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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re Mar 15. 2019

라쇼몽(1950)

그들이 거짓말을 한 이유는

인간은 모두 거짓말을 한다. 그것이 선의건, 악의든 혹은 이기심 때문이건, 이타심 때문이건 말이다. 라쇼몽은 거짓말과 인간의 이기심을 다룬 영화다.


일본의 헤이안 시대, 나무꾼과 승려, 그리고 한 남자가 비를 피해 나생문(라쇼몽) 아래에 앉아 있다. 나무꾼과 승려는 기이한 사건을 겪었다면서 남자에게 자신들이 겪었던 살인 사건을 이야기한다.


사흘 전, 나무꾼은 나무를 하다 한 남자의 시신을 발견했고 겁에 질려 곧장 관아에 알린다. 그리고 곧, 사건의 관계자들이 관아로 모인다.


죽은 남자의 아내와 도적 타지오마루


도적 타지오마로는 자기가 남자를 죽였다고 증언한다. 그 남자는 한 여인을 말에 태우고 길을 가고 있었는데, 흘끗 본 그녀가 너무 아름다웠던 나머지 겁탈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한다. 타지오마루는 보물이 있다며 남자를 꾀어낸 뒤 나무에 묶어두고 여자를 겁탈하러 돌아갔다.


하지만 너무나 가련한 그녀의 모습을 보자, 타지오마루는 그런 여자에게 묶여있는 남자를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타지오마루를 따라간 여인은 오열하다가 단도를 들고 타지오마루에게 덤비지만, 결국 겁탈당하고 만다.


그 후, 타지오마루는 돌아가려 했으나 여인이 '이렇게 남겨두면 나는 어떻게 살란 말이냐, 나는 이긴 쪽을 따르겠으니 둘이 싸우라.' 고 말한다. 타지오마루는 그녀의 말을 받아들여 남자를 풀어주고, 치열한 1대1 검투 끝에 그를 죽인다. 하지만 여자는 그 사이 도망갔고, 타지오마루는 여자가 남겨둔 말을 타고 가다 갑작스런 복통으로 쓰러져 관아에 잡혀온다.


증언하는 죽은 남자의 아내


하지만 곧이어 나타난 아내의 증언은 전혀 달랐다. 그녀가 타지오마루에게 겁탈을 당한 뒤 그는 사라졌다. 아내는 묶여있는 남편을 붙들고 오열하지만 그는 혐오감이 담긴 싸늘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아내는 나를 죽일 지언정 그런 눈으로 나를 보지는 말라고 오열하다가 실신한다. 그러다 문득 눈을 뜨니, 남편은 자신의 단도가 꽃힌 채 죽어있었다. 그녀는 그걸 보고 주변의 연못에 몸을 던져 죽으려하나 차마 목숨을 끊지는 못하였다.


죽은 남자를 빙의시켜 증언하는 무당

마지막으로 죽은 남편의 증언이다. 그는 무당에 빙의되어 증언한다. 아내가 도적에게 겁탈당한 뒤, 도적은 같이 달아나자고 아내를 꼬드긴다. 아내는 그렇다면 남편을 죽여달라고 한다. 그래야 자신이 따라갈 수 있다며 말이다. 그 말을 들은 타지오마루는 얼굴이 하얘져선 달아나고 아내 역시 도망친다. 곧 타지오마루가 돌아와 자신을 풀어주자 그는 도적을 마음 속으로 용서하게 된다. 그리고 오히려 아내에 대한 원망이 극에 달해 분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그녀의 단도로 자살한다.


이야기를 해주던 나무꾼은 셋 다 거짓말이 틀림없다며 단언한다. 이야기를 듣던 남자는 어떻게 거짓말인 걸 그렇게 잘 아냐며, 뭔가 더 알고 있는 것이 아니냐며 나무꾼을 부추긴다. 그의 추측대로 나무꾼은 사실 사건의 처음부터 그들을 보고 있었다.


