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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S ELECTRIC Nov 30. 2022

“응답하라 알레포”- 30년 전의 출장 보고서

어느 철도 전문가의 시리아[Syria] 이야기



“어느 나라 음식이 맛있나요?” 잦은 해외 출장을 하는 내게 많이들 묻는 질문이다. 중국, 베트남, 태국, 이태리 망설임도 잠시 ‘시리아’ 라고 답하는 순발력에 나도 놀라곤 한다.


30년 전 1993년 9월, 입찰 준비 차 처음 도착한 시리아 다마스쿠스[Damascus]는 현지 시각 저녁 8시경이었다. 서둘러 찾아간 식당에는 웃음이 그득 찬 큰 눈을 갖은 거래처 후세인 사장과 8인용 큰 식탁을 꽉 채운 화려한 음식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리아는 한국과 미수교 국가이며 시리아 전역이 여행금지국가임.


모스크바, 비엔나, 베이루트 2박 3일 간의 환승을 거쳐 목적지 다마스쿠스에 도착한 터라 식욕보다는 휴식과 수면이 절실하였다. 이리저리 숙소로 돌아갈 명분만 찾는 포크 질은 그리 편해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후세인 사장의 권유로 조금 일찍 숙소로 향했지만, 한눈에도 꽤 신경 쓴 만찬을 즐기지 못한 미안함이 30년이 지난 지금도 가슴 한편에 남아있다. 그 기억으로 ‘허기보다 졸음’이 더 무섭다고 지금도 믿고 있다.



|하마의 훔무스 그리고 시리안 빵|


모하메드[Mohamed]는 파트너사의 영업 담당자다. 그의 운전으로 우리는 다음날 일찍 철도청이 소재한 알레포[Aleppo]를 향해 출발했다. 콧수염을 기른 하얀 얼굴과 가죽 잠바가 잘 어울리는 큰 키의 30대 초반의 사내다. 알레포에 이르는 길은 약 350km 거리로, 그 길에는 오래된 도시 홈즈[Homs]. 하마[Hama], 마-트[Maart]등 깊은 역사 도시들이 위치해 있다. 점심엔 하마의 식당에 들렀다. 산언덕에 위치한 터라 수확기를 앞둔 넓은 평야를 내려다보는 조망과 선선한 바람으로 한가한 식사를 즐기기엔 안성맞춤이었다. 심플한 식사를 제안하고 신선한 야채 샐러드, 훔무스[Hummus] 그리고 시리안 빵을 주문했다.


시리안 빵에 훔무스… 어떤 맛일까? ‘꽁보리밥에 고추장’에 비유하고 싶다. 시리안 빵은 담백하다. 그러나 훔무스의 고소함은 우리의 오래 묵은 장맛과 다를 바 없다. 전날 과식의 고통은 잊어버리고 또 포만감으로 스푼과 포크를 내려놓았다.



훔무스[Hummus]는 시리아를 비롯해 주변국 레바논, 요르단, 이라크 등 주변국에서는 여러 음식에 어울려 먹는 보편화된 음식이다. 병아리콩, 타히니[Tahini], 레몬주스, 마늘, 소금을 섞어 올리브 오일과 버무린 시리아 식탁의 감초라 할 수 있다. 훔무스를 더욱 빛나게 한 시리안 빵은 살짝 팽창한 납작한 빵이다. 비옥한 초승달 지역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사이의 지역]에서 만들어진 빵으로, 주로 밀로 만들지만, 호밀로도 만든다.



|알레포의 양고기 케밥 할리비|


5시간여 긴 자동차 여행 끝에 도착한 알레포는 대통령 하페즈 알아사드[Al-Assad]와 그의 가족사진들로 가득 찬 도시였다. 시리아 수도는 다마스쿠스이나 철도청은 상업도시인 알레포에 위치한다. 철도청 공식 미팅 전, 모하메드 안내로 저녁 시간 철도청 신호 국장 댁을 방문했다. 적어도 100년은 되어 보이는 2층 흙집으로 철문을 지나 거실로 안내되었다. 가정집을 방문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이슬람 세계인지라 간략히 방문 목적과 협조를 요청하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영업 맨인 모하메드는 뭔가 작은 목소리로 아랍어 대화를 이어가고 웃음 띤 얼굴로 엄지척 한다. 자~ 이제 모든 것은 잘 될 것이고 또 편안히 식사할 시간이다.


