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책 이야기

김영하의 단편, 그림자를 판 사나이

by lure

‘그림자를 판 사나이’는 소설집 ‘오빠가 돌아왔다’에 실린 김영하 작가의 단편이다. 소설은 화자인 ‘나’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나’는 혼자 사는 작가이다. 어느 날 아침 고등학교 친구였던 미경에게 만나자고 전화가 오지만 그는 소설 마감을 핑계로 만남을 미룬다. 그리고 곧 또 다른 고등학교 친구이자 신부인 바오로에게 만나자는 연락이 온다. 하루에 두 번이나 옛 친구를 내칠 수 없었던 ‘나’는 그와 만나 술을 마신다. 바오로가는 자신의 신자를 사랑하고 있다는 이야기, 미경과 잤다는 이야기를 하고 떠난다.


며칠 뒤, ‘나’는 미경과 만난다. 그리고 그녀에게서 그녀의 남편 정식이 자연발화로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녀는 ‘나’에게 같이 남편의 납골당에 가자고 하지만 거절한다. ‘나’는 이 상황에서 묘한 데자뷰를 느낀다. ‘나’는 미경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가면서 미경과 함께 사는 상상을 한다. 그러다 한밤중 임에도 불구하고 새가 그림자가 지나는 것을 느낀다. 그것으로 상상은 끝나고 그는 침대에 파묻혀 홀로 울음을 터뜨린다.


‘나’는 소설의 발단과 말미에 새의 그림자를 상상한다. “날아가는 새떼를 보고 있노라면 가끔, 아주 가끔, 뭔가 검고 어두운 것이 휙 지나간다.(...)그렇지만 가끔 새 그림자가 해를 가리는 일도 있다는 걸 말해두고 싶은 것이다.”(128p) “그 생각을 하는 사이 거대한 새 그림자가 내 머리 위를 지나간다. 하늘을 본다. 이상하다. 달도 없는 밤에 웬 새 그림자.”(161p)


작가는 글에서 ‘그림자’라는 소재를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는다. 허나 제목이 ‘그림자를 판 사나이’인 것, 소설의 시작과 끝에 새의 그림자를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림자’라는 소재는 ‘나’의 정신세계를 상징한다.


‘나’는 흔들리고 싶지 않아하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아침마다 그를 괴롭히던 조간신문을 끊었고 지진으로 인한 흔들림을 외로움으로 인한 것으로 착각하고 스스로를 다잡으려한다. ‘나’는 그저 주변을 유유히 관조하는 소설가로 남고 싶어 한다. 그는 흔들림을 기피한다. 하지만 흔들림은 그림자라는 모습으로 그 앞에 나타난다.


소설의 전개되는 동안 그는 무수한 흔들림을 느끼고 그 흔들림에서 자신의 그림자를 발견하게 된다. 첫 번째 흔들림은 미경의 전화였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만남 제안을 거절한다. 그 이유를 “...그녀와 나 사이엔 원래 서로 일정 거리 이상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묵계 같은 것이 있어왔다.”(132p) 이라고 ‘나’는 설명한다. 일탈을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바오로의 만남 제안까지 거절하지는 못했다. ‘나’는 바오로를 만나 미경까지 셋이 친하게 지내던 고등학교 시절을 회상한다. 미경과 바오로는 사귀는 사이였고 ‘나’는 그 사이에 낀 소위 말하는 애매한 친구였지만 둘과 별 마찰 없이 지냈다. 하지만 바오로가 신학교에 진학하고 그들은 헤어지게 된다. 세월이 흘러 미경은 ‘나’의 친한 친구인 정식과 결혼한다.


김영하 작가의 소설은 금지된, 그러나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인간의 욕망을 우리에게 내비친다. 신자에 대한 바오로의 사랑 역시 그 중 하나이다. ‘나’ 역시 미경에게 그러한 금지된 욕망을 가지고 있었다.


“나, 미경이하고 잤다.” 커다란 새가 날개를 펼치고 내 머리 위를 지나갔다. 어느 정도 예상했으면서도 나는 힘이 쭉 빠졌다. “왜 그랬어? 그러면 안 되잖아.”(147p) 큰 새가 머리 위를 지나가면 큰 그림자가 만들어 진다. ‘나’는 바오로의 일종의 고해성사를 들으며 그의 그림자를 보는 동시에 자신의 그림자를 느낀다.


