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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스윽 Apr 23. 2022

집Ⅰ - 구축 ‘아파트’ vs ‘신축’ 오피스텔

신혼부부 서울 집 구하기

 작년 여름, 나와 아내는 4년간의 서울살이를 마치고 인천으로 나와서 살고 있다. 자의 반 타의 반의 어설픈 첫 이사였지만 어쨌든 현재는 적응해서 잘 살아가고 있다. 서울시민이었던 그 당시 우리를 잠시 돌아보려 한다.     


 2018년 가을쯤 아내와 함께 살 신혼집을 알아보았다. 집과 지하철이 가까웠으면 좋겠고, 신축이면 좋겠고, 직장과 가까우면 좋겠고, 치안이 좋았으면 좋겠고, 햇볕이 잘 드는 남향에, 우리의 신혼생활에 맞는, 누구나 꿈꾸는 그런 집을 바랐다. 지금 돌아보면 아무것도 모르던 우리는 집에 바라는 것이 참 많았다.


 그러나 그 행복한 상상과 바람도 잠시. 집을 보러 돌아다니자마자 우리는 바로 현실에 부딪혔다.     


 행복할 거란 상상과 달리 우리에게 어디서 살지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취업한 지 1년도 안 된 남자와 3, 4년 정도 직장생활을 한 여자가 한 가정으로 뭉치면서 그들이 손에 쥐고 있던 것은 별로 없었다. 바라는 것이 많아질수록 당연히 집값은 올라갔다. 하지만 그 바람을 만족시켜 줄 돈은 그들에게 없었다.


 집을 잠시, 잠깐 빌려 쓰는 것뿐이었는데 수억의 돈이 필요했다. 희망과 꿈만이 가득했던 그들의 결혼 준비에 급격히 브레이크가 걸리는 순간이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욕심을 하나씩 줄이면서 현실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포기해야 하는 사항과 포기할 수 없는 사항을 나누고 우리의 바람을 돈과 집에 맞는 수밖에 없었다. 전세자금 대출이 되는 곳인지, 가격은 얼만지. 이것이 1순위였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의 직장과 가까운 곳. 그것이 2순위였다. 차가 없었기 때문에 지하철과 가까워야 했다. 이것이 3순위.     


 긴 대화 끝에 아내의 직장과 가까운 곳에서 살기로 정했고 그곳이 바로 강서구였다. 서구에서 우리가 가진 돈에 맞는 집만 찾으면 됐다. 당시 이 동네에 우리가 들어갈 수 있던 구축 아파트의 18평 전세가는 2억 3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돈과 대출을 받으면 전세로 살 수 있는 가격의 아파트였다. 하지만 88년도에 지어진 그 구축 복도식 아파트는 나의 마음에 전혀 들지 않았다.

 

 우선 오래된 아파트여서 공간의 효율성이 좋지 않았다. 냉장고 하나 소파 하나 들어가면 거실과 부엌이 다 찼다. 안방에 퀸사이즈 침대를 넣으면 더 이상의 여유 공간은 없었다. 겨우내 단열도 안 되고, 아파트 단지 내 가로등도 허름해서 어두워지면 돌아다니기 무서웠다. 그저 이 아파트의 장점은 ‘아파트’라는 것이었다.  


 아내에게 불만을 이야기하고 나의 기준으로 집을 다시 알아보기 시작했다. 역세권으로 알아보니 이상하게 아파트보다 오피스텔이 자주 나왔다. 2분, 3분 거리에 지하철로 바로 갈 수 있었고, 상가가 많다 보니 저녁에도 밝아서 치안도 안전한 것 같았다. 그리고 비교적 건물이 신축이었다. 신축이다 보니  공간에 수납공간이 많아 효율성 또한 있었다. 가격은 '아파트'와 마찬가지로 2억 3천. 하지만 이번에 오피스텔은 아내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피스텔’이라서 싫어했다. 생활하면서 알게 되었지만 방음이 안 좋아서 위, 아래 집 대화하는 소리나 전화기 진동 소리가 들렸고, 엘리베이터에서 사람을 만나면 뭔가 민망한 그런 분위기가 있었다. 놀이터나 아이도 없어 분위기도 삭막하고 거주자 또한 젊은 사람이 많다 보니 어제저녁 아스라이 들리던 비밀스럽고 야릇한 특정 소리의 주인공이 아닌가 서로 의심하며 어색해하는 분위기가 엘리베이터에 흐르기도 했다.


 아내는 구축이지만 그래도 ‘아파트’인 곳에서 살기를 바랐고, 나는 오피스텔이지만 그래도 편할 것 같은 ‘신축’인 곳에서 살고 싶었다. 앞으로 돈 더 열심히 모아서 그때는 서울에 있는 좋은 ‘아파트’로 이사하자고 사기인지 설득인지 모를 긴 대화 끝에 2018년 12월 우리 부부의 출발점은 강서구 등촌동의 작은 ‘신축’ 오피스텔로 정해졌다.


 방음도 안 좋은 10평 남짓한 오피스텔이었지만 새 출발을 할 수 있는 우리 두 사람에게는 정말 중요한 보금자리였고, 집주인처럼 그 공간을 아끼며 살았다. 베란다가 없어서 거실에 건조대를 펼쳐야 했고, 방 벽 한가운데에 화재 대피 장치가 붙어있고, 겨울철 침대 옆 창에 서리가 껴서 매일 닦아주어야 하는 불편함은 있었지만 그래도 둘이 사는 데 모자람도 없었고 심지어 즐겁기까지 했다. 같이 저녁밥만 해도 소꿉놀이하듯 재미있게 하던 때였으니까.      


 그렇게 그곳에서 4년간의 서울살이가 시작되었다.     


(참고로, 우리가 살던 오피스텔의 현재(22년 4월) 전세 가격은 2억 8천, 아내가 보던 아파트의 전세 가격은 4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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