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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나딘 Mar 25. 2021

고기, 고기, 고기

유튜브 방송의 최대 장점은 바로 내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선택해 짧은 시간 내에 정보를 습득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선정성이나 폭력성에 대한 거름망이 느슨하다는 위험성도 안고 있습니다. 또, 알고리즘에 의해 추천되는 채널들에 의해 기존 관심 분야에 한정된 내용을 접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고립될 수 있다는 함정도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기존 TV 채널보다 오락성이 강하고, 빠른 전개 및 주변 일상과의 친밀함 등과 같은 다양한 이유로 유튜브 채널은 급증하고 구독자들도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요리와 관련된 채널을 주로 보고 있습니다. 늘 먹던 반찬이지만 테이블 세팅을 색다르게 하고 싶은 날이나 옥상 바비큐를 결심한 날은 재료를 준비하기 전 방송을 통해 예습을 합니다. 요리 채널은 너무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목소리 톤이 너무 높지 않고, 빠르지 않은 말투에 비싼 주방 도구 없이도 요리가 가능하도록 알려주는 방송을 선호합니다. 그중에서도 고기 요리를 주로 알려주는 채널을 자주 참조하고 있는데요. 오늘은 제가 그 방송을 보다가 거의 완벽하게 일치하는 회화가 떠올라서 소개해드리려 합니다.      

양고기 아사도 (이미지 출처: https://overthefirecooking.com)

그 요리는 바로 ‘아사도’입니다. 방송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음식인데요. 시각적으로 충격이었을 뿐이지 알고 보니 우리가 늘 먹던 장작 소금구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아사도는 고기를 숯불에 통째로 굽는 요리입니다. 보통 쇠고리를 요리하는데요. 찾아보니 양고기로도 요리를 많이 하는 것 같네요. 아사도는 특별한 양념 없이 굵은소금만을 뿌려 간을 하지만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야 그 맛을 볼 수 있습니다. 제가 본 방송에서는 약 14시간 정도 숯불에 은근하게 구웠던 것 같네요. 이 점이 빠르게 구워서 먹는 소금구이와 가장 큰 차이지요.      

아사도는 고기를 통째로 굽는 요리이다 보니, 그 모습이 다소 충격적이기도 합니다. 그 이미지는 렘브란트의 <도살된 황소 Slaughtered Ox>(1655), 수틴의 <도살된 소 Carcass of Beef>(1925)를 연상시킵니다. 그리고 더 재미있는 사실은 이 모든 그림은 프란시스 베이컨의 1946년 작품 <회화 Painting>Ⅰ, Ⅱ로 귀결된다는 점입니다.    

렘브란트의 <도살된 황소>와 생 수틴의 작품 이미지.

먼저 렘브란트의 그림으로 시작해보겠습니다. 렘브란트가 유명한 작가로 활동하던 당시 미술은 ‘미술’은 그 자체로 지켜야 하는 수많은 규칙들이 있었습니다. 그림은 ‘아름다움’이라 하는 내적인 것들을 품으면서 동시에 시각적으로도 보기 좋은 것들이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유명한 렘브란트라고 하더라도, 죽은 황소를 그렸으니 누가 이 작품을 사고 싶었겠어요. 아무도 자신의 집에 시체 같은 그림을 걸어두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을 나중에 몇몇 작가들이 모사하고, 또 그들 역시 자신의 주변으로 시선을 돌리면서 그림은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존의 아름다움이 아닌 사실적인 것들이 그림으로 제작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영화<모나리자 스마일> 중 수틴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는 장면.
베인컨의 <회화>(1946), <교황>(1954), <회화>(1971)

수틴(Chaim Soutine)은 렘브란트의 도살된  황소를 사실적으로 재현한 작품에 영감을 받아 실제 도축된 소를 작업실로 가져와서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악취 때문에 이웃들이 경찰에 신고하는 해프닝도 발생했다고 합니다.      

이들의 작품은 모두 뒷발은 지지대에 묶여 있으며, 소의 갈비뼈가 다 보이도록 배가 갈라진 상태입니다. 그 형태는 생명의 흔적은 찾아보기 힘든 말 그대로 살과 뼈 덩어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다소 잔인하면서도 매우 사실적이지만, 두 작품은 모두 일상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재현한 회화입니다.      


이들과 달리 프란시스 베이컨은 실재 대상을 직접 보고 그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잡지나 신문, 사진이나 기존의 회화를 보고 그것을 그렸습니다. 베이컨은 주제뿐만 아니라 삼면화라는 회화적인 형식도 자신의 작품에 적극적으로 도입했습니다. 여러 이유로 그는 상당히 매력적이지만 그만큼 접근하기 어려운 작가이기도 합니다. 연구자들은 베이컨을 실존주의적인 맥락에서 분석하기도 했고, 표현주의적인 작가로 구분하기도 했습니다.     

위 두 견해와 달리 많은 연구자들이 그를 리얼리즘 화가로 구분하기도 했지요. 이미 아셨겠지만 저는 오늘 이 사실주의적 맥락에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려 합니다. 물론, 베이컨은 표현주의적-사실주의, 실재적-사실주의와 같이 부수적인 설명이 곁들여지기는 합니다.

