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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나딘 Jul 22. 2020

[공공미술] 방호 기지, 예술공간으로 거듭나다.

홍제유연

‘물과 사람의 인연(緣)이 흘러(流) 예술로 치유하고 화합한다’라는 뜻을 담고 있는 ‘홍제유연’은 서울시 서대문구의 유진 상가 지하에 위치한 예술 공간입니다. 시민과 함께 호흡하는 예술 공간을 꿈꾸는 이곳은 지난 50년간 버려져 있던 곳이었습니다. 기존 공간의 재활용을 통해 새로운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의도한 이번 프로젝트는 화력발전소를 리모델링한 런던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Tate Modern Collection)이나 담배공장에서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으로의 변신과 같이 매우 의미 있는 시도로 보입니다.

유진 상가

홍제유연은 서울시 공공 프로젝트 ‘서울은 미술관’의 일환으로 서울의 각 동네마다 다양한 작품을 만들어 시민과 함께 예술을 즐길 수 있도록 도시를 만드는 데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홍제유연과 연결된 홍제천 산책로 역시 이 프로젝트의 시행 때문에 산책로를 걷다 보면 내부순환로 기둥 아래 한국회화부터 서양의 유명한 명화들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홍제천 산책로

그러나 저는 산책하면서 설명 글을 읽는 시민을 본 기억이 없으며, 어떠한 기준으로 해당 작품을 선정했는지, 불편한 감상 시점 및 빛바랜 이미지의 보수 필요성 등 다양한 측면에서 비판적인 입장입니다.

공공미술이나 1% 법에 그다지 긍정적인 편은 아닙니다만, 버려진 공간의 리모델링을 통해 불필요한 자원 낭비나 자연의 훼손을 최소화 한 점과 기존 산책로와의 연결성 등이 상당히 관심을 끌었습니다.

참고로 1% 법에 대해 궁금하시다면 미술랭의 버건디가 작성한 「청계천과 클래스 올댄버그의 <스프링>(2006)」을 참고해 주세요.

앞에서 밝혔듯이 이 공간은 폐허로 통행이 금지된 곳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지난 50년 동안 덩그러니 버려진 공간으로 전락하게 되었을까요? 비록 오래된 건물이라 상당히 낡아 보이기는 합니다만 우리나라 최초의 주상복합으로 70년대에는 타워팰리스 부럽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그 지하는 폐허였다는 점이 이해되지 않아 찾아보았습니다.

리모델링 전의 유진상가 지하

유진 상가는 지난 1970년에 건립되었다고 합니다. 홍제천을 복개한 인공 대지 위에 지어진 이 건물은 북한의 남침에 대비하여 군사 방어를 목적으로 건립되었으며 지하 공간은 대전차 방호 기지였다고 합니다. 한국전쟁이 휴전으로 접어든지 20년도 지나지 않았으니 타당한 준비였을 것입니다. 때문에 한국전쟁 70주년인 올해 ‘화합과 이음’의 메시지를 담아 홍제유연이 시민들에게 공개된 것입니다. ‘화합’ 그리고 ‘이음’의 상징은 ‘두두룩터’라고 불리는 징검다리로도 표현되었습니다. 건축가 염상훈과 팀코워크가 제작한 두두룩터는 기존의 홍제천 산책로와 홍제유연을 잇는 역할을 합니다. 즉, 지하와 바깥세상의 연결고리로써 홍제유연의 목적성을 내포함과 동시에 시민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활용 가치적 측면에서도 뛰어난 듯합니다.

홍제유연 두두룩터

홍제유연의 내부에는 이 같은 뜻을 담은 다양한 작품들이 설치되었습니다. 또한 개장 기념 공연이 기획되었으나 코로나 시국이기에 영상으로만 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홍제유연과 공간 내부의 예술이 어떻게 공명하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지하 공간에는 현대미술작가인 윤형민과 진기종, 김민선과 최문선이 팀을 이룬 뮌(Mioon), 건축가 염상훈, 사운드 아티스트 홍초선, 아티스트 그룹 Co-Work가 참여했습니다. 또한 1000명의 시민의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웠던 순간을 빛에 비유한 메시지들을 모아 제작한 <홍제 마니차>가 입구에 있습니다.

홍제유연 작품 배치도와 <홍제 마니차>

아날로그 인터랙티브 작품인 마니차를 굴리며 들어서면 팀코워크의 작품 <숨길>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팀은 <온기>와 <숨길>을 제작했는데요. <온기>는 42개의 기둥을 빛으로 연결한 라이트 아트입니다. 직접 물길 한가운데를 걸으면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사람의 체온이 전해지면 빛의 색이 변하는 작품입니다. 인터랙티브 작품인 <온기>는 제목처럼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전해지는 사람의 온기로 인해서 공간 안에서 예술과 참여자가 함께 숨 쉬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이런 작품이라면 제가 공공미술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씻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팀코워크, <온기>와 <숨길>

<흐르는 빛 빛의 서사>의 작가 뮌은 홍제천 주변의 다양한 문화적 사건과 건물, 인물을 수집해서 만든 이미지들을 움직이는 조명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홍제천 주변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듣고 문화적 사건이나 건물들, 인물들, 소재들을 수집해서 그 이미지들을 천장, 벽, 바닥에 새기고 움직이는 라이트 조명으로 천천히 바닥과 벽을 비추도록 설치했습니다.

