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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S ELECTRIC Sep 15. 2022

2030대 평균 연봉? 높은 연봉이 행복의 전부일까?

‘월급’과 ‘결과물’


“좋은 직장의 첫 번째 조건은 무엇일까?”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연봉’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2030세대의 직장 선택 기준에 대한 설문 결과’를 보면, ‘연봉’이 33.8%로 1위를 차지했다. 이렇듯 월급(연봉)은 좋은 직장을 이야기할 때 중요한 조건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말처럼 높은 월급이 성공한 인생, 행복한 인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월급이 인생에 어떤 의미이고,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따져볼 만한 일이다.


 ‘21.09/29 saramin


첫째로 월급은 생계의 수단이다. 이를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람은 매일매일 에너지를 섭취해야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주기적으로 지급되는 월급은 우리 삶에 연속성을 제공해 준다. 물론 공짜로 주어지진 않는다. 그에 합당한 노동력을 제공해야 하고,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이러한 우리의 노력은 사회 구성원들에게 ‘다양한 가치’로 제공된다.


해외 축구 영국 프리미어 리그(EPL) 토트넘의 손흥민 선수는 자신이 맡은 축구라는 일을 함으로써 많은 사람에게 즐거움이라는 가치를 제공해 준다. 손흥민 선수에게 월급을 주는 기업은 토트넘이라는 구단이지만, 본질을 따져보면 토트넘이 주는 월급 또한 즐거움이라는 가치에 대가를 지불한 팬들에게서 오는 것이다.


평범한 직장인의 경우에도 월급을 받는다. 회사가 필요로 하는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에 합당한 금액을 받는다. 이 급여 또한 다른 사회구성원들에게서 나온다. 상품, 서비스, 콘텐츠 등 회사가 만들어낸 가치를 이용한 사람들이 소비한 돈이 회사로 흘러가고, 열심히 일한 직장인에게 돌아온다.


이렇게 만들어진 가치에 대한 사회구성원의 평가는 모두 다르다. 그리고 높은 값이 매겨지는 가치를 생산하는 사람이 더 높은 연봉을 가져간다. 따라서 손흥민 선수와 평범한 직장인의 연봉 차이는 상당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값은 서로 다를지 몰라도 두 사람의 월급은 ‘생계의 수단’이라는 관점에서는 여전히 동일하다고 말할 수 있다. 



두 번째로 월급은 사회적 지위를 대변해 준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높은 연봉을 받는 사람이 성공한 인생으로 평가되는 경우가 많다. 흔히 사용하는 “잘 산다”라는 말은 돈이 많고 부유하다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또한 다른 사람들로부터 부러움을 사는 사람치고 월급, 연봉이 적은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최근 떠오르는 직업인 유튜버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면 대부분은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라고 대답한다. 1타 강사, 인기 작가 등도 소득으로 그들의 Class를 평가받는다.


이렇다 보니, 우리나라에서는 월급이 내 인생의 성적표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월급이 많으면 성공한 인생, 월급이 적으면 실패한 인생’ 이렇게 생각하기도 쉽다. 그래서 어떻게든 높은 연봉을 받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게 된다.



정말로 월급만이 나의 노력에 대한 대가의 전부일까?


월급은 ‘내가 얻은 결과물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월급이 ‘내 노력을 나타내는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꾸어 보자. 월급이 적으면 나의 가치가 작아지는 것인가? 이렇게 질문하면 ‘월급이 적어도 나의 가치는 적어지지 않는다’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생길 것이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누구보다도 열심히 노력하며 한 달을 보냈기 때문이다. 그러한 과정을 생각하면 월급만으로 나라는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기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즉, 월급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게 된 것이다.


왜 이런 생각의 차이가 생긴 것일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개념들을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한 예로 삶과 죽음이다. 이 둘은 상반되는 개념이지만, 죽음이 존재하기에 삶이 정의될 수 있다. 만약 죽음이라는 개념이 없다면 삶 또한 존재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삶이란 죽음이 아닌 상태이고, 죽음이란 삶이 아닌 상태인 것이다.



