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acting)와 뇌과학

by 이스윽

일요일 저녁 거실에서 아이와 놀아주고 있었다. 그러다 틀어놓은 tv에서 뇌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사랑의 유통기한, 첫눈에 반할 수 있는지, 사람은 왜 화를 내는지와 같은 이야기였다.

연기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뇌과학은 굉장히 흥미로운 부분으로 다가왔다.

무대에서 단지 상대방에게 고백을 하거나 화를 내는 표현 방법 정도만 생각하지, 화를 내는 사람의 머릿속은 어떻게 바뀌는지 생각해 본 적이 크게 없기 때문이다.


사랑에 빠지면 뇌는 어떻게 될까? 사랑의 첫 단계에선 뇌에서 아드레날린이 나온다고 한다. 흥분과 각성상태가 유지된다. 그 사람 생각으로 웃음이 나오고 심장이 뛰는 단계다. 하지만 계속 아드레날린이 분출되진 않는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아드레날린 대신 도파민이 나오기 시작한다. 도파민이 나오면 욕망과 쾌락의 단계로 들어간다. 그 사람을 만지고 싶고 더욱 사랑은 불타오른다. 사랑의 3단계로 가면 옥시토신이 나오는데, 옥시토신은 신뢰, 친밀감을 느끼게 하는 뇌 호르몬이다. 옆에 없으면 불안하고 딱히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단계이다.


사랑의 기간에 따라 뇌에서 나오는 호르몬의 종류가 다르게 나오고 거기에 따라 사람의 행동 또한 달라진다. 캐릭터가 좋아하는 인물과의 관계를 생각하며 이들은 얼마나 만났는지, 만남의 정도는 어떠한지, 어떤 호르몬이 나오고 있는 단계의 관계인지 정도를 유추하여 무대에서 표현할 수 있다. 도파민의 단계라면 더 적극적으로 상대를 만지려 할 수도 있고 옥시토신 조차 지난 상태라면 이미 유통기한이 다 지나 사랑이 식은 상태를 자세하게 보여줄 수도 있다.


이야기를 바꾸어, 인간은 왜 화를 낼까? 정재승 교수의 말에 따르면 통제력을 가지고 있는 권력자(사자, 호랑이)는 작거나 사소한 일에 크게 화를 내지 않는다고 한다. 오히려 권력을 가지지 못한 자(강아지, 몸집이 작은 동물)가 통제권이 있는 척하기 위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자신을 커 보이게 하려고 화를 낸다고 한다.


연기를 하면서 화를 내는 장면을 만나게 되면 겉으로 드러나는 신체적 반응만 생각해왔다. 목소리가 커지고, 더워지고, 말을 더듬거나 하는 등 무대에서 보여지는 부분만을 고려했다. 결국엔 보이는 작업이니까. 그런데 뇌가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알면 화를 낼 때의 다양한 방법을 알 수 있을 듯하다.


이제 화가 난 상황, 화를 낼 상대와의 친함의 정도, 내가 가진 통제력의 정도,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신체적 특징에 따라 화를 내고 분노하는 방법을 더욱 세심하고 자세하게 표현할 수 있다.


'마치 ~할 것 같은' 상상에 맡긴 연기는 구체적이지 못하다. 무대에서 정확하게 연기하기 못하고 목표를 수행할 수 없기에 관객에게 제대로 된 의도를 전달 할 수 없다. 제대로 의도를 전달하지 못한 연기는 관객에게 감동을 주기 어렵다. 과학적 기반에 근거한 뚜렷하고 구체적인 연기가 관객에게 작품 의도를 넘어 감동을 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나의 연기가 보는 이로 하여금 뇌에 어떤 반응을 불러일으킬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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