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낙이 있는가?
그 덕분에 오늘도 살아갈 힘이 나는 '기쁨', '희망'말이다.
교도소에서 수용 생활을 하는 수용자도 본인만의 '낙'이자 '기쁨'을 찾는다.
어떤 이는 창살이 드리워진 감방 안 티비에서 희망을 찾기도 하고.
어떤 이는 따사로운 감방 밖 운동장에서 기쁨을 찾기도 한다.
#1
2동 7번 방 수용자들이 운동을 끝내고 바지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며 방으로 들어온다.
"와 우리 대박인데?"
"그러게, 우리가 결승에 가노?"
7방은 전직 족구 프로 선수가 있는 탄탄한 팀을 꺾고 수용자 족구 결승에 올라갔다. 이변 중의 이변이었다. 좁은 방에 다시 모인 7번 방 사람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결승전 전략을 짜기 시작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전직 엔지니어였던 다부진 체형의 길동 씨가 입을 열었다.
"헤롱아, 내가 신호 주면 바로 때려야 돼. 머뭇거리면 안 된다니까?"
헤롱이는 결의를 다진 듯 말했다.
"알겠어. 닥공(닥치고 공격) 하자고."
마약수, 엔지니어, 일용직 노동자와 역 주변을 배회하던 노숙자로 구성된 7번 방 족구팀은 사회에서 운동을 제대로 해본 사람도 없는데 결승까지 갔다. 그들은 전화 사용권과 간식 세트라는 소박한 희망을 위해 비로소 힘을 합쳤다.
준결승 경기를 지켜보지 않았던 교도관이 7번 방을 지나가다 대뜸 물었다.
"이야~ 어떻게 결승까지 갔어요? "
길동 씨가 로션을 얼굴에 대충 끼얹고 흥분하며 말했다.
"매일 운동시간 마다 방 사람들이랑 소통을 얼마나 했는데요~ 대단하죠?
햇빛 자리에 앉아 있던 노숙자 출신 고 씨도 고개를 돌려 자신감 있게 말했다.
"주임님, 다른 팀은 지 잘난 맛에 공을 차지. 우리는 매일 운동 시간마다 이야기 합니다. 공이 어디로 갈 건지, 누가 받을 건지, 안 되면 처음부터 다시 이야기하고 그랬습니다."
7번 방에서 8번 방 쪽으로 발을 옮기며 교도관이 씩 웃었다.
"그래요? 좋은 소식 기대할게요."
대망의 결승전 당일.
7번 방에 맞설 강력한 우승 후보로 옆동 5방이 올라왔다. 동이 달라 운동 시간에도 마주쳐본 적 없는 사람들이었다. 5방 사람들은 용접 공장으로 출역하는 이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사회 복귀에 대한 의지는 크게 없지만 족구 네트 위에서 뛰어다닌 시간만 해도 몇 년은 된 무기징역수, 그리고 교도소 짬밥 15년 이상의 수용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운동장은 팽팽한 긴장감에 휩싸였고, 감방 안에 있는 수용자들도 창살 안에서 경기를 지켜봤다.
"경기 시작!"
그들의 물러날 수 없는 3판 2선 승제가 시작되었다.
-계속-
#2.
"7시인데 틀어도 되지요?"
평소에는 창문 가에 서서 먼 산만 바라보던 완 씨가 동료 수용자들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밥상 중앙에 앉아 있던 수용자가 말없이 리모컨을 완 씨에게 건네준다. 이 방에서 저녁 7시부터 8시 반까지는 완 씨의 시간이다.
"고맙습니다."
완 씨가 리모컨을 받자 입꼬리가 씰룩거린다. 유독 작아진 리모컨이 두꺼운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눌려진다. OST가 흘러나오는 채널에서 화면이 멈췄다. 5초도 안 돼 드라마가 시작되는 걸 보니 타이밍의 귀재다.
완 씨가 칼 같이 챙겨보는 드라마는 부부간의 사랑을 다룬 이야기다. 방황하던 남편이 아내의 흔들림 없는 믿음과 끝없는 내조로 마침내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
중앙에 있는 밥상에 우람한 용 문신이 자리한다. 두 주먹으로 턱을 괴고 엉덩이를 들썩여 제대로 자리 잡은 완 씨. 눈동자를 제외한 그의 모든 몸은 부동자세가 된다. 동료 수용자들은 이제 하루 이틀 일이 아닌 것처럼 몇 명은 같이 앉아 시청하고, 몇 명은 조용한 곳에서 조용히 책을 펼친다.
(티비 속 대사)
"그냥 헤어지면 되잖아!"
"당신은 나한테 소중한 사람이라구요."
등에 있던 용이 씰룩거린다. 완씨가 탄식한다.
"아...."
같이 시청하던 다른 수용자는 하루 이틀 일이 아닌 것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짧은 말과 함께 휴지 한 조각을 뜯어서 건넨다.
"여기."
휴지로 팽하며 코를 풀고 눈물을 닦는 완 씨. 매서운 용의 표정이 어쩌면 이렇게 완씨와 안 어울릴까? 산만한 덩치에 가려진 충만한 감성, 강팍한 외피와 그렇지 못한 여린 마음의 언발란스가 교도관을 웃음 짓게 한다.
완 씨는 누군가를 칼로 찌르는 데 주저함이 없을만큼 잔인했던 조직폭력배였다.그런 그의 메마른 눈에서 떨어질 것 같지 않던 굵은 눈물이 드라마를 보며 툭 하고 떨어졌다. 그가 그동안 사람들에게 쏟아냈던 것은 폭력과 분노뿐이었는데 말이다.
"하다 하다...."
완 씨는 눈물을 닦으며 멋쩍었는지 옆 사람들이 들릴 만큼 혼잣말을 하고 씩 웃었다.
드라마 속 가족이 다시 손을 잡고 하나가 되는 장면이 그의 얼어붙었던 심장을 녹이기 시작했다.
취침시간. 완 씨는 달빛이 비치는 감방에 누워 천장을 보며 한참을 멍을 때리다가 결단을 내렸다.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야겠다고.
다음 날.
운동시간이 되자 완 씨는 평소와는 달리 기다렸다는 듯 운동장 출발 맨 앞 열에 줄을 섰다.
"운동 시작!"
운동장에 들어가자마자 완 씨는 바로 전화부스로 향했다. 항상 그와 같이 몸 풀던 수용자들은 몸도 풀지 않고 어딘가로 걸어가는 그를 지켜봤다. 완 씨는 비장하면서도 뭔가를 끊임없이 생각하는 표정으로 뚜벅뚜벅 전화부스에 다다랐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