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III - 인천 살이 준비
오피스텔에서 아파트로 이사를 가다.
21년 아내의 뱃속에 잉태된 우리의 아이를 확인했다. 새 가족이 생겼음에 우리 모두 행복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큰 걱정에 빠지게 되었다.
- 나 이 10평짜리에서 오피스텔에서 아이 못 낳아.
- 왜?
- 애 키우려면 공간이 얼마나 있어야 하는지는 알아? 여기는 우리 둘 살기 좋은 곳이지. 아이를 키우는 공간은 아니야.
- 애기가 집이 넓은지 좁은지 어떻게 알아. 불편하더라도 조금 참고 우리가 열심히 키우면 되지.
- 나도 배 부른 상태로 소파에 누워서 오빠 이리저리 부려보고 싶었어. 임신했다고 과일도 깎아오라고 시키고 싶었고. 근데 이게 뭐야. 내 꿈은 왜 안 되는데.
서운해하는 아내를 보고 나 혼자 몰래 집을 옮기고자 어플을 켜서 알아봤지만 이미 전셋값은 뛸 대로 뛰어있었다. 우리가 돈을 모은 것보다 서울의 집 값은 두 배씩 더 뛰어있었다. 집을 사려는 것도 아니고 단지 잠시 빌리는 것뿐인데, 서울의 집값은 우리를 허락하지 않았다. 살고 있는 집의 보증금 2억 3천만큼 더 대출을 해야 근처 아파트로 갈 수 있었다. 이사는 불가능했다.
좌절하고 있던 찰나, 아내가 나에게 말을 했다.
- 오빠, 우리 사택 됐어. 7월에 들어오래!
- 진짜? 다행이다!
- 오래돼도, 아파트에다가 공간이 넓으니까 그래도 아이 키울만할 거야. 그리로 가자. 근데 오빠 출, 퇴근 가능하겠어?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던가. 아내 회사에서 제공하는 2000년에 지어진 24평짜리 복도식 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었다. 나의 출퇴근은 문제도 아니었다. 직장과 좀 멀어지면 어떤가. 집에 가면 아이와 아내가 그래도 넓은 곳에서 행복하게 있을 수 있는데. 사택을 지원해준 아내의 회사와, 아내에게 감사할 따름이었다. 이사를 가게 되면 대출 이자도 더 이상 내지 않게 되어 돈을 더 모을 수 있는 장점도 있었다.
감사함을 뒤로한 채 빠르게 이사 준비를 해야 했다. 풀옵션 오피스텔에서 생활하느라 사지 않았던 혼수용품도 4년 만에 샀다. 그리고 출퇴근을 위한 중고 자동차도 한 대 마련을 했다. 사택 근처에는 지하철역이 없어서 출퇴근이 어려웠다. 서울이 아니어도, 역세권이 아니어도 우리가 살 수 있는 공간이 어딘가에 있음에 너무 좋았다.
거주지 변화가 나의 삶에 얼마나 큰 변화를 주는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다음 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