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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나딘 Mar 10. 2021

선한 영향력

최근에 ‘선한 영향력’에 대한 기사를 자주 접하게 됩니다. 누군가가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 데에 있어서 ‘善’ 즉, 착하고 정당하며 도덕적 기준에 맞는 행동을 실천하고, 이 행위가 다른 이들에게 옳은 방향으로 전달되는 데에 그 의의가 있습니다. 취약계층의 아이들이 식사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선한 영향력 가게’와 절판된 도서를 제작하고 400여 곳의 기관에 기증할 수 있도록 거액을 기부한 가수 RM도 미술계에서 선한 영향력을 행사한 예술 후원인으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이들의 ‘선함’을 실천하기 위한 행동들은 분명 긍정적인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본래 침체기에 있던 미술계가 더더욱 우울해지던 시기에 RM이 미술관 곳곳에 말 그대로 출몰하면서 그의 팬들은 그가 다녀간 미술관에 찾아가 작품을 감상하는 ‘성지순례’ 혹은 ‘알엠 투어’와 같은 문화를 만들어주었습니다.      

‘선한 영향력 가게’는 홍대 근처의 한 파스타집 사장님이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를 위해 늘 고생하시는 소방대원이 장갑을 사비로 사서 쓴다는 뉴스를 접한 후 그분들에게 식사를 무료로 제공해드렸다고 합니다. 또한, 급식카드가 있지만 여러 제약으로 인해 사용이 어려운 아이들이 굶는다는 소식을 접한 뒤에는 배가 고픈 아이들에게도 식사를 무료로 제공하셨다고 합니다. 물론 사장님도 어려움이 있으셨겠지요. 그렇게 시작된 이 움직임은 현재 많은 사장님들의 동참으로 인해 서울뿐 아니라 지방 곳곳으로 번지고 있다고 합니다.      

단어가 지닌 의미 그대로 ‘선한 영향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회 곳곳에서 이러한 움직임은 일어나고 있겠지요. 그런데 개개인들의 이러한 자발적인 움직임이 마냥 반갑지 않습니다. 이것은 곧 정부나 지자체, 공공기관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표명된 제도와 달리 소외된 이들은 지속적으로 더 고립되어 가겠지요.     

배 고프고 고립된 아이들을 뉴스로 접하니 요시토모 나라의 작품이 연상되어 올립니다.

아동 급식의 경우, 경제적 빈곤 상태에 놓인 아이들이 학교에서 급식을 하지 못할 경우 외부에서 급식에 준하는 식사를 해결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보조하려는 것이 목적인데요. 이것이 현실에서는 가맹점이 턱없이 부족하고, 높은 카드 수수료, 부족한 예산과 같은 많은 제약으로 꿈같은 목적과 달리 아이들은 계속 굶거나 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합니다. 서울시의 경우 한 끼의 예산은 6000원입니다. 2009년 3,500원으로 시작했으니 12년 만에 2,500원이 오른 것입니다. 주된 사용처는 결제액으로 확인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서울시의 경우 지난해 지원금 약 367억 원 중 편의점에서 약 219억 원이 사용되었다고 하네요. 그나마도 김밥 두 줄은 못 사는데, 심지어는 어른들이 아이들의 카드를 사용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고 하네요. 공무원이 사적으로 아동급식카드를 사용하거나 지인에게 나누어 주어 징역과 집행유예를 받은 사례도 있습니다.       


또, 스타들의 미술계를 향한 선한 영향력은 국내 미술계가 스타들의 ‘힘’에 의지하지 않고는 사회에 문제적 내용에 대해 제기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다수의 전시가 이미 유명한 작가들을 위한 전시이거나 특정 논의의 중심에 설 수 있을 만큼의 타당한 내적 함의를 지니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 역시 소장품의 시대적 나열, 작가의 회고 수준에 머물고 있으니 ‘현대’라는 말은 단지 특정 연대를 의미하나 봅니다. 미술이 시장경제를 무시할 수 없으나, 판매와 투자 수단으로 전락하게 만드는 미술계 역시 자각할 필요가 있겠지요. 내실 없이 대규모 전시나 비엔날레, 아트페어만 지속적으로 조성하려는 지자체도 문제입니다.     

