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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re Jul 17. 2020

페르소나 4 더 골든

페르소나나 여신전생 시리즈에 대해서 잘 아는 건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페르소나에 대한 인상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옛날에 P3P(페르소나 3 포터블)를 해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 플레이 경험이 그리 즐겁지 않았기 때문이다.


꽤 오래 전인데다 인상깊은 게임이 아니어서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필자가 P3P를 좋지 않게 느꼈던 이유는 여럿 있었다. 지나치게 단조로운 던전 구성, 그리 인상적이지 않은 캐릭터, 원치 않는 캐릭터와도 진행하라고 다그치는 것 같은 커뮤니티 시스템 등.


하지만 배경 설정만은 당시에도 상당히 매력적이라고 느꼈다. 인간 내면의 가면, 그 모습이 실체화되어 나타나 싸운다는 것이 상당히 재미있었다. 하지만 게임 자체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고, 이후로는 콘솔 게임기보다는 PC만으로 게임을 하다보니 페르소나 시리즈는 자연히 거의 접하지 못했다. 4편과 5편 평이 모두 괜찮았다는 것만 얼핏 들었을 뿐.


그렇게 P3P를 처음 접하고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스팀으로 발매한 페르소나 4 더 골든(이하 P4G)를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게임은 과거 3편과 달리 굉장히 즐거운 경험이었다.

페르소나4의 주인공


P4G는 전형적인 일본 청춘 활극이라는 느낌이 잔뜩 드는 게임이다. 간단히 스토리를 요약하자면 시골로 전학온 고등학생 주인공이 새 친구들과 함께 마을의 미스터리와 위기를 해결해 나가는 내용이다. 기본적으로 메시지를 강조하는 일본 서브컬쳐물이 대개 그렇듯이, 이 게임도 인물들의 내적 갈등과 사회적 관계에 대해서 조명하고 있다. 내면의 모습이 실체화되어 싸운다는 '페르소나'라는 설정 덕에 이런 주제가 한층 와닿는다.


하지만 그게 P4G의 유일한 장점은 아니다. 말했듯 저런 주제를 가진 작품은, 특히 일본에는 장르를 불문하고 상당히 많은 편이다. 주 스토리에 심야 TV라는 소재를 내세워 대중매체와 대중 사이 관계에 대해서도 고찰하고 있으며, 일본 신화를 게임 전반에 녹여내어 묘하게 현실적이면서도 대유적이라는 느낌을 주는 이 게임은, 그야말로 '현대적 우화'라 할 수 있겠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청춘물이라는 장점은 놓치지 않는다. 아니, 놓치지 않는 게 아니라 이 게임은 청춘물로서의 장점이 가장 크다. 등장인물들이 자신의 약한 부분을 마주하고, 그것에 대해 슬퍼하고, 사랑하고, 아파하고 극복해나간다. 많은 캐릭터가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P4G는 이러한 성장 과정을 전형적이지 않고 개성적으로 묘사해내었다. 


이하 스포일러




주인공의 동료이자 여법황 커뮤니티의 아마기 유키코

P4G의 중심테마는 개인적으로 '구원'이라 생각한다. 페이크 진범이었던 나마타메 타로와 아메노사기리, 그리고 진엔딩의 최종보스 이자나미는 모두 자기 행동이 구원이며 인간의 바람이라고 말한다.


사실 이들의 말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다. 과정은 어쨌건 간에 나마타메가 TV에 집어넣었던 아마기 유키코, 타츠미 칸지, 시로가네 나오토 등은 실제로 살아났고, 인간이 쉐도우가 되는 거야말로 인간의 바람이라는 아메노사기리와 이자나미의 말 역시 틀린 건 아닌게 애초에 TV 속 세계와 안개 자체가 인간의 무의식적 욕망이 투영된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말하는 구원은 피상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마타메의 행위는 사실 피해자들을 죽일 뻔 했고, 그걸 저지해낸 것은 주인공과 동료들이다. 두 초월적 존재의 말 역시 마찬가지다. 인간은 포기하고 허무주의적 성향에 빠져들기도 하지만, 그건 인간의 여러 모습 중 하나일 뿐이다.

최종보스 이자나미오오카미

필자는 신적 존재(신적 존재 사이에 사상적 차이가 없으므로 이하는 진엔딩의 보스인 이자나미로 통칭함)에 대립하는 주인공들이라는 측면에서 스토리에 대해 고찰해보려 한다.


이자나미의 말처럼 안개와 TV 속 세상, 쉐도우의 존재는 인간의 욕망이 투영되어 있다. 예컨대 우리가 힘들 때 생각하곤 하는 '죽어버리고 싶다', '세상 망해버렸으면', '난 왜 사는 걸까' 하는 좌절적인 욕망들이다. 이러한 욕망들이 진지하게 세상에 반영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는 차치하고서라도, 과연 인간의 욕망을 그대로 실현시킨다고 해서 그것이 바람직한 것일까?


독일의 나치, 이탈리아의 파쇼, 일본의 군국주의. 이들은 국민의 지지기반을 업고 흥한 세력들이다. 하지만 이들을 절대 올바르다고 할 순 없다. 저들의 행위는 좌절에 빠진 국민을 선동해 개인의 영달과 뒤틀린 사상을 실현해내려 한 자들에 불과하다. 이자나미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관점으로 볼 때, 페르소나 4의 주제의식은 반전체주의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거기에 대한 반동으로 주인공과 동료들이 내세우는 것은 '나 자신' 그리고 '인연'이다.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거대한 의지가 아닌 바로 자기 자신과 사회적 관계라는 것이다. 이는 사회학적이며 지역주의적이기도 하다. 작중 배경이 시골 마을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https://youtu.be/fdPSpsaMLr8

주인공들이 내면의 쉐도우를 마주보고 인정할 때 흐르는 곡, I'll face myself

페르소나 시리즈는 항상 커뮤니티와 인연의 힘을 강조하지만, 페르소나 4에서는 이러한 주제와 결부되어 커뮤니티에 대한 강조가 한층 와닿는다. jrpg에서 흔히 나오는, 쓰러진 주인공을 동료들이 일으켜 세우는 연출 역시 마찬가지다. 인간을 구원하는 건 거시가 아닌 미시라는 강조다.


하지만 P4G를 이렇게 무겁게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앞서 말한 것처럼 청춘물, 포켓몬스터와 유사한 RPG 게임, 연애 시뮬레이션, 추리극 등 여러가지로 즐길 수 있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어느 정도 메타픽션물로 해석할 만한 여지도 있다.


개인적인 점수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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