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목은 진실을 삼킨다
영화 우상 리뷰
차기 경남도지사 후보 구명회(한석규 분)는 뺑소니로 사람을 죽인 아들 탓에 정치적 위기에 몰린다. 죽은 남자의 아버지 유중식(설경구 분)은 아들의 죽음에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고 생각하며, 사라진 며느리를 찾아 헤멘다. 최련화(천우희 분)는 남자의 아이를 임신하 채 현장에서 어디론가 사라진다.
등장인물들은 자신의 우상을 좇는다. 구명회는 정치적 명성, 유중식은 가족, 최련화는 한국 국적. 그 중에서도 영화가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구명회다. 그는 말 그대로 대중의 우상이니까.
"너희들 때문에 구명회 지지율 떨어진다고 손님도 안 와." 유중식 누나가 한 말이다. 사실상 영화의 주제를 집약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대사이기도 하다. 우상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 '내 우상은 잘못되었을리 없어, 잘못된 건 너희야.' 라는 믿음.
영화가 진행되면서 관객들은 '우상이 되고 싶다' 라는 우상을 좇는 구명회의 민낯을 똑똑히 보게 된다. 자신에게 끼칠 영향을 줄이기 위해 시체 유기를 뺑소니로 위장하고, 련화를 찾아 고문하고, 자신이 이용한 심부름 센터 사람을 죽인다. 그리고 꿈에서였지만, 죽어가는 자기 아들을 방치하기까지 한다.
유중식은 련화 뱃 속에 있는 자기 손자를 위해, 결국 구명회와 손을 잡는다.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의 우상은 순식간에 붕괴된다. 련화는 아이를 유산하고, 구명회에 대한 모든 일을 알아내 그와 그 가족에게 복수한다. 모든 것을 잃은 유중식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사람의 목을 따라' 라는 무당의 말을 기억하고 광화문의 이순신 동상 목을 날려버린다. 상징적이면서도 직설적인 장면이다.
조선족인 최련화는 한국 국적을 얻기 위해 사람을 죽였다. 그녀의 사촌 언니는 련화를 두고 '보통 사람과는 다른 년, 가까이 해서는 안될 년' 이라고 칭하며 그녀를 찾는 유중식에게 경고한다. 그녀는 유중식과 구명회에 의해 구원받지는, 그것은 그릇된 구원이었다. 진실을 안 련화는, 모두에게 복수한다.
우상의 등장인물은 다양한 상징으로 읽힐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우상이 매우 정치적인 영화라고 생각한다. 구명회는 정치인을, 유중식은 때에 따라 정치인과 대립하고 협력하는 이익단체를, 련화는 핍박받는 민중들을 상징한다.
구명회의 아들 구요한내가 이런 생각을 한 건 구명회의 아들, 구요한(조병규 분) 때문이다. 그은 진실을 말하라는 구명회를 보며 조소한다. 자수하라는 구명회에게 "아빠 차잖아, 아빠가 들어가." 라고 말한다. 그리고 유중식이 경찰서를 찾아왔을 때, 그를 보면서도 조소한다. 이는 단순히 구요한이 악한 인물이라는 걸 말하는 것일수도 있지만, 나는 감독의 조소라고 생각했다. 허영과 비겁함으로 가득찬 구명회에게, 그리고 결국 그런 그와 손을 잡는 유중식에게 보내는 비웃음.
포박된 련화련화는 구명회에게 붙잡혀 눈이 가려진 채로 얻어 맞는다. 맹목. 그녀가 상징하는 대상이 민중이라고 생각해보면, 민중의 맹목적 지지가 불러오는 건 권력자의 무차별적 핍박과 학대라는 걸 나타내는 장면이다. 비단 이러한 폭력은 70-80년대 군부 시대에만 있는 게 아니다. 폭력이 거세된 사회라 할지라도 우상적 정치 권력이 존재하는 이상, 언제나 이런 핍박은 존재한다.
영화에서 결국 승리하는 것은 구명회다. 련화가 모든 진실을 알아내고, 복수에 성공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구명회는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다시금 우상이 된다. 어쩌면 전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는 우상이. 씁쓸하기 이를 데 없는 엔딩이다. 련화가 복수하는 장면에서 영화가 끝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감독은 의도적으로 그런 카타르시스를 지양하고 관객에게 현실을 마주하게 했다. 대중의 맹목으로 탄생한 우상은 그리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모든 사람은 마음에 우상을 품고 살아간다. 당신의 우상은 누구인가? 연예인인가, 정치인인가, 신념인가? 우상을 따르되, 그것이 우리의 눈을 가리지 않도록 항상 경계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