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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나딘 Dec 29. 2020

레이디 버그에 또???

Jeff Koons's  vs  Frightningale's

프랑스, 일본, 한국의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공동으로 작업한 애니메이션 《미라큘러스 레이디 버그》는 에피소드마다 새로운 악당이 등장합니다. 고정 등장인물들의 심리 변화에 따라 검은 나비의 지배를 받으며 악한 감정을 분출하는 방식이 매번 다르게 표현됩니다. 그 방법에 따라 악당의 이름이 정해지는데요. 아난시, 세이렌 등 세계 각국의 설화나 고대 신화 속 인물의 이름이 거론됩니다. 

이번에 제가 《미라큘러스》에서 다룰 이야기는 한국에서 방영된 시즌2의 14화입니다. 가수 클라라 나이팅게일은 본인의 뮤직비디오 제작 스케줄에 문제가 발생하면서 악의 감정이 싹트고 검은 나비의 지배를 받아 프라이트닝게일(frightningale)로 변하게 됩니다. 그녀의 저주를 피하기 위해서는 모든 인물들이 라임에 맞춰 말을 해야 합니다. 또, 계속해서 춤을 추지 않는다면 반짝이는 분홍 조각처럼 그 자리에 얼어붙게 됩니다.    

   

영상 속에서 프라이트닝게일의 저주를 받아 변해버린 형상은 그 색상과 모양으로 인해 〈Ballon Dog>, <Seated Ballerina>를 떠오르게 합니다. 이는 모두 대중문화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상업적인 이미지들로 우리에게 친숙하게 다가옵니다. 반짝이는 재질에 다소 유아적인 색채의 작품들은 바로 제프 쿤스(Jeff Koons)의 작품입니다. 1986년 제작한 그의 토끼 작품은 991만 달러에 경매되었으며, 생존 작가 작품 경매 기록을 깨뜨린 바 있습니다.      

생존 작가 중 가장 유명한 예술가로 평가받는 제프 쿤스는 장난감 토끼 인형, 플라스틱 꽃, 보석이나 하트, 풍선으로 만든 강아지와 같은 대상을 스테인리스로 제작합니다. 그는 팝 아트에서 사용하는 오브제를 패러디하거나 자신의 작품마저도 복제하여 소비문화의 전형을 반영합니다. 동시에 고급 예술에서 취급하지 않는 대중적, 상업적, 키치적인 대상을 비율의 변화를 주지 않은 상태로 거대하게 부풀려 사회의 현상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을 표명합니다.         

작가가 우리에게 친숙한 대상을 작품으로 제작하는 데에는 팝아트, 네오 팝아트, 레디메이드 등과 같은 미술사적인 측면의 의미도 물로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대중들과의 소통을 위한 매개체를 목표로 했기 때문입니다. 제프 쿤스의 작품은 작가의 뜻이 반영되어 공공장소에 다수의 작품이 설치되었습니다. 키치 예술은 전통성이나 우아하고 고상한 고급 미술이 지닌 아름다움을 부정하고 그것에 저항하는 미술입니다. 쿤스의 작품 역시 이 같은 성향을 반영하고 있으면서도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새기거나 타인과 관계를 맺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삶의 공유하며 일상을 구축하는 ‘소통’ 자체에도 목적이 있습니다. 반짝이는 재질의 표면은 그만의 독창적인 세공법에 의해 마치 거울 같은 느낌을 선사합니다. 주변과 관람객을 모두 반사하며 작품에 담는 효과는 그의 이 같은 목적을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강한 원색 계열의 색채는 유아기적인 단순하고 강한 효과를 반영하면서 놀이동산이나 생일과 같은 행복한 기억을 떠오르게 하는 효과를 불러옵니다. 또한 주변 환경을 압도하면서 관람자들에게 각인되며, 세련되기보다는 다소 저급하다고 느껴지는 화려함을 통해 오히려 색 그 자체로 각인됩니다. 바나나는 노란색, 심장은 붉은색과 같은 상징적인 색채도 사용하여 별다른 해석이나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 없이 작가의 메시지는 직관적으로 전달됩니다.     

제프 쿤스가 1986년 제작한 <Rabbit>, 104.14 x 48.26 x 30.48 cm

그런데 반짝이는 거대 장난감 같은 작품들은 그 특징으로 인해 또 다른 해석을 낳기도 합니다. 우선은 작가가 차용한 이미지에 대한 해석부터 차이를 보이는데요. 대중적인 이미지들은 대중문화 생성에 큰 기여를 한 매체를 통해 동시에 다수의 사람들에게 빠르게 전달되었죠. 그 이미지는 다수의 사람들에게 쉽게 각인되고 욕망을 부추기는 기능을 했던 것들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중적인 이미지들은 이성적인 사고를 불러오기보다는 순간적인 인상이나 허영심과 욕심을 자극한다는 부정적인 특징을 안고 있습니다. 제프 쿤스의 작품은 이러한 이미지들을 복제하거나 차용하여 제작되었기 때문에 현대사회가 만들어낸 인간의 자기 과시, 외형에 대한 환상, 재산이나 명성에 대한 높은 관심과 같은 문제들을 내포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즉, 현대사회의 자기애적 성격장애인 나르시시즘이 그의 작품에 오롯이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미술치료 전문 학자들에 따르면 화려하게 광택을 낸 일상적 사물과, 또 거대하게 확대된 형태가 과시적 경향을 내포하고 있다고 합니다. 평범한 대상을 스테인리스 스틸이라는 화려한 소재로 표현한 것 역시 차가운 현대인들의 삶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합니다. 또한, 단순한 형태의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는 작품들은 사소한 것을 이상화시키는 나르시시즘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대상을 왜곡하지는 않았지만 크기 자체를 과장되게 제작한 것은  과장된 현실이 반영된 현실 도피적인 자기애의 양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제프 쿤스의 작품이 지닌 화려한 색채도 나르시시즘적 우울을 표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늘 화려하고 타인의 욕망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이상화된 것들 속에서 현대인에게 감추어져 있는 공허함, 우울함, 의존적인 성향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합니다.  또한, 작가는 자신의 나르시시즘을 예술로 승화시켜 발산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애니메이션 《미라큘러스 레이디 버그》의 에피소드에서도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는 가수가 자신의 꿈이 좌절되면서 악당으로 변하게 되지요. 화려함 속에서의 공허함이나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좌절감은 어쩌면 우리 일상에서도 매우 익숙한 우울함을 안겨주는 요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주를 받은 대상들이 제프 쿤스의 조각과 같은 형상으로 얼어버리게 된 것일까요? 매 회 등장하는 악당들의 이름이나, 공간적 배경, 표현되는 수단을 볼 때마다 감탄을 금할 수 없더라고요. 인문학이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과장인 듯하지만, 역사적인 배경 지식이나 세계 문화의 다양성을 반영한 점, 그리고 현대미술의 범주까지 내포하고 있는 이 만화영화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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