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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나딘 Feb 16. 2021

Sing Again & See Again

오디션 프로그램은 꿈을 향해 맹목적으로 달려가는 많은 이들에게 실현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선물했습니다. 또한 꿈보다는 현실에 적응하며 살아가던 이들이 다시 열정의 불씨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럼에도 시청률을 위해 재탕하듯 쏟아내는 오디션 경쟁은 이 장점을 갉아먹기도 하지요.      

인재 발굴, 성취, 대리만족, 신선함 등의 쾌감을 안겨주는 프로는 생존과 같은 경쟁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참가자 모두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최선을 다하고 서로를 밟고 서기 위한 혹은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기 위한 노력을 합니다. 또 방송 편집자는 그 치열함을 섬세하게 다듬고 전송해 우리가 무언가 느끼기를 바랍니다.  

JTBC 팬텀 싱어 이후 저의 관심을 끌다 못해 매주 월요일을 기다리게 만든 오디션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바로 <싱어게인>입니다. 무명가수들의 재기를 위한 경쟁이 골자인 기획이지요. 사실 대다수의 오디션 프로그램이 아직은 주요 매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지 못하는 이들을 발굴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때문에 무명가수 혹은 신인이라 불립니다. <싱어게인>은 이 점에서 타 오디션 기획가 차이점은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록, 포크와 같이 유행이 지나버린 장르로 치부되는, 그럼에도 여전히 골수팬들이 존재하는 음악을 과감하게 무대에 올렸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연령대의 참가자들로 인해 '도전 정신=청년'이라는 도식을 깼습니다. 초리 라운드에서는 이름이 아닌 번호로 불린다는 점과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며 '나'를 찾고 타인에게 나를 알리는 과정도 울림을 주었습니다.   

<싱어게인>에 또 관심이 끌렸던 이유 중 하나는 회가 거듭날수록 참가자들끼리의 돈독함이 돋보였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그 보다 각자가 지닌 따뜻함이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편집자의 기술이기도 했겠지요. 그럼에도 라이벌 전에서 63호(이무진)가 30호(이승윤)와의 대결 구도를 인지한 순간 “왜 이러시는 거예요?”라며 제작진에 건넨 말과 그의 표정, 그리고 30호 가수가 “세상은 부조리한 곳...”이라 언급하며 지은 표정 등에서 그들이 지낸 시간 속에서 겪었던 어려움과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부당한 대우에 도가 튼 모습을 보았습니다. 또한 그들의 태도에서 서로의 고통을 알기에 보듬어 주는 사람의 온기를 느꼈습니다. 심사자들을 실패자로 만들겠다는 포부는 기발하면서 동시에 타인의 오락을 위한 경쟁구도를 조성하는 시스템 자체에 일침을 가하는 예리함을 보였습니다. 그 자신감과 도전정신, 정당함, 자신만의 길을 위해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으려는 모든 노력들은 제게 감동이었고, 또 교훈으로 남았습니다.  

(아래 영상은 개인적인 사심을 듬뿍 담아 올립니다.)     

우승을 위한 마지막 관문은 다양한 의미에서 참가자들의 음악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시각적으로는 요아리씨의 무대장치가 눈에 들어왔는데요. 역시나 작품과 유사한 이유입니다. 바로 예페 하인(Jeppe Hein)의 <Small Neon Cube>(2005), <Mirror Neon Cube>(2006)입니다.      

Jtbc <싱어게인> 결승, 요아리 무대
Jeppe Hein, <Mirror Neon Cube>, 2006.

요아리는 결승전에서 네온 큐브 같은 무대 장치 위에서 ‘걷고 싶다’를 불렀습니다. 솔직히 진지하게 노래를 부르는 가수의 모습보다는 밝은 빛을 뿜는 무대에 저의 모든 정신이 집중되었습니다. 예페 하인의 작품과 상자(cube)를 통해 박물관이나 미술사 등의 담론에 논란을 야기했던 많은 이야기들이 순식간에 머릿속에서 거품처럼 일어났기 때문이죠. 동시에 시스템의 오류 혹은 비가시적인 힘에 도전하는 이승윤의 멘트와 겹쳐지면서 거품은 점점 더 커지더군요.      

예페 하인은 베를린과 코펜하겐에서 활동하는 작가입니다. 그는 익살스러움을 가미해 1970년대 미술계를 강타했던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을 결합한 형태의 작품을 주로 선보입니다. 거울이나 풍선, 네온사인의 빛을 활용하여 관람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작품을 제작하는 그는 작품 자체보다는 관객과의 상호작용이나 참여를 통해 의미가 생성되도록 유도합니다. 하인의 작품은 예술의 문턱을 낮추면서 동시에 담론에 대한 깊은 이해와 역사에 대한 의식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빛과 거울로 구성된 예페 헤인의 작품은 로버트 모리스의 1965년 작품 <무제 Untitled>와 한스 하케의 <응결 큐브 Condensation Cube>(1963-1965)와 관련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 작가의 손에서 제작되는 것이 아닌 제품으로 생산된 소재를 접합하여 작품으로 재탄생하게 된 상자는 단순한 외형과 달리 많은 서사를 담고 있습니다. 작품을 하나의 시점에서 감사하는 것이 아닌 공간 전체를 작품에 반영하고, 서로가 반사하며 새롭게 생성되는 공간감을 전달하기도 하지요. 관람자는 이리저리 움직이며 작품을 감상하는 연극적인 측면도 생성하게 됩니다.      

한스 하케의 상자는 투명한 아크릴로 제작되었으며 주변의 온도에 따라 수증기의 응결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면서 화이트큐브 내에 작동하는 비가시적인 수많은 장치에 대해 말을 합니다. 작품을 전시하기 위해서는 작가와 작품, 관람자뿐만 아니라 공간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그 공간은 항온과 항습은 물론이고 조도 역시 철저하게 고려된 공간이지요. 또 그를 위해 많은 사람들의 노동을 필요로 합니다. 한스 하케는 바로 이 지점을 투명한 상자와 내부의 응결된 물방울을 통해 가시화했습니다.      

한스 하케의 작품과 로버트 모리스의 미니멀리즘 조각

예페 헤인은 빛과 거울을 통해 관람자 자신의 존재를 상기시키면서 동시에 공간에 대한 독특한 작가만의 시선을 관철시킵니다. 또한 미술의 역사에 있어서 주요하게 논의되는 작가들의 개념도 소추하지요.     

이런 관점에서 80-90년대 음악에 자신의 색을 더해 완전히 다른 음악으로 편곡해 부르는 이무진과 사회의 이면에서 힘들어하는 이들을 대변하거나, 스스로 애매한 음악가라 칭하며 경계를 가시적으로 만드는 음악가 이승윤은 예페 헤인의 작가성과도 닮아 있는 듯합니다.      

아마도 앞으로 상당 시간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 같습니다. 부디 지금의 정신을 잃지 않고 아파하지 않고, 꿈꾸던 음악가로 거듭나기를 소망해봅니다. 


참고로 예페 헤인의 작품이 현재 관훈갤러리에서 전시 중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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