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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스윽 Nov 24. 2023

너의 인생과 나의 인생은 달라

심지어 넌 수능도 안 봤으면서 왜 수험생 코스프레를...

학교의 분위기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수능을 보기 전 학교와 수능을 보고 난 후의 학교.

23년 11월 16일 목요일 또 한 번 수능이 끝났다. 인문계 학생들은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12년 간 수능 이 하루를 위해 책상에 앉아 치열하게 공부하고 풀리지 않는 수학 문제를 붙잡고 울고 불고 이를 바득바득 갈며 살던 학생이다. 이들은 수능이 끝나면 바로 풀린다. 


교육부나 교육청에서는 수업의 내실화를 꾀하라며 학교와 교사에게 수능 후 학교에 나오지 않는 학생들이 나올 수 있는 재밌는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라고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마음이 떠난 친구들을 잡을 수 있는 게 없으니. 수능만 보고 달렸고, 수능이 끝났으니 학교에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나 할까. 학생의 마음을 너무나 잘 이해할 수 있다.


교사 또한 열심히 1년을 달린 학생과 더불어 한 번 호흡을 가다 담는 시기이기도 하다. 인문계 선생님과 학생이 모두 이 날을 위해 디데이를 설정하고 12년을 달려왔다면 내가 만나는 학생들의 시계는 이들과 다르게 맞추어져 있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인문계에 다니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위탁 교육을 진행한다. 월요일은 학생 본인의 학교로 등교하고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위탁학교에 와서 미용, 제과, 조리, 조주 등 취업에 필요한 기술을 학습한다. 그래서 남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수능보다는 기능사 시험 날 같은 각자에게 중요한 디데이 시계가 돌아간다.

심지어 고3이지만 위탁교육을 받는 학생 중 몇몇은 수능 신청도 안 하고 12월에 있는 자격증 시험을 위해 학교에 등교하여 수업을 듣는 학생도 있다.


교실이 텅텅 비어있었다.

수능이 끝난 다음 날. 조회를 하러 들어가니 전체 정원 16명 중 8명만 앉아있었다. 50%의 출석률.

모두 다 수험생 코스프레가 되어있었다. 

왜. 우리 학교 학생 중. 몇몇의. 학생은. 마치. 자신이. 수능을 위해. 달려온 학생처럼. 힘들어하며. 학교를. 나오지 않을까? 우리 반에 그렇게 F들이 많았어? 수험생 공감을 왜 이렇게 잘하는 거야? 언제부터 공감을 잘했다고?? 

1년간 인문계 친구들 공부하며 힘들어할 때 위탁교육 와서 놀 거 다 놀고 잘 거 다 잤으면서 친한 친구 수능 끝났다고 내일모레 자격증 시험을 앞둔 우리 반 학생도 그 친구와 덩달아 같이 놀러 다니려 한다.


우리 반 친구한테 왜 학교도 안 오고 놀려하냐 물어보면 그동안 힘들었으니 쉬어야겠단다.

수험생 코스프레가 제대로 되었다. 바로 치료 들어간다.


"OO아, 네 친구는 수능 본다고 고생했으니까 지금 잠깐 쉬는 거고, 너는 내일모레가 자격증 시험인데 학교를 안 오면 어쩌자는 거냐. 그리고 수능 끝났다고 인생이 끝나냐? 네 친구는 지금 세상이 끝날 것처럼 놀지만, 그렇게 쉽게 세상이 끝나지 않아. 잠깐 걔도 쉬어가는 것뿐이야. 걘 진학이고 넌 취업이잖아. 길이 다른데 어떻게 걔랑 같은 길을 가려고 하니. 우리 인생 길게 보자. 얼른 학교부터 오너라"


내 인생이 있고, 남의 인생이 있다. 나는 나의 인생 시계에 맞추어 나의 길을 우직하게 가면 된다.

다른 사람이 그 사람 휴식에 맞춰서 쉬는 게 보인다고 나의 시계 알람을 끄고 같이 쉬면 나의 길을 잃거나 조금 돌아갈 수 있다. 나의 시계 소리를 잘 들고 묵묵히 행동하는 사람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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