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ure Jun 11. 2018

역전재판 vs 단간론파

*역전재판과 단간론파의 각종 스포일러를 엄청나게 포함하고 있습니다!

역전재판의 주인공, 나루호도 류이치

일본 추리게임 중 가장 유명한 게임을 뽑으라면, 단연 역전재판과 단간론파일 것이다. 특히나 비주얼 노벨 형태의, 선택지형 추리게임 중에서는 가장 유명한 것이 두 게임이다.

단간론파 1의 주인공, 나에기 마코토

물론 카마이타치의 밤 시리즈도 있고, 약간은 추리와 동떨어졌지만 '쓰르라미 울적에'나 '총성과 다이아몬드'와 같은 게임들도 존재하지만, 두 게임의 명성에는 따라가기 어렵다. 오늘은 두 게임의 특징을 열거하며 비교해보려고 한다.


역전재판 시리즈


1. 현실과 허구가 뒤섞인 세계관

역전재판 시리즈의 재판관

역전재판의 배경은 기본적으로 현대 일본이다. 근미래와 SF, 판타지적, 비현실적 느낌이 물씬 풍기는 단간론파와 달리, 역전재판의 세계관은 적어도 우리가 현실에서 볼 수 있는 풍경들로 만들어져 있다. 영매를 제외하면 초현실적 소재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그만큼 세계관에 대해 알아야할 필요 없이 편하게 몰입할 수 있다.

채찍쓰는 검사, 카루마 메이

물론 비현실적 요소도 많다. 전 시리즈 공통적으로는 서심법정제도, 건방짐의 끝을 달리는 검사들의 태도, 영매 등. 전기 시리즈(1~3)과 후기 시리즈(4~6, 역전검사 등)을 구분해서 보자면, 전기 시리즈에는 영매와 같은 초현실적 소재가 중요하게 등장하며, 후기 시리즈에는 역전재판 4의 메이슨 시스템, 역전검사에 나오는 증강현실장비 누스미짱(훔치미), 역전재판5, 6에 나오는 코코네의 모니타 등 근미래적, 과학적 소재가 주로 쓰인다.

역전검사의 증강현실장비, 훔치미

이는 대부분 게임의 재미를 높이기 위한 장치라고 볼 수 있다. 이를테면 서심법정제도는 게임의 템포가 지나치게 늘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검사들의 건방짐은 게임의 개그요소를 위해, 영매나 모니타는 심문의 편의성을 위해서 도입되었다고 볼 수 있다.


2. 적절한 난이도

여러모로 문제 많은 증인, 야하리 마사시

필자는 타 추리게임은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추리 소설, 영화 등과 비교해보자면, 역전재판에 나오는 트릭은 크게 어렵지 않다. 사실 트릭보다는, 사건에서 증인이나 공범의 증거 조작 혹은 인멸(고의든 아니든 간에) 때문에 난이도가 뛰는 경우가 더 많다. 일부 사건에서는 서커스, 영매, 마술과 같은 요소 때문에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서커스장을 배경으로 일어난 사건, 역전의 서커스

하지만 체감상 다가오는 난이도는 크게 어렵지 않다. 기본적으로 선택지 시스템을 채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플레이어가 정확한 사건의 진상을 모르더라도 '어? 이거 같은데?' 싶은 증거물이나 선택지를 제시하기만 하면 나루호도가 알아서 추리를 해준다. 물론 지나치게 복잡하게 꼬아 놓아서 플레이어의 짜증을 유발하는 일부 에피소드도 있긴 하다. 대표적으로 역전재판 4의 마지막 에피소드. 아무튼 대부분의 사건의 경우 적당히 머리쓰면서 추리하기 딱 적절한 난이도를 가지고 있다.


3. 영매

주인공의 조수이자 영매사, 아야사토 마요이

일부 팬들에게는 역전재판 전기 시리즈의 가장 나쁜 점으로 지적되기도 하는, 영매. 하지만 영매를 빼놓고 역전재판, 특히 전기 시리즈를 설명하는 건 불가능하다. 역전재판 1의 가장 중요한 사건인 DL6호 사건부터 영매가 중요하게 언급되고, 2부터는 아예 영매사의 아이템인 곡옥을 통해 상대 마음의 거짓말을 읽어내는 사이코록 시스템을 도입했다. 사건 소재, 해결 과정에도 영매가 등장하는 것은 변함이 없다.

