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서 상영중인 드라마 <빌리언스 Billions>는 연방검찰 뉴욕 남부지검 검사장 프릿 바라라와 헤지펀드 매니저 스티브 코헨의 법정 다툼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미국의 법조계와 경제계를 동시에 다루는 이 드라마는 금융범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이득을 취하기 위해 주인공들이 판을 짜는 행태는 권모술수라는 언어로 표현하기엔 너무나 부족한 듯 보입니다. 절대 악이나 절대 선의 구분이 없이 빠르게 진행되는 법정공방과 헤지펀드계의 발 빠른 움직임을 보고 있자니 개미들은 이 세계에서 돈을 잃을 수밖에 없다는 것만 깨닫게 되더군요. 개인적으로 주인공들 중 엑스 캐피털에서 심리상담을 하는 웬디 로즈라는 인물에 관심이 많이 가더군요. 퍼포먼스 코치라는 직업을 가진 그녀는 타인의 심리를 읽고 동시에 호의를 얻은 후 자신의 원하는 방향으로 그들의 심리를 조종합니다. 때문에 막대한 금액을 움직이는 엑스 캐피털의 직원들은 오너가 원하는 방향으로 투자하고 큰 수익을 창출합니다. 이게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으나 대화하는 상대방의 심리를 캐치하고 궁극적으로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뜻을 타인의 생각을 바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오늘 다룰 이야기는 드라마 <빌리언스> 중에서 시즌3의 제6화 “오르톨랑 세 마리”입니다. 주인공 액스와 절친이자 액스 캐피털의 2인자인 마이크 와그너, 그리고 셰프가 식사를 하는 장면에서 순간 떠오르는 작가가 있어 이 드라마를 다루게 되었습니다.
드라마에서 매우 경건하게 그리고 너무나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식사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바로 프랑스 요리 ‘오르톨랑’을 음미하는 순간입니다. 오르톨랑은 신도 모르게 먹어야 하는 음식이라고 합니다. 요리를 위해 오르톨랑을 사육하는 과정과 잡는 방식 모두 너무 잔인해서 법적으로 금지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식탐을 보이는 자신의 모습을 신에게 숨기기 위해 하얀 천을 뒤집어쓰고 음식을 먹는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멧새 요리로 알려진 이 요리의 주 재료인 오르톨랑 촉새는 야행성인데요. 살을 찌우기 위해 검은 상자에 가두거나 눈을 뽑는다고 합니다. 살이 올라 잡을 때에도 브랜디인 아르마냑에 산 채로 담가 술에 익사시킨다고 합니다. 이후 오븐에 구워 접시에 내는데 그 맛이 “프랑스의 영혼을 구현하는 요리”라는 찬사를 받을 정도라고 하네요. <빌리언스>에서도 매우 “숭고한 경험”이었다고 그 맛을 평가합니다.
그런데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 초를 켜고, 접시 위에 최대한 얼굴을 가까이 한 주인공들이 하얀 테이블 냅킨을 머리에 쓰고 먹는 모습이 억만장자들의 식사라고 보기에는 너무 우스꽝스럽고 심지어는 한심해 보이기까지 하더군요. 요리를 한 주방장은 천을 쓰는 이유 중 하나는 시각적인 것에 영향을 받지 않고, 요리의 향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으며 오롯이 음식을 입 안의 감각만으로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하얀 천을 쓴 주인공들이 주는 시각적인 느낌 때문에 오늘은 니나 카차두리안(Nina Katchadourian)이라는 작가를 소개드리려 합니다. 그녀는 비행기로 여행을 하는 중에 기내 화장실에서 15세기 네덜란드 초상화 같은 사진을 찍었습니다. 소품은 기내에서 제공하는 냅킨이나 화장실 휴지 혹은 변기 커버, 기내 휴식을 위한 목 베개와 같은 것들을 활용했습니다.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이미지들을 작가는 좁은 기내 화장실에서 몇 장의 휴지와 수건, 담요로 똑같은 분위기를 연출해 사진을 찍었습니다. 장시간 비행에 지쳐 우연히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순식간에 여행자들이 비행기에서 한 번쯤은 따라 하게 되는 이벤트가 되었다고 합니다.
니나 카차두리안은 이 밖에도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고안했습니다. 일명 <Sorted Books project>는 도서관 선반 위에 책들의 배열을 ‘의미 있는’ 진열로 바꾸는 것입니다. 책 제목을 읽으면 일종의 내용이 전달되도록 진열을 바꾼 것입니다.
RELAX
WHEN I RELAX I FEEL GUILTY
When I say No, I feel guilty
God Always Says Yes!
Don’t Say YES When You Want To Say NO
위와 같이 책의 제목을 나열하여 문장을 만들고 의미를 전달하는 방식입니다.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래로 130여 개의 클러스터가 만들어졌다고 하네요. 제 책장은 책의 두께나 길이로만 구분해 꽂아 두었었는데, 오늘부터 저도 이러한 방식으로 재미있게 해 봐야겠습니다.
참! 음식을 먹을 때에도 수건을 쓰고 먹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