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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re Jun 25. 2017

영화 '블레이드 러너' 다시보기

블레이드 러너 2049 개봉을 앞두고

마천루, 음침한 거리, 무질서하게 번쩍이는 네온사인들, 술과 약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들, 그리고 혼란을 통제하는 안드로이드들. 소위 사이버펑크 SF의 필수요소라 할 수 있는 것들이다.


CD 프로젝트 사의 게임 사이버펑크 2077 트레일러의 한 장면. 이 영상은 안드로이드, 높이 솟은 마천루들, 음울하면서 빛나는 밤거리 등으로 전형적인 사이버펑크를 묘사하고 있다.


사실 '블레이드 러너가 사이버펑크 장르인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마냥 그렇다고만 하기는 어렵다. 블레이드 러너에는 '사이버', 즉 가상현실, 사이버스페이스 등이 없고, '펑크'스러운 반항 정신도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블레이드 러너를 소설 '뉴로맨서', 만화 '아키라' 등과 함께 사이버펑크라는 장르를 태동시킨 작품들 중 하나로 본다. 음울하고 어두우면서 동시에 퇴폐적이고 쾌락적이며 화려한 도시의 분위기, 인간을 위협하는 안드로이드들, 수수께끼에 싸인 주인공. 이런 요소들은 후대 사이버펑크 장르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블레이드 러너의 영향력을 아예 배제한 사이버펑크물은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블레이드 러너의 원작 소설인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 는 영화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블레이드 러너의 지구가 번영과 몰락을 동시에 겪고 있는 미래도시적인 분위기라면, '전기양'의 지구는 사뭇 포스트 아포칼립스적이다. 주인공 '릭 데커드' 역시 영화에서는 해리슨 포드가 배역을 맡아 분위기 있고 마초적인 남성이라면, 소설의 주인공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저씨 스타일의 남자이다.


이제 영화에 집중해 보자. 블레이드 러너는 에일리언 등을 제작하며 당시 연일 주가가 상승 중이었던 '리들리 스콧' 감독과 최고의 SF작가로 불린 '필립 K 딕'과의 만남이었다. 당연히 많은 사람이 기대했으나, 그 결과는 흥행 대참패였다.

리들리 스콧 감독. 에일리언 시리즈와 마션 등으로 잘 알려져 있는 감독이다.
위대한 SF 작가로 칭송받는 필립 K 딕.

물론 대진운이 상당히 나쁘기도 했다. 동 시기에 개봉한 작품이 스필버그의 역작인 'ET' 였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레이드 러너의 실패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커리어에 먹칠을 하기에는 충분했다. 그는 이후 '레전드' 등의 작품 역시 흥행에 실패하며 한동안 슬럼프를 겪게 된다.


하지만 1992년 감독판이 세상에 나오면서 그 평가는 뒤집히게 된다. 다소 억지스러운 결말이 수정되고, 원본에서 잘려나갔던 많은 부분이 다시 추가되었으며 존재 이유가 애매했던 해리슨 포드의 독백 나레이션 역시 제거되었다. 그리고 여러 평론가와 관객들을 이 작품을 저주받은 걸작이라 불렀다.


그리고 2007년, 몇몇 부분을 스콧 감독이 다시 편집해 최종판을 내놓았다. 그 해에 미국 영화 연구소에서 뽑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 100선에서 97위, 2008년 영국 엠파이어 지가 선정한 가장 위대한 영화 500선에서 20위를 차지하며 본래 받아야할 평가를 제대로 받게 되었다.


그렇다면 어떤 점이 이 영화를 위대하게 했을까? 우선 스토리를 보자.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이 영화는 주인공 릭 데커드가 '블레이드 러너'로서 사회에 문제를 일으키는 레플리컨트라는 인간형 로봇을 처리, 그러니까 죽이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영화의 여러 모습들은 릭 데커드의 일이 정당한 것인가 의문을 가지게 만든다.


우선 릭 데커드의 정체부터가 문제다. 경감의 말에 의하면 그는 퇴역한 블레이드 러너다. 그 외에 데커드에 대한 정보는 전무하다. 레이첼의 질문, '당신 자신이 레플리컨트인지 검사해 본 적이 있나요?', 그리고 데커드가 레플리컨트를 처리할 때마다 감시하고 있었다는 듯 바로 나타나 뒷수습을 하는 경찰 '개프'. 이 장면들은 관객들로 하여금 '혹시 데커드도 레플리컨트가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한다.


만약 데커드가 인간이라 하더라도, 여전히 찝찝한 구석이 남아있다. 영화의 엔딩 부근에서 데커드는 마지막으로 로이라는 레플리컨트와 대결하며 죽을 위기에 처한다. 그 상황에서 로이는 데커드를 구해준다. 레플리컨트라는 이유로 그들을 죽였던 데커드, 그리고 데커드를 구해준 로이 중 어느 쪽이 더 인간다운지는 생각해볼 여지가 있을 것이다.


사실 이 영화를 위대한 이유는, 분위기 때문이다. 리들리 스콧은 사이버펑크를 정말 완벽하게 스크린에서 묘사해냈다. 간단히 사진으로 보자.

블레이드 러너의 한 장면
블레이드 러너의 한 장면
블레이드 러너의 한 장면

네온사인이 빛나는 비오는 밤, 높이 솟은 건물들과 오리엔탈리즘의 흔적들. 이제는 SF 영화의 클리셰가 되어버렸다고 할 정도로 진부한 장면들이다. 스콧은 이 모습들응 영화로 훌륭하게 재현해냈다. 이 영화가 혹평을 받았던 1982년에도 아카데미 미술상, 의상상, 촬영상을 수상하며 그래픽적 요소는 인정받았다.


마지막으로는 음악이다. 긴 말할 것 없이 여기서 한번 들어보자. 이 영화 음악을 작곡한 반젤리스는 어둡고 건조하며 타락한 미래상을 성공적으로 묘사해냈다. 음악으로 말이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영화는 결코 아니다. 오히려 불안하고, 혼란스러우며, 머리를 어지럽게 한다. 그리고 감독은 의도적으로 데커드가 레플리컨트라는 복선들을 삽입해 관객들 더 혼란스럽게 한다. 이 영화의 주연을 맡았던 해리슨 포드는 '관객들은 응원할 대상이 필요하다.' 며 데커드는 인간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스콧 감독의 의도는 그것이 아니었던 것 같다. 관객들에게 '혼란'이라는 감정을 주입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주인공의 정체를 모호하게 한 것 같다. 다시 말하자면 주인공의 정체에서 오는 혼란이 영화의 다른 곳까지 전이되는 것을 원했던 것으로 보인다. 불안하고 혼란한 미래상을 담은 불안하고 혼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어찌되었건, 블레이드 러너가 세상에 나온 지는 35년이 흘렀고 올해 10월이면 그 후속작인 블레이드 러너 2049가 나온다. 원작이 2019년을 다루었으니, 딱 30년 후를 다루는 것이다. 속편의 계획이 발표된 것이 2012년, 즉 꼭 30년 후이기 때문인 듯하다.

블레이드 러너의 주인공 K 역의 라이언 고슬링, 그리고 데커드 역의 해리슨 포드.


총 제작은 여전히 리들리 스콧이 맡았지만, 연출 및 감독은 '시카리오'와 '컨택트', '그을린 사랑' 등의 감독을 맡았던 드니 빌뇌브 감독이 담당한다. '컨택트'를 통해 SF 영화의 데뷔를 훌륭하게 마친 그이기에, 그리고 전작이 SF 영화계의 대작이었기에 블레이드 러너 2049는 SF 팬들에게 기대할 수 밖에 없는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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