전통적으로 중동 지방은 저녁 식사를 중시한다. 우리로서는 늦은 저녁 8시부터 2~3시간 하는 저녁 식사는 낮 시간 옥외 활동이 어려운 환경 탓일 것이다. 손님 접대에 능숙한 모하메드는 우리를 케밥 전문 식당으로 안내했다. 애피타이저[Appetizer]인 훔무스와 시리안 빵 그리고 양고기 케밥 할리비[Kabab Halabi]를 주문했다. 7년여 중동 근로자 시절에도 먹지 않던 양고기인지라 내키지는 않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시리아 빵으로 보쌈을 한 케밥 할리비는 옅은 숯불 향과 부드러운 양고기 육즙으로 입안의 모든 미각을 두드렸다. ‘아 이 맛이야.’



케밥 할리비는 다진 양고기를 칠리, 고추가루, 버섯, 호두, 민트, 양파, 토마토소스, 물 등의 재료로 버무린다. 2~3시간 숙성한 다짐고기를 쇠꼬챙이 꼽고 주물주물 손가락 모양을 낸 후 숯불 노릿하게 구워서 먹는 시리아 대표 요리이다. 알레포에서 경험한 케밥 할리비의 부담스럽지 않은 포만감은 다음 날 점심까지도 거뜬한 식사였다.



|지중해 연안 도시 라타키아의 싸마쿨 아브라미스|


5000년 고도 알레포의 만찬을 아쉬워하며, 다음 목적지인 지중해 해안 도시 라타키아[Latakia]로 이동하였다. 지중해 해안 도시 타투스[Tatus]와 라타키아[Latakia]를 연결하는 철도 통신망 구축사업 현장 조사를 위함이다.


철도 통신 시스템은 중앙 관제소와 역간 통신을 위한 사령 전화[Dispatch Telephone], 역과 역을 연결하는 폐색 전화[Block Telephone], 기관사와 긴급 통신할 수 있는 무선전화[Radio Telephone] 그리고 일반행정 전화망[PABX]을 포함하고 있다. 특히 원가에 큰 영향을 주는 광케이블과 구리 케이블 포설 작업을 위해서는 기존 설비와 인터페이스[Interface] 그리고 철도청이 제시한 도면과 차이가 없는지 꼼꼼히 위험 요소를 조사해야 한다.


반나절 현장 조사는 또 우리를 맛집을 찾아 두리번거리게 했다. 순발력이 있는 우리의 수호자 모하메드는 벌써 창 너머로 지중해가 훤히 보이는 식당을 섭외했다. 모하메드와 은빛 곱슬머리 주인장 추천에 우리는 고개만 끄덕일 뿐 맛의 신세계는 그저 운명을 따를 뿐이다. 역시나 시리안 빵과 훔무스 그리고 야채 샐러드는 기본, 도미 요리[싸마쿨 아브라미스]를 메인 메뉴로 주문을 마쳤다. ‘그래 이번엔 생선이지.’ * 싸마쿨 아브라미스는 도미의 아랍어임.



특히 지중해에서 잡히는 도미는 귀족 도미[daurade rose]란 칭호를 가지며, 살은 매우 희고 부드럽고 쫄깃한 식감이다. 손으로 뜯어먹었던 레몬 향이 밴 하얀 싸마쿨 아브라미스[도미] 속살은 오래도록 시리아와 지중해를 기억하는 맛이다. *생선 정보는 네이버 지식인 참조 함



2010년 아프리카 튀니지에서 시작한 재스민 혁명으로 촉발된 시리아 민주화 운동을 접하고, 찾아낸 「30년 전의 시리아 출장 보고서」는 온몸으로 기억하는 시리안 음식과 반만년 이야기가 차곡차곡 쌓여 있는 알레포의 골목길을 되짚어 보게 하였다.


세계의 화약고 중심인 시리아에도 평화가 찾아오길 기대하는 바람과 달리 2011년 이후 내전으로 900만 명의 난민이 세계를 유랑하고, 문화재 파괴와 사회 혼란이 10년째 이어지고 있다. 미국, 러시아,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튀르키예 여기에 쿠르드, IS, 수니파, 시아파, 알라위파, 기독교 누구도 풀 수 없는 난맥상에 이제는 그저 내전만이라도 빨리 종식되기를 기대할 뿐이다.


‘하얀 헬멧’은 민간 구조대 활동을 하는 시리아 내전 영웅들의 별명이다. 그들이 폭격에 무너진 건물 잔해에서 구출한 “알레포 꼬마 옴란 다크니시”의 보도 사진은 전 세계를 울린 바 있다. 폭격으로 발생한 분진과 피로 얼굴을 알아볼 수 없고, 영혼이 없는 표정과 자세는 어찌할 수 없는 모두에게 큰 슬픔 이였을 것이다.


“응답하라 알레포” 너의 아름다운 ‘5000년의 모습’과 맛있던 ‘케밥 할리비’는 무사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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