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되면 될 때까지 vs 분수에 맞게 살기
어떻게 살 것인가?
인생을 살면서 상사로 모시면 피곤한 몇 가지 타입을 알게 되었다.
이들 중 정말 무서운 타입은 바로
'이봐, 해 봤어?' (정주영 전 현대 회장)
'안 되면 될 때까지' (해병대식 명언)
여기가 직장인지 해병대인지 구분이 안 된다.
입에서 이러한 종류의 대사가 자주 나오는 사람을 우릴 항상 조심해야 한다.
포기를 모르는 이러한 부류의 사람을 직장 상사로 두면 일이 늘면 늘지 줄어들지는 않는다.
나를 힘들게 하는 이 사람들에게 속으로 욕도 하고 흉도 봤지만 이들은 분명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끝까지 무언가를 이루어낸다는 점에서 이들의 집념과 의지는 분명히 높이 살만 하다.
나는 이런 사람들을 향한 동경과 멋, 존중이 있었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주인공 루피나, 나루토 같이 포기를 모르고 근성으로 결과를 만들어내는 사람은 내 인생에 가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뜨거움이 좋았다.
나 또한 이들처럼 살아가려 열심히 노력했다. 실패가 두렵지 않았다. 뭐든 안 되면 될 때까지 했다. 그렇게 사는 게 당연한 건 줄 알았고 지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이제는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분수에 맞게 살아야지'
'뱁새가 황새 따라가려면 가랑이가 찢어지는 법이야'
교사로 돈을 벌며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현실에 만족하기 시작했다. 나름의 워라밸. 전공을 살린 나름의 직업적 만족감.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교사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었는지, 이렇게 직장에 목을 매달 일이었는지 내가 왜 교사가 되려 했는지 나의 목표까지 흐릿해져 갔다. 그리고 이 직업은 최소한 나를 굶기지는 않았다.
여러 학생과 학부모, 교직원을 만나며 깎이고 깎이면서 왜 이 일을 하려고 했는지 정말 이 일이 가치 있고, 보람을 가질만한 일이었나 스스로에게 되물었지만 그래도 참고 버티고 있었다.
그래,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어.
나는 이 일밖에 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크면서 나는 분명 더 큰 꿈이 있었는데, 더 행복하게 살고 싶었는데 왜 이 삶에 만족하며 살고 있지?
이제 나에게 다시 물어보려 한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그것을 하기 위해 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것을 위해 해 보긴 해봤는지
안 된다고 좌절하고 그냥 포기하지는 않았는지
아니면
이 일에 만족하고 분수에 맞게 안분지족 하며 행복하게 살 건지.
아무래도 지금의 나에겐 해병대 나온 직장상사의 '그 정신'이 필요한 때 같다.
자네, 해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