사람의 비밀이나 거짓말을 나타내는 사이코 록

영매가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 에피소드는 1-4, 2-2, 3-5 등이며 영매와 관련된 소재가 등장하지 않는 에피소드는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초자연적 요소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이는 아주 큰 진입장벽이 될 수 있다.


이런 점을 신경쓴 것인지 4, 5와 역전검사 시리즈에는 영매와 관련된 요소를 거의 삭제했다. 하지만 인기 캐릭터인 영매사 아야사토 마요이를 버리기는 아쉬웠는지, 6에서는 아예 배경을 영매 왕국인 쿠라인 왕국으로 옮겨 다시 영매 소재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4. 개별적인 사건, 그리고 큰 하나의 사건

역전재판 1을 아우르는, DL6호 사건

역전재판 시리즈는 대대로 한 작품이 말하고자하는 테마가 있고, 그 테마를 상징하면서 한 작품을 묶는 거대한 사건이 있다. 1의 경우는 DL6호 사건, 3은 미야나기 치나미와 관련된 일련의 사건, 4는 나루호도의 불명예 은퇴사건, 역전검사1은 밀수, 역전검사2는 한 남자의 복수. 거의 유일하게 역전재판 2만 이런 전개에서 벗어나 있다. (각 사건이 모두 개별성을 띤다.)


개인적으로, 이는 장점이 되기도 하고 단점이 되기도 한다고 본다. 큰 사건은 게임에 일체감을 주고 클리어했을 때 플레이어에게 '최종 보스를 쓰러뜨렸다'는 성취감을 준다. 거기에 여러 반전요소를 넣어 충격과 때로는 감동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때로는 억지스러워 보일 때도 많다. 지나치게 특정인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거나, 너무 반전이 뜬금없다거나 하는 경우다. 개인적으로는 역전재판4, 역전검사2, 역전재판5에서 이런 느낌을 받았다.



단간론파 시리즈


1. 판타지적 세계관


앞서 말한 것과 같이, 단간론파는 SF, 판타지의 느낌을 물씬 풍긴다. 단적으로 말을 하는 로봇 인형이 세계의 수재만 모은 학원의 학원장이며, 그들을 감금하고 살인 게임을 시킨다는 것부터 지극히 비현실적이다. 거기다 세계멸망, 가상현실, 우주 등 이야기를 풀어가면 갈수록 그 스케일은 어이없을 정도로 커진다.

인류사상 최대 절대절망적 사건을 일으킨 여고생, 에노시마 준코

물론 그 세계관 나름 매력적이긴 하다. 하지만 개연성을 개나 줘버렸다는 게 큰 문제다. 근본적으로 어떻게 여고생 하나가 '인류사상 최대 절대절망적 사건' 을 일으켰는지부터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다. 이를 해결하려는 미래기관이 어떤 기관인지, 세 번째 시리즈인 뉴 단간론파V3의 진정한 흑막은 누구이며 이 세계는 어떤 세계인지, 불분명한 것이 너무나 많다.(필자는 단간론파 애니메이션은 하나도 보지 않았다.)


2. 너무 쉬운 추리 난이도

단간론파 시리즈의 첫 희생자, 마이조노 사야카

단간론파의 에피소드 대부분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추리 난이도가 쉽다. 특히나 단간론파 1은, 조사만 끝내면 이미 대충 감이 잡힌다. 아, 이렇게 해서 죽었겠구나. 1의 첫 에피소드에서는 등장인물들을 보며 답답할 정도로 너무 쉽다. 역전재판의 첫번째 에피소드도 쉽긴 하지만 이 정도는 아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인지, 추리 외 요소들을 대거 도입했다. 게임을 하다보면 내가 추리게임을 하는 건지 리듬, 퍼즐, 레이싱 게임을 하는 건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물론 이런 요소를 좋아하는 팬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추리게임이라면 머리를 쓰는 게 우선시 되어야한다고 본다.


