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홍콩, 시대혁명" 홍콩 프로게이머 블리츠청
1. 무슨 일인가?
매주 금, 토, 일 6시, 하스스톤 그랜드 마스터즈 대회가 트위치에서 열린다. 여느 때와 같이 저번 주도 그랬다. 정규 시즌의 마지막 주차 경기였던 만큼 여러 선수들의 플레이오프 당락 여부가 결정된 주였다. 하지만 저번 주 경기가 관심을 모으게 된 건, 그것보다 더 큰 이유가 있었다.
사건이 터진 건 APAC(아시아 태평양) 그랜드 마스터 시즌 마지막 경기, 한국 선수 DAWN(장현재) 선수와 홍콩 선수 BLITZCHUNG(Chung Ng Wai)의 경기가 끝난 후 인터뷰에서였다. 블리츠청 선수는 승리 후 중화권 중계진과의 인터뷰에서 방독면을 쓰고 홍콩 시위를 지지한다는 의미로 "광복홍콩, 시대혁명" 이라고 외친다.
이후 블리츠청은 그랜드 마스터즈 시즌 2 상금 몰수 및 강등, 1년 선수 자격정지라는 처분을 받았고 두 해설자는 선수를 부추겼다는 이후로 해고되었다. 이하는 블리자드에서 밝힌 제재 근거 규정이다.
Engaging in any act that, in Blizzard’s sole discretion, brings you into public disrepute, offends a portion or group of the public, or otherwise damages Blizzard image will result in removal from Grandmasters and reduction of the player’s prize total to $0 USD, in addition to other remedies which may be provided for under the Handbook and Blizzard’s Website Terms.
해석하자면 대중에 블리자드의 이미지를 훼손하거나, 대중에게 불쾌감을 줄 경우 블리자드 재량으로 그랜드마스터에서 선수를 배제하고 상금을 몰수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2. 무엇이 문제인가?
블리자드의 이러한 공식적인 발표는, 미지근하던 반발 여론에 기름을 끼얹은 꼴이 되어 버렸다. 바로 몇 주 전 대회 중 다른 게임(전략적 팀 전투) 대회를 동시에 진행하며 형편 없는 경기력을 보인 독일 그랜드마스터 SEIKO에게는 경고 처분으로 그쳤고, 그랜드 마스터 대회가 만들어지기 전 다른 대회(하스스톤 글로벌 게임즈)에서 방플(대회 중계를 보면서 경기를 치르는 행위)를 한 대만 그랜드마스터 SHAXY에게는 해당 대회 실격 처분으로 끝났기에 더더욱 그랬다.
'스포츠 인터뷰 자리에서 정치적 표현을 한 것이 잘못되었다.' 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틀린 말은 아니다. 이후 블리츠청이 개인 방송에서 한 말을 들어보면 본인 스스로도 징계에 대해 각오하고 있었던 듯하다. 우리나라의 축구선수 박종우도 올림픽 동메달 결정전이 끝난 후 '독도는 우리땅' 세레머니를 해 피파로부터 국제경기 2경기 출전금지 처분을 받은 적이 있다.
문제는 형평성 없는 벌칙 처분이다. 게임과 대회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방플 행위를 한 SHAXY 도 그랜드마스터로 초청한 블리자드다. 그런 그들이 블리츠청에게 1년 자격정지를 내린 건, 형평성에 어긋나며 중국을 과의식하고 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또한 블리자드는 그 동안, EVERY VOICE MATTERS 라는 표어를 걸고 인권 문제, 성소수자 지지 등 다양한 정치적 발언을 해왔다. 이들은 게임 내외로 그것을 적극 드러내며 지지해왔다. 그런 그들이 홍콩의 문제를 '문제가 되는 발언' 이라며 징계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누군가는 성소수자와 인권 문제는 정치적 문제가 아니며, 블리츠청의 건과는 다르다고 반론할 지도 모르겠다. 허나 개인의 의견과 무관하게 미국 및 각 국가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의견은 충분히 정치적으로 해석될 만한 발언이다. 그런 지지발언은 곧잘 하는 블리자드가, 인권이 유린되고 있는 홍콩의 실정에 대한 발언을 한 블리츠청에게 응원은 못 보내줄 망정 중징계를 내린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3. 왜 분노하는가?
사실 블리자드에 대한 게이머들의 분노의 원인은 이 문제 하나만은 아니다. 작년 블리즈컨에서 나온 소위 '님폰없' 사건부터 스타크래프트 2 월드 챔피언쉽 중계 문제,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게임 대회 무통보 폐쇄, 그 외 게임 밸런싱 문제까지 다양한 방면에서 욕을 먹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이 폭발한 것이 이번 사태라 할 수 있다.
또한 한국 및 세계 게이머들은 반중 감정이 상당히 심하다. 중국 게이머은 핵 사용 비율이 상당히 높은 데다가 비매너 유저도 많기 때문이다. 국내외에서 중국 게이머를 열받게 하기 위해 '타이완 넘버원' 이라고 외치는 것이 유행이었던 적도 있을 정도니 말이다.
거기에 미국 현지에서는 미VS중으로 돌아가는 국제 외교 정세에서, 미국 기업인 블리자드가 중국에게 고개를 숙였다는 것에 대한 반발도 큰 모양이다. 특히 최근 애플의 홍콩 시위대 앱 정지와 NBA의 홍콩 지지 발언이 있던 직후라 더욱 그런 듯하다.
4. 사건 이후?
한국 시간으로 오늘, 블리자드는 홈페이지에 공식 성명문을 게시했다. 주소는 다음과 같다.
성명문의 대부분은 블리자드의 징계처분이 합당하다는 입장을 변호하는 데 할애되었다. 그러면서 1년 정지 및 상금 몰수는 과한 처분이므로 상금 몰수는 없던 일로 하고 6개월 자격정지로 변경, 해설자들에 대해서도 해고가 아닌 6개월 자격 정지로 변경했다고 밝히고 있다. 게이머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돌리기 위한 보여주기식 처분으로 보인다.
하지만 분노한 게이머들의 여론은 딱히 잦아들 것 같지는 않다. 많은 하스스톤 유명 프로 및 해설자들이 블리츠청에 대한 지지를 보냈고, 일반 게이머들 역시 그렇다. 어제부터 진행중인 그랜드마스터즈 플레이오프 대회의 채팅창은 온통 FREE HONGKONG 으로 가득 찬 상태다.
블리자드와 그들의 게임을 즐기던 게이머들이 어떻게 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중국 시장을 잡은 블리자드가 더욱 성공할지, 아니면 분노한 게이머들의 기대처럼 망할지, 그것도 아니면 아무 일 없었던 듯이 유야무야 흘러 갈지. 하지만 확실한 건 많은 사람들에게 블리자드를 싫어할 이유가 하나 생겼다는 거다. 몇 주 후 블리자드의 축제이자 게임 페스티벌인 블리즈컨이 열릴 예정인데, 블리자드가 현지의 여론에 어떻게 대처할지 벌써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