<온기>가 설치된 기둥에 비추어진 뮌의 <흐르는 빛, 빛의 서사>

이 작품은 빅데이터를 오브제 삼아 작품을 제작하던 뮌의 작품 중 2014년 코리아나미술관에서 선보인 <오디토리움>, <세트>와 맥이 닿아 있는 듯 보입니다. <오디토리움>은 5개의 반투명 책장을 원형으로 세우고 반투명 막을 통해 비추어진 그림자가 벽면에 드리워지는 극장 형태의 작품입니다. 각각의 오브제들은 개인의 기억에 역사, 사회의 기억 등을 담은 사물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기억은 추억을 소추하고 역사를 담고 있지만 일부 기억은 흩어지기도, 또 왜곡되기도 합니다. 때로는 사회 관점의 변화에 따라 진정성 및 진실성이 바뀌기도 하지요. 홍제천의 역사와 근처 주민들의 기억을 담은 이미지들을 담은 빛의 움직임은 폐허로 전락했던 공간에 빛을 들이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가라앉았던 기억들을 불러 주민들 개개인에게 다른 감동으로 다가가게 될 것입니다. 또한 과거 전쟁과 반공의 장소는 북한과의 소통을 꾀하는 작금의 시기에는 화합과 이어짐을 바라는 변화된 공간으로 재탄생되었음을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뮌, <오디토리움>, 2014.

진기종 작가의 <미장센-홍제연가>은 3D 홀로그램 작품으로 홍제천의 생태를 다룬 영상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홍제천이 흐르는 곳에 대지를 올려 만든 건물과 그로 인해 생성된 지하 세계의 생태계를 조명한 작품입니다. 즉, 인간의 인위적 행동에 따른 자연의 변화를 가시적으로 재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환경조각과를 졸업한 작가는 TV가 제공하는 정보를 통해 세상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방송국을 통해 편집되고 구성되는 과정이 일종의 조작이라 말하는 작가는 작품을 통해 가상과 실재하는 현실 사이에 대해 늘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처음 유진 상가 지하의 어둠을 접하는 순간 이곳에는 어떤 생물도 없을 것 같았으나, 여러 생물을 발견한 후 그것들을 담아냈다고 합니다. 국내에서 야외에 설치된 것 중 가장 큰 중앙의 스크린에는 총 60여 개의 꽃, 새, 거미 등의 이미지가 3D 홀로그램으로 등장합니다. 진짜와 같은 이미지를 환영으로 보여주면서 그곳에 살고 있는 생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진기종 작가 역시 어둠 속 빛을 통해 생명을 재현합니다.

진기종, <미장센-홍제연가>, 2020, 3D홀로그램.

윤형민, <Moon Sun, Sun Moon>, <Um...>은 땅 속에 묻혀있던 공간이 열리기 시작하면서 채워지는 빛과 소리 의미를 한자 明(밝을 명), 音(소리 음) 조형물로 만들어 흔들리는 수면 위에 투영하는 설치 작품입니다. 독특하게도 한자를 거꾸로 제작하여 수면 위에 비친 한자가 정(正)으로 보이도록 의도했습니다. 특히, 밝은 명은 음의 달과 양의 해가 만나서 ‘밝다’라는 뜻을 이루게 되는데요. 작가는 유진 상가의 지하 공간이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열리면서 음지였던 이곳이 빛을 만나게 된 점에 주목했다고 합니다. 앞으로 새로운 빛을 전환되기를 기약하며 이 같은 작품을 제작했다고 하네요.


독일에서 오디오 엔지니어링을 공부하고 사운드 디렉터 겸 작곡가로 활동 중인 홍초선은 12시간 동안의 시간 변화에 어울리는 소리를 채집해 시민들에게 들려주는 사운드아트는 제작했습니다. 그는 오디오엔지니어를 공부한 계기로 소리의 성질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작가가 말하는 소리의 성질이란 소리가 어떻게 굴절되고, 또 어떤 밸러스로 하모니를 이루게 되는지에 따라 인간의 감각에 변화를 일으키게 되는지를 말합니다. 그는 전국에서 수집한 자연의 소리를 각각의 작품에 맞게 설계했다고 합니다. 소리 수집에도 오랜 시간이 걸렸겠지만 다듬는 과정 역시 상상하기 힘들 정도네요. 작가는 여러 소리 중에서도 상호작용하는 소리에 집중한다고 합니다. 바람이 일으키는 풀의 소리를 비롯한 자연의 소리야말로 순수한 하모니이면서 동시에 도시 속 인간의 날카로운 감각을 순간 부드럽게 빚어주는 사운드겠지요.

한국전쟁의 후유증, 전쟁에 대한 준비, 자연에 대한 인간의 침범과 50년간의 폐허로 전락했던 유진 상가의 지하 공간이 이렇게 빛과 온기, 자연과 인간의 화합, 예술과 공간의 호흡으로 이어진 곳으로 새로 태어났습니다. 모든 예술 프로젝트가 성공적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번 서울의 프로젝트는 현재까지는 성공적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예술가들과 시민들과의 호흡, 자연을 침범하지 않는 상태에서 우리가 자연과 함께 숨 쉬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면서 동시에 예술이 공간에서 함께 공명할 수 있다는 점을 잘 전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유지가 잘 되기를, 또한 많은 발길이 이어지기를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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