우선, 베이컨의 <회화>를 보겠습니다. 이 작품은 핑크빛의 후경에 조금 더 짙은 색의 마치 삼면화 배치와 유사한 세 개의 사각형이 보입니다. 그 앞으로 고기 덩어리, 그리고 전면에 우산을 쓰고 입을 벌린 사람과 같은 형태가 보입니다. 동그랗게 마치 울타리를 연상시키는 흰색의 구부러진 선 위에도 고기로 추정되는 형태도 그려져 있습니다. ‘마치 ~ 같은’이 필수인 형태들로 가득한 이 작품은 어디 하나 ‘사실적’이라고 느껴지는 대상을 그리지는 않은 것 같지요?

그렇다면 이번에는 회화 내에 흐르는 선을 살펴보겠습니다. 핑크빛의 배경과 삼면화의 직선, 아사도처럼 묶인 고기 등은 아래로 하강하는 시각적 효과를 만듭니다. 그리고 흰 울타리 위의 좌우에 높인 고기와 우산의 방향성은 위로 향하고 있지요. 또 흐물거리는 형태의 덩어리와 울타리 같은 구부러진 선들은 상하로 부딪히는 강한 힘을 매우 유연하게 만드는 효과를 자아냅니다. 작품 내에서 직선으로 곧게 뻗은 선들은 이 사회의 규범이나 관습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를 벗어나는 우산에 보이는 빗살이나 바닥에 보이는 분산된 선들은 탈주선으로 일종의 저항이라 할 수 있지요. 또 유연하게 흐르는 부드러운 곡선들은 이 모두의 속성을 지닌 것입니다. 상하로 마주하는 강한 힘의 작용이나 유연함, 그리고 사방으로 탈주하는 선들은 모두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삶을 그린 것입니다. 똑같은 모습 그대로 사진처럼 이야기를 담고 있지는 않지만, 베이컨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동안 미술에서 말하던 본질적인 것들과 관계없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우리가 그림으로 표상하지 못했던 것들을 표상했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는 조금 사실주의적인 작가 같은 느낌이 들기는 하지요?     


매번 볼 때마다 처음 보는 책처럼 여겨지는 [감각의 논리]는 바로 들뢰즈가 베이컨의 작품을 빌어 자신의 사고를 전하는 책입니다. 이 책에서도 말하기를 베이컨은 어떠한 이야기를 전하는 그림을 피하기 위한 장치로 ‘윤곽’을 그린다고 합니다. 그림에 어떠한 주된 대상의 주변에 그어진 선이 바로 이 윤곽인데요. 이것은 배경과 형태를 결합하거나 분리하는 기능을 지녔습니다. 그럼 여기서 의문이 생기지요? 진짜인 어떤 대상을 보고 그린 것이 아니라 플라톤이 말한 ‘가짜’로 치부되는 다른 사람의 그림이나 사진을 보고 그렸다면 사실주의적인 작가라고 불릴 수 있을까요? 또 사실주의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종이에 옮기면서 ‘재현’이 지닌 서사적인 특징을 강조하기 마련인데요. 그런데 프란시스 베이컨은 서사성의 차단을 위해 윤곽을 그렸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프란시스 베이컨은 사실주의적인 작가가 맞는 것일까요?      

선의 방향성이 지닌 힘의 작용으로 사회를 표상했다는 점에서 살짝 사실주의 비슷한 느낌이기는 했는데, 다시 너무 혼란스럽게 해 드린 것 같네요. 간단하게 말하면, 베이컨은 진짜 같은 어떤 대상을 똑 같이 그리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한 것은 이미 카메라가 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베이컨은 ‘느낌’을 그리는 사실주의 작가가 된 것입니다. 바로 인간의 감각기능을 담당하는 신경계에 작용하는 진정한 사실주의를 지향했습니다. 과거를 재생산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하며 계속해서 재창조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그가 생각하는 미술에서의 리얼리티였습니다.   

Image by John Deacon for VOGUE 1952.

베이컨이 생각하는 리얼리티는 사진이 찍는 나와 똑같은 얄팍한 기술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말합니다. 오히려 얼굴의 형태를 왜곡하고, 빗금을 치거나, ‘돌발표시’라 불리는 의도적인 문지름을 통해 생긴 물감이 눌린 자국들에 의해 더 강하게 사실에 다가갈 수 있으며 보다 날카롭게 우리의 신경계에 직접적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합니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사실’을 기록하는 과정입니다. 베이컨은 1차 모방물인 사진이나 기존의 그림을 보고 그리면서도 그 모델과 닮아 있지 않은, 그렇기에 비재현적인 형상을 그렸습니다. 왜곡된 이미지는 1차 모방의 결과물과도 멀어지지만 느낌은 보다 강하게 전달하는 ‘실재적 리얼리즘’이라는 패러다임을 제시한 것입니다.


감각적인 그의 회화는 역으로 패션 사진에 많은 영감을 주기도 했습니다. 2012년 일본에서 발간된 보그 옴므(Vogue Homme)에 선보인 사진은 베이컨의 작품을 오마주했습니다. 그 제목도  “One Impression of Francis Bacon”입니다.  과거의 재생산에 그치지 말라는 그의 경고가 무색한 사진이지만, 원본에 충실하려는 노력은 엿보이네요.

<루시안 프로이트의 세 연구> / 보그 옴므 / <두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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