미경은 고등학교 시절에는 바오로와 사귀었고,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는 ‘나’의 친한 친구인 정식과 결혼했다. ‘나’는 바오로와 미경의 교제에 대해 “질투가 전혀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건 엄밀히 말하면 미경이라는 특정한 여성에 대한 욕망이 아니라 그런 관계에 대한 선망이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미경에 대한 에로틱한 묘사(“바람이 불 때마다 꽃잎이 떨어져 날렸다. 그중 하나가 미경의 블라우스와 쇄골 사이 틈으로 떨어졌다. 그녀가 숨을 쉬자 꽃잎이 그녀의 가슴 속으로 내처 들어가버렸다.”)나 ‘나’의 어머니가 미경을 혹평한 데 대한 그의 반발심, 그리고 소설 말미의 미경과 결혼하는 상상, 이것들을 볼 때 ‘나’ 역시 미경에 대한 연정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친구들의 연인이었던 이유로 이를 억눌렀을 뿐이다.


‘나’는 자신의 내면, 감정을 타인에게 내보이려 하지 않는다. 그는 산책 도중 다리 근처에 있던 노숙자에게 욕을 먹고도 집에 돌아와 욕실에서 홀로 분풀이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내가 하는 일이 이렇다. 화도 제대로 못 내고 혼자 저지른 일, 아무도 모를 일이나 조용히 뒷감당을 한다. 알고 보면 다들 별 다르지 않을 것이다.”(150p)


그와 가장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인물상으로 그의 어머니가 제시된다. 그녀는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 사람 몇이나 되냐”(150p)라고 말하지만 ‘나’가 보았을 때 그녀는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사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원하는 대로 결혼하고 이혼하며 전 남편들에게 권리를 요구했고 여행이며 쇼핑이며 대책 없이 저지르고 보는 스타일이었다. 작가는 가장 가까운 관계인 어머니의 성격이 주인공과 정반대인 역설적 상황을 통해 주인공 ‘나’의 인간상과 성격을 강조하고 있다. 그림자를 만들고 싶어 하지도,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내비치기도 싫어하는 그의 성격을 말이다.


소설 말미에는 지금까지 해석한 그림자와는 다른 의미로 그림자라는 소재가 사용된다. “그렇게 누군가와 옥닥복닥 부대끼며 지내다보면, 어쩌면 내게도 그림자가 생길지 모른다. 그렇게 멋진 그림자가 생기면(...)”(161p) 그림자가 기피의 대상에서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이렇게 그림자가 이중적 상징을 가진 이유는 그림자 자체의 속성에서 연유한다. 그림자는 그 자체만 보면 어둠이다. 그러나 그림자는 빛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다. 어둠 속에서는 그림자가 없다. 그림자가 존재는 빛의 존재를 의미한다. 따라서 그림자는 내면의 어둠이라는 부정적인 소재로 사용됨과 동시에 일상, 또는 그것의 부산물이라는 긍정적 소재로 사용된 것이다.


‘그림자를 판 사나이’라는 의미는 타인에게 자신 내면의 그림자를 보이고 싶지 않은 주인공 ‘나’의 소망을 드러냄과 동시에 세상에서 떨어져 지내며 긍정적인 의미의 그림자를 만들 수 없는 ‘나’의 현재 상태를 드러내는 것이다.


주인공의 태도, 즉 자신의 내면을 남에게 보이려 하지 않는 태도는 우리들에게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우리 사회는 점점 파편화 되어가고 있다. 핵가족을 넘어 1인 가구가 늘어나고 타인과의 교류는 옆 집 이웃이 누군지 모를 정도로 적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현대인들은 자신의 진심, 내면,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기를 꺼려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동시에 누군가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고 싶어 하는 역설적인 욕망을 느낀다. ‘나’ 역시 그런 욕망을 느낀다. “그들은 털어놓아야 할 뭔가가 있었다. 나는 그들이 부러웠다. 나에겐 누군가의 영혼에 어둠을 드리울 그 무언가가 없었다.”(154p) ‘나’의 모습은 내면의 고통과 어둠을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내기 꺼려하지만 동시에 가까운 누군가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고 펑펑 울어버리고라도 싶은 우리들의 모습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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