오른쪽부터 이야기를 듣던 남자, 나무꾼, 승려

타지오마루는 아내를 범한 뒤, 무릎까지 꿇어가며 그녀를 꼬드긴다. 돈이라면 많고 부정한 돈이 싫다면 앞으로 정직하게 일할 수도 있다면서. 아내는 여자인 자신은 결정할 수 있는 게 없다며 남자끼리 싸워 결정하라고 한다. 하지만 남편은 '이런 여자 때문에 목숨을 걸고 싶지는 않다.' 며 거절하고, 오히려 아내에게 어째서 자결하지 않느냐고 성을 낸다. 말을 듣던 도적 타지오마루 역시 갑자기 변심하여 여자를 버리고 길을 떠나려한다.


그걸 본 아내는 갑자기 미친 듯이 웃으며 둘 다 사내도 아니라며 도적과 남편을 비웃는다. 남편에게는 '내게 자결하라 하기 전에 나를 겁탈한 도적을 죽여야하는 게 먼저 아니냐'라고, 그리고 도적에게는 '당신을 따르면 틀에 박힌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해 따르려 했는데 나를 검으로 쟁취할 용기가 없는 거냐'라고 하며. 결국 아내의 도발에 말려든 두 남자는 검을 들고 결투를 벌인다.


그들의 결투는, 타지오마루가 말한 것과는 정 반대로 우스꽝스럽기 이를 데 없는 막싸움이었다. 칼도 맞대지 않았는데 허공에서 손을 떨고, 혼자서 검을 놓치기 일쑤이며 놓친 검을 제대로 줍지도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결국 진흙탕 싸움 끝에 도적이 승리하고, 그는 여자를 데려가려고 하나 그녀는 지친 타지오마루를 팽개치고 도망간다.


네 사람의 증언 중 어떤 것이 진실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무꾼의 증언이 가장 신빙성있기는 하지만, 그 역시 시신 곁에 남겨진 단도를 들고 가서 팔아버리는 등 사건에 개입했기 때문에 완전히 믿기는 어렵다. 하지만 관찰자인 우리는 그의 증언을 신뢰할 수 밖에 없다. 아니면 지나친 염세주의에 빠져버릴 수 있으니.


나무꾼의 말이 사실이라면, 어째서 세 사람은 거짓말을 한 걸까? 그리고 거짓말의 내용은 왜 저런 걸까? 나는 의문이 들었다. 보통 살인 사건에서 거짓말을 한다면 '내가 죽이지 않았다' 라고 하는 것이 보통인데, 세 사람은 모두 자기가 죽였다고(아내의 경우 애매하지만 묶여있는 남편이 자살을 했을 리는 없으므로 실신한 상태에서 자기도 모르게 죽였다고 보는 게 옳을 듯하다.) 한다. 왜 그럴까?


2차 대전 무렵, 미국은 도저히 일본의 문화를 이해할 수 없었고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에게 일본에 대한 연구를 부탁했다. 그 결과 나온 책이 '국화와 칼'이다. 이 책에서는 일본의 '수치의 문화' 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일본인의 생활에서 수치가 최고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수치를 심각하게 느끼는 부족 또는 국민이 모두 그러하듯이, 각자가 자기 행동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에 마음을 쓴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타인이 어떤 판단을 내릴까를 추측하고, 그 판단을 기준으로 행동방침을 정한다. -'국화와 칼'에서

남의 눈을 신경쓰는 것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 이 책에 따르면 일본은 더 심한 듯하다. 오죽하면 '수치를 모르는 자' 라는 말이 욕이라고도 하니 말이다. 책의 다른 부분도 잠시 들춰보자.


인간은 ‘선’이냐 ‘악’이냐가 아니라, ‘기대에 부응하는 인간’이 되느냐 ‘기대에 어긋나는 인간’이 되느냐를 목표로 삼아 진로를 정한다. 그들은 세상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자신의 개인적 요구를 포기한다. -'국화와 칼'에서

한 마디로, 일본인들은 수치, 명예를 잃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라쇼몽 등장인물들의 행동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타지오마루는 비장한 결투 끝에 남자를 죽이고 여자를 쟁취하려고 한 것처럼 말해 자신의 명예를 높였고, 아내는 남편에게 버림받고 자결을 하려고 했다고 하며 자신을 가련하고 불쌍한 여성으로 보이려 했다. 남편은 비겁한 아내에게 버림받아 자살한 것처럼 증언했다.


개인적으로, 영화 주제인 '인간에 대한 신뢰와 거짓말, 이기주의' 보다는 왜 저런 거짓말을 했는지가 더 흥미롭게 느껴졌던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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