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The Good Doctor>
넷플렉스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 ‘The Good Doctor’는 자폐를 앓고 있지만 천재적인 기억능력을 지닌 숀 머피가 대학병원에서 레지던트로 일하는 생활을 담고 있습니다.
넷플렉스에서는 시즌 3까지 볼 수 있지만 ABC 방송에서는 시즌 4까지 완결되었다고 합니다. 이 드라마는 한국에서 2013년에 방영된 KBS 2 TV에서 방영된 <굿 닥터>를 리메이크한 작품입니다. K-Power가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의 리메이크된 드라마 속 주인공 숀 머피는 프레디 하이모어가 연기했습니다. 하이모어가 자폐를 앓고 있는 천재 의사의 역할을 너무 완벽하게 소화했지요. 프레디 하이모어는 <찰리의 초콜릿 공장>, <어거스트 러시>, <베이츠 모텔> 로도 친숙한 인물입니다. 올 해에 방영된 이탈리아와의 합작 영화 <레오나르도>도 기대가 됩니다.
굿 닥터의 시즌 1의 14화 ‘난 여자예요’의 일화를 오늘 다루어보고자 합니다. 해당 에피소드에는 남자아이로 태어났으나 유아기부터 인형 놀이를 선호하고, 자신을 여자라고 믿는 퀸이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퀸은 2차 성징을 억제하기 위해 약을 먹었고, 부작용으로 골감소증이 나타납니다. 또한 고환에 암도 발견되어 절제 수술을 앞두게 됩니다. 퀸은 골밀도 감소를 막기 위해 성장 억제제를 먹지 못 하게 된다면 수염이 난 괴물이 될 것이라 두려워하고, 그 과정에서 숀은 고환 두 개 모두를 절제하면 될 거라는 이론을 제시합니다. 이 과정에서 보호자와 외과의 그리고 숀은 각기 다른 의견을 표합니다.
자신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믿는 청소년기의 퀸은 체온과 혈압이 정상이라 말해주는 의사 숀에게 “정상이 대체 무엇인데요?”라고 묻습니다. 이에 “일반적이고 보통이고 예상이 된다는 것”이라고 숀은 답합니다. 입원실 침대에 누워 퍼즐을 맞추면서 퀸은 자신은 그런 것에 속하기 싫다고 말을 하는데요. 재미있게도 그 퍼즐의 이미지는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남긴 메모 중 가장 중요하다고 평가받는 <비트루비우적 인간>입니다. 고대로부터 전해지는 건축 서적을 집필한 비트루비우스, 르네상스 건축가와 화가들 중 그의 생각을 가장 진지하고 유려하게 구현한 인물이 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입니다. 메모에서 인간의 신체 주변에 그려진 원은 우주를 상징합니다. 또한 사각형은 우리가 사는 지상을 의미하고요. 고대 그리스의 철학을 바탕으로 생각하면 이데아와 물리적 세상을 기하학적으로 구현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마르쿠스 비트루비우스 폴리오(Marcus Vitruvius Pollio)의 건축론(De architectura)을 본 후 연구했습니다. 다빈치는 인체가 세상과 닮아 있는 것을 깨닫고 우주의 축소판으로서의 인체의 정확한 비례를 구현하여 인간과 자연의 섭리를 이해하고 나아가 아름다움(참된 진리)을 재현할 수 있다는 것을 드러냈습니다.
남성의 신체를 지니고 태어난 퀸은 스스로를 여성이라 믿습니다. 자신의 내면을 진심으로 들여다본 결과이겠지요. 그럼에도 타인들은 ‘정상’이라는 표현을 빌어 비 일반적인 아이로 치부합니다. 이에 퀸은 스스로 정상에 속하기 싫다고 선언하며 우주의 섭리와 참된 아름다움의 재현 가능성을 보여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비트루비우스적 인간> 이미지의 퍼즐을 하나씩 맞추어 갑니다. 사람이 지닌 진실한 아름다움은 타인의 시각이나 보편성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의 미(beauty)를 찾아가는 데에, 그리고 그것에서 우러나는 자긍심에 있는 것이 아닐까요?
드라마 <굿 닥터>의 미국 리메이크 버전은 이 외에도 흥미로운 그림이 늘 도입부에 등장합니다. 인간의 머리 내부를 세밀하게 묘사한 이미지와 더불어 신체 여러 도안들이 빠르게 화면을 스치는데요. 제 기억 속에는 없어서 여러 키워드를 입력하며 찾아보니 해부학자인 장 마르크 부르제리와 화가인 니콜라 앙리 자콥이 함께 작업한 『인체 해부학 개론 Atlas of Human Anatomy and Surgery』에 수록된 석판화였습니다. 자콥은 고전주의 대표화가인 자크 루이 다비드의 제자였습니다.
초기에는 소묘 화가로 활동했으나 1820년을 기점으로 석판화가로 전향합니다. 1830년부터 1849년까지 이 책을 위해 자콥은 살롱전 출품을 중단했다고 합니다. 프랑스 생명 과학사에 한 획을 그은 이 책은 세밀한 대상 묘사와 생물학적 지식을 오류 없이 석판화로 제작할 만큼 과학적인 지식도 풍부했다고 합니다. 위대하다고 표현할 수 있는 이 책을 출판한 이후 1849년 부르제리가 사망합니다. 부르제리가 세상을 떠난 후 자콥은 다시 창작 예술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인체 해부학 발전에 큰 공을 새운 이가 판화가였다는 점이 저에게는 매우 놀랍게 그리고 무언가 알 수 없는 뿌듯함으로 다가오네요.
(해부학 책을 위해 자콥이 작업한 세밀한 석판화 이미지를 많이 보여드리고 싶지만 너무 상세하고 사실적이기에 제가 지속적으로 보기에 조금 어려움이 있네요. 의사 선생님들 존경합니다. 그래서 ^^ 구독해주시는 분들께 검색할 수 있는 찬스를 드리는 방향을 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