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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나딘 Nov 28. 2021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놀이터는 야생

꼬맹이가 걷기 시작할 무렵 슬슬 놀이터에 나가 놀기 시작했다. 주택가와 둘레길이 인접한 곳에 살기에 근처에 놀이터가 많은 편이다. 아이도 처음 키우고, 놀이터는 낯선 장소가 된 지 오래인지라 난 놀이터 선택에 상당히 신중했다. 집에서 언덕 아래로 향하는 길목에 주택 사이 아주 작은 놀이터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작은 아이들에게 적당한 미끄럼틀이 있었고, 벤치도 많았지만 무엇보다 찾는 이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밍밍한 김밥을 대충 만들고, 물과 간식 소독약 등등을 가방에 챙겨 넣고 찾아간 놀이터는 모기가 말도 못 하게 많았다. 나도 꼬맹이도 모기 물리면 상당히 붓고 염증도 생기는 체질이라 기겁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은 둘레길에 인접한 산 중턱의 놀이터로 갔다. 유부초밥을 싸서 찾아간 놀이터는 커다란 개들이 산책을 나오는 곳이었다. 반려견과 산책 후 놀이터에서 공을 주워오는 놀이하기에 적합한 장소인 듯했다. 동물 털에 알레르기가 심해서 역시 난 또 급하게 애 데리고 귀가했다. 그래도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갈 때까지 '위에 놀이터'로 불린 그곳은 참으로 고마운 장소였다. 물론 도망가듯 내려오는 일도 잦았다. 


유치원을 다니면서 많이 성장한 아이는 좀 더 다이내믹한 놀이기구가 있는 놀이터로 갔다. 연령대가 무지하게 다양했다. 4~5살 정도로 어린 친구들과 더불어서 근처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의 야외놀이도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듯 보였다. 오후 시간에는 초등학생과 더 늦은 시간에는 고학년과 성인들도 오가는 곳이었다. 이곳이 바로바로 내게 엄청난 충격과 의문을 많이 남긴 장소다.


놀이터의 그네는 단 두 개다. 아이들은 차례를 기다리며 각 그네 옆으로 줄을 서서 기다렸다. 꼬맹이는 장기 중 하나인 인내심으로 참으로 오래 줄 서서 기다렸다. 드디어 차례가 왔는데, 순간 한 아이가 꼬맹이 앞을 스치듯 날아서 그네를 낚아챘다. 당황한 꼬맹이는 다시 줄을 섰다. 나 역시 당황과 분노가 치밀었다. 꼬맹이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차례차례 순서대로 하는 방법을 배웠고, 기다리라고 배웠다. 질서와 규칙에 대해서는 학습했지만 이를 어긴 사람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억울하고 울고 싶지만 엄마 눈치를 보며 또 줄을 서는 내 아이를 보니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놀이터 한쪽에 삼삼오오 모인 고학년 친구들은 휴대폰을 지니고 있었다. 서로를 찍기도 하고, 온라인 영상을 보기도 하는 것 같았다. 관심을 두려고 하지 않아도 녀석들의 목소리가 워낙 높아서 귀에 쏙쏙 들어와 버렸다. 순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용하는 언어의 반은 욕설이었으며, 서로 쿨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약간의 허세를 더해 상대에게 자신의 쿨한 업적을 자랑하는데, 그 내용이...


물론 요즘에는 내가 자랄 때처럼 동네 친구들이랑 하루 종일 놀 수 있는 환경이 아니기에 놀이터에서 가끔 만나는 친구들이 너무나 소중하다. 또 아이는 무슨 일을 겪던지 그래도 잠들기 전에는 놀이터에서 재밌게 놀았다고 말한다. 또 가고 싶다고... 그런데 이 놀이터는 신랑에게도 말해서 당분간 우리 아이는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 작은 놀이터에 우리 사회 전부가 깃든 것 같다. 정도를 밟고 노는 아이들, 어느 정도의 허세로 자신을 과장하며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는 아이도 있다. 또, 간식으로 친구를 사귀는 아이, 힘으로 무리를 끌어모으는 녀석, 같은 학교나 태권도장을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동생처럼 아끼고 데리고 놀아주는 친구들도 있다. 모두 신체 건강한 녀석들이다. 그런데 이런 친구들이 단지 건강하다는 이유로 질서를 어지럽혀도 되는지, 아직 뭘 모르는 어린아이들에게 위협을 가해도 되는지, 유사성이 없는 이유로 다른 아이를 놀이에서 배제시켜도 되는지 물어보고 싶다. 그리고 그 녀석들과 함께 놀이터를 찾은 부모님들에게도 물어보고 싶다. 그네를 기다리고 있는 꼬맹이를 뒤로하고 먼저 타도 된다고 가르쳤는지... 물론 아니겠지만 그 순간을 보지 못한 보호자들은 달리 대처하지 못한다. 그리고 또 나에게 묻는다. 억울한 일을 당하면 그냥 참고 자신은 정도를 밟아야 한다고 가르쳐야 하는지 아니면 억울하면 너도 그렇게 하라고 말해야 하는지... 아니면 내가 해당 보호자를 찾아 당신의 아이가 이러저러했으니 사과하라고 말을 해야 하는 게 맞는지...


꼬맹이가 언니 오빠들이 쓰는 비속어를 듣고 나에게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면 그 말은 잊으라 가르친다. 근데 잊히겠나? 그렇다고 그 뜻을 가르치면 이 녀석은 많이 놀랄 것이다. 초1에게 언니 오빠들은 선망의 대상이다. 그런데 나쁜 말을 쓴다는 사실을 알면 존경의 눈빛이 식을까 봐 무섭다. 그리고 새치기를 당하면 그 사람에게 내가 기다리고 있었으니 본인 다음에 타라고 말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런데 말을 해도 그냥 우기고 먼저 타버리면 어떡하냐고 꼬맹이는 묻는다. 난 속으로는 끝까지 싸우라 말하지만, 현실은 그럼 너는 그냥 다음을 기다리라고 말한다. 


이 모든 과정이 성장에 필요하고, 아이가 바른 인성과 올바른 선택 및 대처하는 방식을 배우는 과정이라 믿는다. 그런데 무조건 보호하고 싶은 엄마의 입장에서 놀이터는 신체에는 유익할 지모르나 과연 정신적인 성장에도 도움이 되는지 의문이다. 그래도 현명하게 대처하고 지혜로운 방법을 알아갈 수 있도록 잘 설명해주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난 놀이터가 참 무섭다. 왜냐하면 내가 아직 비성숙한 엄마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녀석은 매번 놀이터에서 놀고 싶다고 말한다. 아파트 단지와 달리 이곳은 주택가라서 그런지 놀이터에 친구들이 참 많다. 그만으로도 고마운 현실이다. 그런데 그 안에서 일어나는 매 순간의 여러 일들이 내게 너무 많은 고민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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