2나 V3에서는 일부 에피소드는 약간 어렵긴 하다. 하지만 그도 주변인들이 힌트를 너무 뿌린다. 범인이 내가 범인이요하는 티를 심하게 낸다거나 하는 식으로. 


3. 매력적인 캐릭터

일본 애니, 만화, 게임을 좋아하는 오타쿠라면 분명 이 게임의 캐릭터들도 좋아할 것이다. 우선 각 시리즈마다 15(혹은 16)명의 고교생이 등장하는 만큼, 실로 다양한 성격을 지닌 인물들이 나온다. 아이돌, 공주, 도박사, 상속자, 총통, 전통무용수, 요리사, 격투기 챔피언, 폭주족, 선도위원, 프로그래머, 록 밴드 보컬, 피아니스트, 탐정, 메카닉 등 '아니, 이런 고등학생이 존재해?' 싶은, 때로는 폭소가 터지기도 하는 다양한 캐릭터들이 나온다. 


물론 비현실적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재미있기도 하다. 학원물의 감성을 잘 건드리고 있으면서, 동시에 소위 오타쿠가 좋아할 만한 요소들을 여기저기 잘 흩뿌려놓았다.


4. 트롤러

단간론파 시리즈는 게임마다 꼭 한 명 이상의 트롤러가 존재한다. 전통인가 싶기도 하다. 1에는 토가미, 2에는 코마에다, 3은 오마. 물론 살인게임을 하는 만큼 내부의 적이 없다면 다소 루즈해지기는 하겠지만, 시리즈를 진행해가며 트롤러들이 도를 지나친다. 1의 토가미는 받아들일만한 트롤러였다면, 2의 코마에다는 정신병자, 3의 오마는 장난이 너무 심한데 정도를 모르는 데다 머리까지 좋아서 엄청난 사고를 치고 다니는 짜증나는 애로 보인다.

제작진이 이걸 노린 건지는 모르겠지만, 저 둘이 죽었을 때는 잘 죽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은 살인은 안 돼!를 외치는 와중에 플레이어에게 이런 생각이 들게끔 하는 캐릭터가 과연 잘 디자인된 건지는 모르겠다. 물론 결과적으로 저 캐릭터들은 모두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으니, 아마 잘 된 거겠지. 개인적으로 이해는 안 된다.


5. 반전에 목숨 건 스토리라인


단간론파 2부터 이런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전작의 반전 요소를 비꼬면서 모노쿠마는 '이번엔 그런 거 없어.' 라는 식으로 말하지만, 각 시리즈는 더 큰 반전요소를 숨기고 있다. 사실 2까지는 받아들일 만은 했다. 앞에서 말한 개연성이 좀 부족한 것만 빼면.


V3의 결말은 여기저기서 많이 논란이 되었다. 사실 신선한 소재는 아니다. 그 전부터 여러 영화나 소설 등에서 나온 반전이기도 하고. 유명한 걸로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과 같은 작품이 있겠다.

V3의 엔딩, 진실

개인적으로 V3의 엔딩은, 단간론파 시리즈 캐릭터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것 같아 나름 괜찮았다. 문제는 이 엔딩 때문에 다른 단간론파 시리즈까지 다 뒤엎어버렸단 것이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이는 팬을 자극하기 위한 컨텐츠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거기다 엔딩도 다소 모호하게 해버린 것도 문제다. 차라리 세계관을 확정내버렸으면 나는 '아, 단간론파는 여기서 끝이구나. 좀 껄끄럽지만 나름 캐릭터들을 잘 대변한 엔딩이었어. 느낀 점도 있었고.' 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흑막의 말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어.' 로 끝나는 건 너무 구차해보였다. 마치 차기작을 또 내고 싶다는 말로 들렸기 때문이다.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단간론파를 하는 사람을 그렇게 비난했으면서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파인딩 파라다이스 리뷰 (스포 x)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