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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S ELECTRIC Sep 01. 2022

‘벵골만의 기적’-릭샤, 꿀리, 철도와 경제성장

어느 철도 전문가의 방글라데시 이야기


[오빤 깡남 스타일]

업무차 자주 찾는 해외 출장지 중 하나인 방글라데시는 직항노선이 없다. 싱가포르나 방콕에서 환승해야 하는 번거로움과 도착해서도 치열한 수 싸움을 벌여야 하는 해외 출장은 두근거리기보다는 나를 쉽게 지치게 한다.

그러나 2012년 12월 어느 날의 방글라데시 출장은 조금 달랐다. 비행기 표만 구매하면 되는 가뿐한 여정이었다. 복잡한 업무가 아니라 철도 사업 파트너사인 M사 Alongir 회장 댁 장녀 혼사에 초대받은 것이다. M사는 성공한 대단위 기업집단이고, 특히 철도 건설에 독보적인 사업역량을 갖고 있으며 LS ELECTRIC 철도 신호 시스템을 선호하는 주요 고객이다.


결혼식은 신부 댁에 치러지는 전야제, 만찬을 포함한 본식, 휴양지의 피로연으로 나누어 진행했다. 해외 하객에게는 공항 픽업에서부터 초청 기간 5일 동안 오성급 호텔 숙식과 교통 편을 제공하고, 또한 전세 비행기를 띄워 콕스 바자르(Cox’s Bazar) 휴양지에서의 피로연까지 준비했다.


전야제를 치르는 Alongir 회장 댁에는 이미 혼주를 중심으로 미국, 중국, 독일, 프랑스, 이태리 많은 나라에서 초대된 거래처 귀빈들이 자리하고 있다. 한국 대표로 참석한 나도 정성껏 준비한 결혼 선물과 축하의 덕담을 전달하고 알만한 하객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방글라데시 전통 음악과 춤의 향연은 계속되고, 어느 순간 신부 형제 및 사촌들로 급조된 혼성 5인조 댄스 그룹이 등장하였다. 무대의상과 검은 선글라스는 기본, K-pop 원조 스타 PSY의 “오빤 깡남 스타일”을 유쾌한 말춤과 함께 선창하였다. 그리고 하객 대부분도 떼창이 한창일 때, 혼주는 PSY와 국적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나를 간절한 눈초리로 무대로 불렀다. PSY의 나라에서 온 한국 대표의 자존심은 어디 가고, 혼비백산 손사래를 치며 슬금슬금 게걸음으로 화장실을 찾았던 소심함을 이제라도 고백해야겠다.



[다카의 현주소 - 릭샤와 꿀리]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Dhaka)를 여행하면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인력거인 릭샤(Rickshaw)와 짐꾼 꿀리(Coolie)이다. 릭샤는 삼륜 자전거 뒤편에 손님을 태울 수 있는 좌석과 접이식 후드가 달린 교통 수단이다.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릭샤란 하나의 관광상품이자 색다른 오락거리 일부로 여겨진다. 


그러나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인 방글라데시에서는 다르다. 미흡한 대중교통 체계와 1.2천만 명의 많은 인구를 가진 도시 다카에서 단거리 이동은 릭샤가 도맡는다. 등록된 60만 대, 비공식적인 수를 포함해 총 120만 대가량의 릭샤는 공공버스나 승용차보다 월등히 많아 교통 분담률을 무려 38%나 담당한다.* 설령 자동차가 있다고 할지라도 교통체증이 워낙 심하기에 도심에서 가능한 통행속도가 6.7km/h에 불과해, 오히려 좁은 골목길을 달릴 수 있는 릭샤가 유용한 교통수단이라 할 수 있다.

*2019년 1월 KOICA 교통보고자료 및 Dhaka Tribune 21년 2월 14일 News 참조


여행객에게 릭샤는 즐거운 경험이다. 릭샤꾼보다 다소 위쪽에 앉아 가는 손님의 입장에서는 조금 높은 위치에서 자전거 속도로 풍경을 조망할 수 있다. 저녁 식사 후 릭샤를 타고 GULSHAN(굴산) 호수로 떠나면, 적당한 바람과 물가에 하늘거리는 형형색색의 불빛으로 마법 같은 풍경을 보여주기도 한다.


