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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urgundy Aug 21. 2020

[애니메이션] <플란다스의 개>(1975)와 루벤스


<플란다스의 개 The Dog of Flanders>(1975)는 1872년 영국의 소설가 위다(Ouida)가 쓴 아동 문학을 원작으로 한 일본의 애니메이션이죠!  이 애니메이션은 19세기 벨기에의 플란데런(Vlaanderen, 영어로 Flanders) 지방을 배경으로, 어린 고아 소년 네로(Nello)와 그의 강아지 파트라슈(Patrasche)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이어져 나갑니다. 우유 배달로 삶을 겨우 이어가는 가난한 소년 네로는 동네에 있는 대성당에서 루벤스의 그림을 보고 감명을 받아, 자신도 그림을 그립니다. 네로는 좋은 재료를 구입할 수 없어 버려진 포스터 뒷면에 흑백으로 그림을 그리죠. 유일한 혈육인 할아버지마저 돌아가시고 혼자 남은 네로는 지독한 가난과 매정한 이웃들 때문에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합니다. 어렸을 때 이 작품을 보고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나는데, 나이가 들어서 다시 보아도 참 씁쓸한 작품이 아닐 수 없네요. 강아지와 소년의 우정 이외에도 빈부 격차, 어린이의 노동, 가난에 대한 편견 등 여러 층위의 사회적 문제도 다루고 있는 듯합니다. 이 애니메이션은 1975년 방영된 52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애니메이션 시리즈 외에도, 1997년 극장판 영화 버전으로도 제작되었습니다.   


오늘 살펴볼 작품은, 네로가 그토록 보고 싶어했던 대성당에 걸려있는 루벤스(Peter Paul Rubens)의 작품입니다. 성당 중앙에 있는 작품은 모두에게 항시 공개되어 있었지만, 두점의 작품은 돈을 내야 볼 수 있어 보지 못했다가, 크리스마스날 갈 곳이 없어 찾은 그곳에서 네로와 파트라슈가 마지막으로 보게됩니다. 실제로 벨기에의 앤트워프(antwerp) 대성당에 루벤스의 작품이 걸려있어 벨기에를 방문하신다면 직접 가서 보실 수 있다고 해요. 그 중에서도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 Descent from the Cross>(1612-4)와 <성모 승천 Assumption of the Virgin Mary>(1626)을 살펴보도록 할게요.  


루벤스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 Descent from the Cross> Oil on Panel (triptych) 421x311cm 1612-4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에는 총 9명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두 사다리 끝에 있는 사람들은 예수의 제자로, 수의를 사용해 예수의 몸을 내리고 있어요. 입으로 세마포를 물고, 한손을 예수의 팔을 쥐고 있는 오른쪽 제자, 왼쪽 제자는 한발로 사다리를 밟고 팔을 뻗고 있죠. 그 아래에는 아리마대 요셉, 붉은 옷을 입은 요한은 예수의 발을 바라보고 있고요, 사다리 중간에 올라선 사람은 니고데모예요. 무릎을 꿇은 채 예수의 다리를 붙든 여인은 막달라 마리아, 그 뒤에 비통한 얼굴로 서있는 여인이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그 앞에는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가 그려져 있습니다. 고문의 광경에 기뻐하던 군중은 모두 골고다를 떠났으며, 우측 바닥에는 가시간과 응고된 피가 구리 대야에 담겨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미끄러지듯 내려오는 예수부터 세 명의 여인의 팔까지 사선으로 이어지는 화면 구도는 매우 역동적입니다. 양쪽 날개 부분의 그림을 살펴보면, 왼쪽 패널에는 예수를 잉태한 성모의 모습이 있고, 오른쪽에는 아기 예수를 품에 안은 대제사장의 모습이 보입니다. 세 장면 모두 예수의 육체가 뱃속에 들어있거나 떠받들어져 있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루벤스 <성모 승천 Assumption of the Virgin Mary> Oil on Panel 490x325cm 1626


<성모승천>은 활짝 열린 석관 뚜껑 위로 황금으로 수놓아진 옷을 입은 성모가 승천하고 있습니다. 두 명의 천사가 장미화관을 씌우려 하고 있고요. 분홍, 푸른색, 황색 등 밝은 의상에서 지상의 풍족함이 느껴지고, 마치 축제처럼 활기찬 분위기가 표현 되었습니다. 또한 하늘로 힘차게 오르는 성모는 생동감있게 그려져 있어요. 무덤 주위에 모인 12사도들은 각기 다른 표정으로 무덤을 바라보는데요, 맨 왼쪽의 사도 요한은 하늘을 바라보며 배웅하는 손길을 하고 있고요. 그 옆에 두 제자는 무덤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승천하신 게 맞는지 확인하는 모습입니다. 화려한 옷을 입은 여인들은 예수의 여 제자로, 남성 위주의 편협한 제자관을 깨는 시도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행복한 분위기를 가득 담은 이 작품은 주제를 명확하게 해석한 작품으로 평가됩니다. 루벤스는 다채로운 화면을 구성하는 솜씨와 그것을 화려하게 돋보이게 마무리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 왕족들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실제로 당시 그에게 그림 주문이 쇄도했다고 하는데요, 플랑드르의 재능있는 화가들을의 그의 밑에서 일하며 배우는 것을 기쁘게 여겨, 실제로 루벤스는 작은 종이에 스케치만 하고, 그의 제자와 조수들이 큰 화폭에 옮겼다고 합니다. 밑그림과 채색이 끝나가면 루벤스가 와서 마무리만 했는데, 얼굴이나 옷자락을 부드럽게 만져 생기를 띠게 만들었다고 해요. 


루벤스는 상류 가정 출신으로, 정규 미술 교육을 받고, 궁정 화가로 일하기도 했고요. 바로크 시대 플랑드르의 최고의 화가로서 부와 명예를 가지고 활발한 활동을 했습니다. 또한 많은 제자들과 함께 화려하고 웅장한 작품을 많이 남겼어요. 루벤스의 작품은 어쩌면 가난과 추위로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던 네로가 절대 닿을 수 없는 어떤 세계를 은유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루벤스의 작품에 대해 생각해보시면서 <플란다스의 개>를 다시 한번 감상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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