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트.
7번 방의 첫 서브. 헤롱이의 날카로운 발등 서브가 상대 코트 구석에 꽂혔다. 그러나 5번 방 용접팀의 조직력은 단단했다. '철벽'이라 불리는 용접팀 수비수가 7번 방의 공격을 모조리 막아냈고, 1세트는 용접팀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다.
2세트.
역시 용접팀의 끈질긴 수비가 7번 방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때였다. 가장 맏형인 노숙자 출신의 고 씨가 나지막이 외쳤다.
"야, 소통! 소통해야지! 공 띄우고 어디로 갈 건지 말도 안 하고 때리면 어쩌자는 거야!"
고 씨의 일침에 7번 방은 다시 살아났다. 그들의 유일한 무기인 '소통과 연계'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엔지니어 길동 씨가 헤롱이에게 신호를 줬다.
"야, 뒤 쪽에 발목 불편해 보이는데? 저기로만 보내자."
헤롱이는 준결승 경기 때 길동 씨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래. 신호 주면 바로 때려야 한다. 머뭇거리면 안 된다.'
길동 씨가 자로 잰 듯한 토스를 올렸다. 헤롱이는 머뭇거림 없이 뒤쪽 상대의 빈 공간을 향해 공을 찍어 내렸다. 팽팽한 랠리 끝에 7번 방이 2점 차로 2세트를 따냈다.
마지막 3세트.
벼랑 끝 승부였다. 두 팀 모두 에너지가 바닥나고 숨도 헐떡였지만, 선수들 모두 눈빛만은 아직 살아있었다.
"왼쪽 끝! 길게!"
"퍼어엉!"
"오른쪽 앞! 짧게!"
"퍼어엉!"
경기 종료. 15대 13.
흙먼지 속에서 진행된 열띤 경기였다. 승리팀은 서로를 껴안았다. 승리한 기쁨의 함성을 질렀다. 열망했던 것을 이뤄냈다는 뿌듯함이 절규 같이 터져 나왔다. 사회 밖에서는 좀처럼 뭉치기 힘들었을 이들. 그들은 가슴 언저리에서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감동을 느꼈을 것이다. 창살 밖에서 경기를 지켜본 수용자들도 일제히 박수를 쳤다.
이 작은 족구공 하나가 참가자 모두에게 잊었던 일상의 소소한 기쁨을 줬다.
며칠 뒤,
전화부스에서 헤롱씨가 상기된 얼굴로 수화기를 들고 번호를 눌렀다.
"엄마."
"오 어쩐 일이야, 전화권 없다며?"
"하나 따냈어~ 족구 해서...."
"그런 것도 하니? 와~ 대단하다 우리 아들."
"내년 봄에 나 나가면 일본이나 한 번 놀러 갈까? 벚꽃이 그렇게 예쁘다던데~"
"그래, 그럴까?"
"그래, 일본 가보고 싶어 했잖아 엄마."
헤롱씨가 어머니와 함께한 3분의 통화는 평소의 속도와 같이 속절없이 지나가 버렸다. 먹먹했지만 그 3분이 헤롱이의 가슴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운동장은 이미 봄날의 벚꽃 향기가 미리 불어오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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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 씨는 수화기를 들었다 놓기를 수십 번 반복했다. 오랜 망설임 끝에 그는 떨리는 손으로 아내의 번호를 눌렀다. 신호음이 길게 이어지고, 마침내 수화기 너머에서 낯설면서도 그리운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완 씨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에 준비했던 말을 어떻게 내뱉어야 할지 몰랐다.
"어... 저기..."
잠시 정적이 흘렀다. 숨소리마저 조심스러워지는 침묵. 아내의 목소리는 차갑고 단호했다.
"무슨 일이에요. 더 이상 연락하지 않기로 했잖아요."
과거 조직 생활에 충성하느라 가족을 등한시하고 아내의 조직 생활 청산 제안을 완강히 거부했던 완 씨에게 아내는 어느 날 이혼을 신청했다. 신청 이후에도 완 씨는 아내를 타박하고 취하하라고 윽박만 질러댔다. 결국 완 씨는 바깥 식구들을 먼저 챙기다가 조직폭력 관련 혐의로 교도소에 들어오게 되었다. 이혼은 성립되었고 아이들과 아내 모두 이제 그의 곁에 없다.
완 씨는 말을 하려다 울음이 먼저 나와버렸다. 드라마를 보면서 한 번 터진 그의 눈물 수도꼭지는 이제 헐거워졌다.
"미안해... 내가 바보였어. 여기 있으면서... 가족이 소중하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어. 나 정말 많이 변했어. 자기도 보면 알 거야. 나 이제 정신 차렸으니까 한 번만 다시.... "
"당신이 가족에 준 상처는 쉽게 지워지지 않을 거 같아요. 그리고 이제 당신 못 믿어요."
수화기 너머로 깊은 침묵이 흘렀다. 매일 전화를 걸었다. 아내의 차가운 태도는 변함없었다. 하루에 주어지는 통화는 고작 3분. 어떤 날은 3분을 넘겨 완 씨의 설득이 중간에 끊겨 버리기도 했고, 어떤 날은 3분도 못 채우고 통화가 끝나기도 했다.
완 씨는 통화할 때마다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수화기 너머의 그녀의 말속에서 이혼으로 인한 그녀의 상처와 희미한 기대감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말 한마디, 단어 하나하나 조심스러웠다.
완 씨와 아내의 다섯 번째 통화날.
어느새 아내의 목소리에는 냉기보다는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이 섞여 있었다.
"당신을 다시 믿으려면... 시간이 아주 많이 걸릴 거예요. 그리고 지금 당장 저희 가족으로 돌아올 수는 없어요. 하지만... 당신이 진심으로 변한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때 가서 생각해 볼게요. 아이들 사진은 가끔 보내줄게요."
그 말은 완 씨에게 새로운 삶의 시작을 알리는 판결선고와 같았다. 아직 그에게는 희망이 남아있었다.
"고마워... 정말 고마워. 내가... 내가 꼭 약속 지킬게. 당신이랑 아이들이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사람,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아빠가 될게."
운동이 끝나고 저녁 7시가 되었다.
완 씨는 그날 드라마를 보지 않았다. 그의 표정은 마치 이제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 분명히 알게 된 것 같은, 희망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족구 하며 즐거워하는 수용자.
드라마 보면서 우는 수용자.
문장만 읽어본다면 조금 마음에 불편함이 있을 수도 있겠다.
'세상 팔자 좋게 족구하고 있네.'
'드라마도 보고 팔자 좋네.'
자 다시.
조금만 생각의 각도를 틀어보자.
그들은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 많다.
가족 간의 기쁨, 건전한 공동체 속에서의 기쁨을 누려보지 못해서 교도소에 들어왔을 수도 있다.
"이런 기분은 진짜 처음입니다."
이제껏 밖에서는 마약에 취해 살았던 헤롱이의 시상식 소감과 어둠 속에서 살아왔던 완씨의 다섯 번째 통화에서 똑같은 말이 들려왔다.
그간 우리가 느껴왔던 일상의 행복과 소소한 기쁨이 그들에게는 이제 겨우 처음 느껴본 감정이다.
이들도 기쁨을 누려봐야 상대방이 느끼는 일상의 기쁨도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될 기회가 찾아오지 않을까?
그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그 피해자로부터 소소하지만 소중한 기쁨을 앗아갔다. 자기 행동이 벌 받음이 마땅하다는 걸 알아야 한다.
그러니까
그들도 사람들과의 건강한 기쁨을 누려봐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