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로 맨땅에 헤딩 -36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본격적인 도시탐방을 위해 중심가로 향했다. 산티아고 북쪽에 흐르는 마푸초 강(Rio Mapuches)을 건너면 바로 중심가로 연결된다. 마푸초 강은 작은 개천 수준에 불과하지만, 비가 많이 오는 5~6월경엔 종종 범람한다.
산티아고의 핵심 관광은 아르마스 광장(Plaza de Armas)에서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가만 보니 남미의 도시마다 ‘아르마스’라는 이름을 가진 광장은 대부분 있었다. 게다가 그 옆엔 항상 대성당이나 카테드랄(Cathédral, 대주교가 있는 성당)이 있다. 생각해보니 나라와 도시만 달라졌을 뿐, 마을 중심엔 공식처럼 아르마스 광장과 성당이 꼭 붙어 있었다. 이는 스페인이 중남미 대륙을 처음 점령했을 때 가장 먼저 마을 중심에 ‘아르마스’라는 이름의 광장과 대성당을 지었기 때문. 당시 그들에게 가장 급했던 것이 원주민들을 빠르게 교화시키는 일이었으리라.
오후가 되어 해가 한풀 꺾이자 아르마스 광장은 많은 이들로 북적였다. 거리의 연주자와 다양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행위예술가의 모습도 보인다.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수많은 관광객은 환호성을 치면서 셔터를 눌러댄다. 근처엔 발디비아(Valdivia)의 기마 상이 우뚝 서 있고 중앙의 커다란 분수에는 물장난을 치는 아이들로 북새통이다. 아르마스 광장 주위로는 칠레 정부 부처가 밀집해 있었고, 그 뒤로 고급 쇼핑몰과 레스토랑 등이 쭉 이어졌다. 쇼핑 거리마다 가득 찬 관광객들의 모습은 마치 우리나라의 명동을 보는 듯했다.
아르마스 광장을 지나 남쪽으로 이동하면 헌법 광장이 나오고 곧 모네다 궁전(Palacio de la Moneda)이 보인다. 오전에 숙소를 찾느라 지나치면서 얼핏 본 이곳은 현재 대통령의 거처로 사용되고 있다. 모네다(Moneda)는 스페인어로 ‘돈’이라는 뜻. 왜 돈의 궁전인가 했더니 예전에는 화폐를 생산하는 조폐 국이었다고 한다. 특히 1973년 피노체트의 쿠데타 당시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이 화염 속에서 끝까지 저항해 장렬히 전사한 장소로 유명하다. 현재 큼지막한 그의 동상이 궁전 한쪽에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 궁인 이곳에서마저 떠돌이 개들의 모습은 여전했다. 삼엄한 눈빛으로 경계를 서는 보초의 다리를 그늘 삼아 두 마리가 취침 중이었고, 궁전 앞 잔디밭에도 많은 개가 뛰놀고 있었다. 대형 칠레 국기가 휘날리는 궁전 앞 도로에서 눈길을 끄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신호를 기다리며 정차 중인 자동차 앞에 큼지막한 떠돌이 개 여섯 마리가 차를 가로막고 짖는 것이 아닌가? 바로 조수석에 앉아있던 꼬마가 먹는 과자를 보고 짖었던 것.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개들 때문에 자칫하면 대형 교통사고도 일어날 수 있어 보였다. 칠레에서 떠돌이 개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라고 지난날 들었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이거 정말 ‘개판’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