또 다른 예는 빛과 어둠이다. 이 또한 삶과 죽음처럼, 빛이라는 정의가 있어야 어둠이 존재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개념이 모두 있어야 서로의 존재를 이해할 수 있고, 완벽해진다. 눈에 보이는 ‘유형’과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도 그렇다. 무형이라는 개념이 없다는 유형도 존재할 수 없다. 이는 과학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물질’이 존재하기 위해 ‘반물질’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해 가는 중이다. 이렇듯, 만약 우리가 눈에 보이는 ‘유형’의 평가만이 결과의 전부라고 생각해 왔다면, 그동안 무언가 중요한 개념을 간과한 것이다. 그 존재 자체를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과정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결과인 월급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자신이 가진 가치와 공들인 노력을 쉽게 잊어버리고, 나의 삶을 폄하하는 평가를 내리게 되기도 한다. 과정은 나만이 알 수 있는 가치이다. 이를 모르는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월급을 가지고 나의 노력을 평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의 노력은 타인에 의해서만 평가받는 것이 아니다. 무형의 가치를 포함한 나 자신에 대한 평가가 인생에 있어서 더 중요할 수 있다.



자신의 평가(무형)가 얼마나 중요한지 극단적인 상황에서 그 예를 찾아보자. 빅터 플랭크가 쓴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저자가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인간의 본성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강제 수용소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에 더 이상의 기회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죽어갔다. 하지만 결국 살아날 기회는 주어졌고, 절망적인 상황에서조차도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찾으면서 자기 삶에 대한 의지를 갈고닦은 자들만이 생존할 수 있었다.


수용소라는 환경은 ‘유형’의 평가를 내렸을 때 절망적이었지만, 그곳에서도 삶의 의지라는 ‘무형’의 가치를 잊지 않고 간직한 사람들만이 ‘유형’의 압박을 이겨내고 생존이라는 승리를 가져올 수 있었다.


다시 한번 손흥민 선수의 예를 들어 보자.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억대 연봉을 가진 그는 별로 돈이 되지 않는 일에 귀중한 시간을 투자했다. 그는 모두가 인정하는 살인적인 스케줄에도 국가대표로서 참여하기 위해 유럽과 아시아를 오가는 장거리 비행(편도 약 11시간)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인터뷰를 통해 국가대표로 선발될 수 있음에 감사하다고 말한다.


이러한 선택은 높은 연봉을 행복의 절대적인 조건으로 뽑는 시각에서는 의아해 보일 수 있다. 월급을 주는 토트넘 입장에서도 오히려 반대하고 싶은 상황이다. 그러나 손흥민 선수는 국가대표라는 무형의 의미를 스스로 평가하고 가치 있게 여기기 때문에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것이다.


우리도 월급에 대해 스스로 무형의 평가를 해보자. 그러기 위해선 월급을 전부가 아닌, 결과물의 일부분으로 이해해야 한다.



결과물이란 무엇인가?


결과물이란 ‘시간의 흔적’이다.

회사에서 근무한 시간의 흔적의 일부가 물질을 가진 월급의 형태로 주어진 것이고, 나머지 흔적이 무엇인지는 스스로 찾아야 한다. 한 달 동안 나는 어떤 경험을 했으며, 이것이 내가 목표로 하는 것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이대로 노력한다면 도달할 수 있을 것인지…


막히거나 힘이 들 때에는 이런 말도 생각해야 한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실패가 다 나쁜 것은 아니다. 어쩌면 실패는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일지도 모른다. 눈앞의 실패를 좌절로 받아들이기보다 몸에 이로운 쓴 약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도 좋다.


나보다 연봉이 높은 사람은 항상 존재한다. 그렇기에 월급으로만 평가한다면 우리는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 찬 한 달을 보내게 될 것이다. 대신 ‘시간의 흔적’이라는 의미를 잘 생각해 보자, 시간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주어지는 귀중한 가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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