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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나딘 Aug 19. 2020

국현 과천관 <판화, 판화, 판화>展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있었던 판화전시에 다녀왔습니다. 지난 8월 16일 전시는 막을 내렸는데요. 코로나 시국에 예약제로 운영되었던 전시에 기간내에 다녀오시지 못한 분들을 위해 전시에 대해 알려드리고, 익숙한 듯 여겨지면서도 회화 보다는 멀게 느껴지는 장르인 판화에 대해 설명해드리고자 합니다.      

<판화, 판화, 판화>는 국내 작가 총 60여명의 작품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우리나라 현대판화의  1세대로 볼 수 있는 이항성의 작품부터 한국현대회화 작가로 익숙한 윤명로, 민중미술로 알려진 오유, 그리고 동시대 작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세대가 참여했습니다.   

오윤, <춤>, 1985, 목판화.

전시는 크게 ‘책방’, ‘거리’, ‘작업실’, ‘플랫폼’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책방’과 ‘거리’는 판화가 가지고 있는 특징 중에 복수성에 근거하여 작품을 선별했다고 합니다. 이에 초기 판화가 지니고 있던 인쇄매체의 성격을 반영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또한 ‘거리’에는 민중미술과 같이 대중들에게 배포하여 알리고자 하는 목적을 지니고 제작된 작품이나 그것과 일맥상통하는 작품을 볼 수 있습니다. 오윤의 작품 역시 ‘거리’에서 볼 수 있습니다. ‘책방’과 ‘거리’에는 다수의 작품을 제작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기에 나무와 고무로 제작된 판으로 찍은 작품이 대부분입니다. 목판화는 나무 특유의 결과 칼의 날카로운 성질로 인해 강렬하고 날렵한 선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고무판화는 빠르게 제작할 수 있기에 광중 민주화운동 당시 많이 제작되었다고 합니다.      

좌측은 전시 '거리'섹션 일부/우측은 오윤의 <도깨비>(1985)

판화의 특징은 간접성, 복수성, 고유성으로 구분됩니다. 간접성이란 종이나 회화의 바탕이 될 재료에 직접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판에 새겨 찍어냈기 때문에 지니게 되는 특징을 말합니다. 또한 판의 재료, 혹은 다색 판화일 경우 색상을 찍어내는 순서 등 다양한 방법에 의해 다르게 표현되는 판화만의 독특한 성격을 일컬어 고유성이라 합니다. 판화에서 가장 문제적 특징은 제가 보기에는 복수성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 제목이 판화를 세 번 반복한 것 역시 판화의 복수성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나의 판으로 여러 장의 작품을 찍어낼 수 있다는 것 때문에 ‘복수’의 특징을 안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쇄매체로 인식되거나 혹은 저렴한 미술이라는 낙인이 찍히기도 했습니다. 

이 점에서 우리가 조심스럽게 구분해야할 사항이 있습니다. 바로 ‘복제’와 ‘복수’의 의미입니다. 복사기에서 카피할 매수를 누른 후 똑 같은 것을 여러 장 뽑아내는 것이 바로 복제입니다. 복수는 말 그래도 여러 장을 의미합니다. 한 장이 아니라고 해서 찍혀진 작품 모두가 똑같은 카피라고 할 수 없다는 점이 바로 판화가 지닌 복수성의 함정이지요.     

이항성, <망무념>, 1958. / <망무념>  좌측 상단의 상세 이미지.

판화 작품의 매력이 여기에 있기도 합니다. 이미지 자체가 지닌 내용이나 표현이 주는 감각도 중요합니다만, 중심부를 벗어나 종이의 가장가리에 부분에는 판을 찍으면서 남겨진 흔적이 있습니다. 특히, 다색판화의 경우에는 색을 매번 다르게 바르고 작가가 정한 순서대로 찍어내면서 그 흔적이 담겨있기도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오목하게 눌려있기도 하는 등 결과적인 작품 뿐 아니라 작가가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의 흔적이 담겨 있기 때문에 제게는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이 부분이 복수성이 복제성과 구분되는 지점이기도 하지요.    

 

다색판화의 경우 색에 따라 다른 판을 찍은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작업실’은 판화를 제작할 때 필수적인 요소인 기술적인 부분을 담고 있습니다. 동판이나 석판화를 포함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제작되는 판화는 기술과 화학적인 부분에 대한 작가의 깊은 숙지를 필요로 합니다. 에칭의 경우에는 사실주의 회화 보다 더 사실적인 묘사를 동판에 가느다란 바늘로 그려서 제작합니다. 때문에 섬세함과 더불어 작가의 작업실에서의 여러 기술적인 부분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작업입니다. 

이영애, <내 날개 아래 바람 1>, 1995, 애쿼틴트.

‘플랫폼’은 판화가 단지 판으로 찍어낸 그림에 머무르지 않고 그 방식을 활용하여 다양한 범주의 작품에 활용되는 방식을 제시합니다. 판화가 미술 분야에서 일종의 플랫폼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전시로 보여줍니다.      

어린 시절 고무에 조각칼로 그림을 새기다 여러 번 칼에 베인 기억이 납니다. 또한 판화는 찍어내는 것이며 인쇄할 때 활용된 기법이라는 미술시간의 수업 내용이 저에게도 선입견으로 작용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본 전시를 통해서 판화가 다양한 미술 장르에 이미 확장되어 있음을 확인하고, 판화에 대한 재인식의 기회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저 역시 판화에 대한 연구를 통해 좀 더 대중들에게 알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래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제작한 전시영상입니다. 온라인으로나마 감상하실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BSmqCp_Aj0&feature=emb_lo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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