할 때도 스토리를 짜는 작업이 중요하다. 예를 들면, VIP 고객이 전시장에 도착했을 때, 어느 지점부터 시작으로 하여 안내할지를 가상으로 그려 보면서 전시 동선을 기획해야 한다. 이번 전시회의 경우, 창립 50주년이라는 테마가 있었기 때문에 공간 구성에 있어서 시간적인 흐름을 가미하였다. 그래서 공간을 과거(PAST), 현재(PRESENT), 미래(FUTURE)로 나누고, 50년간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공간, 현재 새로 나온 신제품을 살펴볼 수 있는 공간, 최신 기술력으로 제안하는 미래 공간으로 나누어 스토리를 구상하기도 했다.
[5] 기획안이 실물 공간으로 옮겨지기까지
전시회 메시지, 콘텐츠, 동선에 따른 스토리 등이 마련이 되면 구체적으로 전시 형태를 디자인해서 페이퍼에 불과했던 아이디어들이 실물 공간으로 이동되는 변신을 한다. 실제로 많은 디자인업체들이 이 과정을 담당하고 있어서 멋있는 전시공간을 마련해준다. 하지만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 사람과 전시 공간을 디자인하는 사람이 다르기 때문에 여기에는 항상 갭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초기 디자인을 받고 나서도 수차례에 걸쳐서 수정작업이 이루어진다.
최근에는 전시 공간을 디자인하는데 있어서 소재에도 신경을 많이 쓰게 됐다. 3~5일 정도 진행되는 전시회를 마치고 나면 엄청나게 많은 전시폐기물들이 배출된다. 탄소중립을 외치고 있는 기업들 입장에서는 이 막대한 전시 폐기물도 그냥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 되었다. 그래서 최근 들어서는 재활용이 가능한 전시구조물로 벽체를 마련하거나, 종이를 활용한 전시구조물을 제작하는 등 다양한 시도들이 전시장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이번에 전시장에서도 구조물의 절반을 종이로 제작하여 조금이라도 폐기물을 줄여보려고 시도를 하였다.
[6] 고객은 어떻게 모으나?
고객은 자기 발로 직접 찾아 들어오는 워크인 고객과 초청해서 모셔오는 VIP 고객으로 나눠진다. 일반 고객들에게는 홈페이지, SNS 채널, 언론매체(신문, 잡지사) 등을 통해 다양한 채널로 홍보한다. VIP 고객들은 직접 초대장을 보내고 초청하는 과정을 거친다. 별도의 선물을 마련하는 경우도 있다. 타겟팅이 명확할수록 전시회의 목적과 결과가 좋을 것이다. 우리 회사가 주력으로 하는 고객이 어느 산업에 종사하며, 어느 팀의 누구인지를 명확하게 알고 있다는 것은 이미 상당히 영업이 고도화되었음을 나타낸다.
물론 일반 고객도 언제든지 고객이 될 수 있는 잠재고객이기 때문에 고객 상담에 충실히 임하고 전시회를 마친 후에 추가적인 미팅으로 이어지도록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존 고객에게 로열티를 제고시키고, 신규 고객을 이끌어내는 것이 전시회의 가장 큰 결과물일 것이다.
전시회는 마케팅에서 4P(Product, Price, Place, Promotion) 중 대표적인 Promotion에 해당하며, Promotion에서도 꽃이라고 불리는 업무이다. 아마도 가장 화려하기도 하고 많은 시간과 자원이 투입되기도 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화려함 한 켠에는 준비하는 과정에서의 정말 많은 수고로움과 고통도 존재한다.
수백 개에 이르는 다양한 이슈들을 직접 하나하나 의사 결정하고, 여러 부서들과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것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늘 한정된 시간과 한정된 자원안에서 최상의 효과를 뽑아내야 하므로 여기서 오는 압박감도 상존하기 마련이다.
명확하게 좋은 점은 시작과 끝이 확실하다는 것이다. 어떤 업무는 결과물도 없이 흐지부지 사라지는 일들이 회사에는 수두룩한데, 전시회는 시작 시점과 종료 시점이 너무나 명확해서 ‘일을 마쳤다’라는 마침표는 확실히 찍을 수 있다.
10년 동안 이 업무를 했다고 해서 베테랑이라는 이름은 붙일 수 없을 것이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전시회도 계속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흐름을 놓치면 도태되고 말 것이다. 다만, 매번 어떻게 하면 예전보다는 더 효과를 높일 수 있을지, 고객에게 더 전달력 있는 전시회를 마련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업무를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씩은 높아져 가고 있는 것을 느끼고 있다.
다음 전시회를 코앞에 두고 아주 잠깐의 숨고르기를 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