씽씽 달리는 다카의 릭샤


다카에서 만난 한 깡마른 늙은 릭샤꾼의 단련된 하체에 경의를 표하고 싶었던 기억이 있다. 흠뻑 젖은 상의와 연신 흘러내리는 땀을 목수건으로 닦아내는 그의 모습은 삶의 고단함을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지만, 오랜 릭샤꾼의 페달링으로 단련된 근육은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노동의 경건함이 숨어 있었다.


릭샤꾼들은 대부분 일자리를 찾아 무작정 상경한 시골 마을 출신이다. 등록지로부터 이동할 수 있는 릭샤 운행 구역이 정해지며, 거리에 따라 부르는 요금은 10~50 TAKA(원/TAKA= 15)로, 하루 수입은 600 TAKA(약 10,000원) 정도라고 한다. 그마저도 일정한 수입은 아니지만, 일자리가 부족한 방글라데시에서는 그의 가족들이 한 달을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일 것이다.


또 하나의 특화된 친환경 수송 시스템은 꿀리(Coolie)라고 부르는 짐꾼이다. 옛적 우리의 어머니들이 새참을 나르거나 사소한 물건을 나르던 풍경을 방글라데시에서는 아직도 쉽게 볼 수 있다. 보통 남성인 꿀리들은 큰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퀵 서비스를 제공한다. 주문한 상품이나, 시장에서 구매한 식자재나 생활용품을 배달한다.


다카 중앙어시장에서 만난 꿀리(Coolie-짐꾼) 소년들


다카의 최대 어시장인 중앙 어시장은 꿀리의 주요 활동 무대이다. 파드마(Padma) 강, 자문나(Jamuna) 강, 메그나(Meghna) 강과 벵골만에서 갓 잡은 다양한 종류의 생선과 해산물들이 거래되는 곳으로 목이 좋기 때문이다.


이른 새벽 다카 중앙수산물 시장에서 만난 10대 초반의 두 어린 꿀리의 미소는 “나는 잘하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듯했다. 어린 나이에도 작디작은 목으로 큰 광주리의 무게를 지탱해야 하는 고된 노동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대견했다. 건장한 꿀리는 최대 90kg 정도의 물품을 한 번에 배달하기도 한다. 거리와 무게에 따라 부르는 요금은 10~100 TAKA로, 하루 수입은 릭샤 꾼과 비슷한 수준이다. 직경 1.5미터 크기의 대나무 광주리는 꿀리들의 쉬는 시간이 되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안락한 소파로 변신하기도 한다.



[벵골만의 기적]

방글라데시에는 세계에서 가장 긴 해변 콕스 바자르(Cox’s Bazar), 유네스코 세계 자연 유산인 세계 최대의 맹그로브 숲이 있다. 그 외에도 파드마 강, 자무나 강과 매그나 강의 토사가 만들어내는 비옥한 토지에서 3모작이 가능한 풍요로운 땅이기도 하다. 방글라데시가 위치한 벵골만 지역은 비옥한 땅과 지리적 이점을 바탕으로 16세기 무굴 제국 시절에는 수많은 아랍 상인들이 찾아오는 비단과 향신료의 무역 거점이었다.


무굴 제국 시절의 영광을 방글라데시가 다시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최근 경제 성장 동향을 살펴보면 조금은 빛이 보이는 것 같다. 방글라데시 경제는 주변 서남 아국과 비교해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이며 최빈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도약했다. IMF가 발표한 2021년 방글라데시 GDP 성장률은 4.4%였다. 주변 인도가 -10.3%, 파키스탄이 -0.4% 감소한 점을 고려하면 방글라데시의 성장은 벵골만의 기적이라 말할 수 있다. 최빈국, 교통지옥, 인구 밀도 1위라는 부정적 호칭에서 Young Country, Next China, 의류 수출 1위 등 방글라데시에 대한 긍정적 키워드가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다.


LS ELECTRIC은 2004년 Sylet-Azampur 10개 역 현대화 사업을 시작으로 방글라데시 철도 물류의 대동맥인 다카-초토그램 구간 220km 46역 포함, 총 78개 역에 대한 현대화 작업에 참여했다. 특히 다카–초토그램(구 치타공) 구간은 국가 GDP 50%와 국제 해운 물동량의 85%를 담당하는 방글라데시 산업계의 대동맥이다. LS ELECTRIC의 기술로 완공된 철도망이 벵골만의 기적에 한 손을 더하는 친구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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