 

모든 미술이 정치적일 필요는 없고, 모든 작품이 높은 콧대를 유지할 필요도 없습니다. 대중과 친화적이고 그 사이에서 스타작가가 창출되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스타가 되기 위해 화려함만 추구한다면 예술이 추구하는 철학과 아름다움은 결국 모두 명예와 돈으로만 치환되는 셈이니 결국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것이지요.    

  

1964년 뉴욕 그린갤러리에 전시된 로버트 모리스의 작품

모두가 잘 아는 미니멀리스트 이야기를 잠시 하겠습니다. 1960년대 미국에서는 다양한 사조의 미술운동이 태동했습니다. 앤디 워홀로 익숙한 팝 아트, 개념미술과 미니멀 아트 등이 이 시기에 등장했습니다. 미니멀리즘은 앞 시기의 추상표현주의가 지닌 다소 넘치는 행위들에 반기를 들지만 그들이 추구했던 혁신성은 이어가려 했습니다. 미니멀 아트는 외형이 매우 기하학적이고 산업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그래서 어떠한 설명이 불가한 작품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당시에 사회 비판적인 내용을 읽어내기에도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들이 엄청난 일을 해냅니다. 바로 작품을 전시하기 위한 전시실이라는 ‘공간’ 자체를 조명하게 만든 것입니다. 관람자들의 움직임과 시각장, 빛 등 다양한 공간적 맥락에서 작품을 이해하게 만들었습니다. 도널드 저드, 칼 안드레, 로버트 모리스와 같은 미니멀리스트들은 반전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사실은 매우 놀랍습니다. 작품이 정치적일 필요는 없으나 작가들의 행동은 정치적일 수 있는 것이지요. 그들은 반전단체나 난민 구호를 위한 기금을 모으는 전시에 자신들의 주요 작품을 기증하여 기금 마련에 도움을 주었다고 합니다. 작가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방식이었을 것입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앞에서 반전시위하고 있는 로버트 모리스와 미술파업 회원들(1970.5.22)/ 로버트 모리스, <전쟁기념비>

또한 당시 미술가들은 미국이 베트남에 폭격을 가하는 것에 반대하여 1000명의 미술가들이 청원서를 작성한 후 피카소에게 보냈다고 합니다. 피카소의 <게르니카>가 당시 뉴욕의 근대미술관에 전시되어 있었는데요. 1937년 나치군이 게르니카를 비행기로 폭격하는 참상을 알리는 작품인 <게르니카>는 전쟁이 주는 공포와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따른 시민들의 죽음, 그들에 대한 애도를 비롯한 다양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도 버젓이 같은 만행을 자행하고 있으니 미술가들은 피카소의 작품이 지닌 높은 정신을 드높일 수 있도록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미국에서 작품을 철수시켜 달라는 청원을 보낸 것입니다.      

당시 미국 내 미술가들의 ‘선함’을 향한 움직임은 국내 식당 사장님이나, 연예인과 같이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가장 적극적인 사회적 동참이었으며, 정당한 도덕성을 실현시키기 위한 노력이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 ‘선한 영향력’이 제도적 불합리함의 또 다른 얼굴이라는 차원은 마음을 먹먹하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선한 영향력’을 행하는 모든 분들이 계시기에 또 밝아질 미래를 기대하는 것이겠지요. 미술계 내에서도 사회와 제도에 비판적, 비평적 날을 세운 움직임이 보다 더 활발하게 일기를 기대해봅니다. 환심을 사는 전시나 기획은 일회성으로 끝이 납니다. 보다 더 문턱을 낮추고 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동참 및 공감할 수 있는 내적 움직임일 필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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