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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태 Feb 26. 2017

이런 송별회는 안 하는 게 마땅했다

가면 탈착

몇 시간 후에 회사 A후배의 송별회를 한다. 같은 팀에서 근무하던 후배는 전혀 다른 업종으로 떠난다. 며칠 전 A와의 통화에서 구질구질한 감정들은 철저히 배제했다.

"멋지다. 축하한다. 떠나기 전에 한잔 하자고..."


그간 드러나지 않게 이직을 준비했을 수고로움에 경의를 표하는 마음이 가장 컸고, 새로운 도전에 진심으로 손뼉 쳐주고 싶은 마음도 조금 있었다. 하지만 가장 솔직한 마음은 '별로 관심 없다',였다. 평일 오전에 걸려온 전화 그리고 생각지 못한 후배의 통보는 당장 처리할 업무 앞에서 초라했다.    

송별회 장소는 팀장의 단골 일식집이다. 이젠 나한테도 익숙한 공간이다. 맛은 말할 가치가 없다. 팀장은 이곳에서 자기 돈을 내는 경우가 극히 드물... 아니 없다. 술값을 대줄 누군가(갑을 관계를 생각하면 된다)가 있을 경우 예약하는 장소다. 일식집 사장과 서빙 아줌마들은 팀장을 극진히 모시고(?), 항상 가장 넓은 방과 '자유 흡연'을 보장해준다. 


송별회 장소에 가장 먼저 도착했다. 역시 그 방이다. 메뉴판에는 눈길을 줄 이유가 없다. 뭐가 나올지 훤하다. 예약된 테이블 세팅이 아군의 숫자를 넘어선다. 역시나다.  팀은 팀장, 나, A 그리고 막내 총 네 명이다. 방에는 6명 몫의 세팅이 완료된 상태다.  

다음으로 팀장이 도착했다. 그 뒤에 낯익은 면상이 주빗주빗 모습을 드러낸다. 다른 회사 후배 B다. 예상치 못한 1인이다. 전에 한번 본 적이 있는데 굽실대는 모습이 여전하다. 팀장은 어깨에 힘을 한껏 주고 B가 앉을자리를 지목한다. B는 사람 좋은 웃음과 함께 또 한 번 굽실댄다. B는 우리 회사로 옮기고 싶어 한다. 오랜 바람으로 팀장에게 붙어 다니고 있다. 팀장은 앉자마자 자기 집인 양 '세상 편하다'는 자세로 담배를 꼬나물었다. 


곧이어 주인공인 A가 도착했다.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다. 난 떠나는 이에 대한 아쉬움이 섞인 인사말을 건네려 애썼다. 막내 C도 헐레벌떡 들어온다. 연신 "늦어서 죄송합니다"를 외쳐댄다. 진짜 죄송한 거 같기도 하다. 곧이어 오늘 송별회의 물주도 오셨다. 팀장이 자세를 살짝 고쳐 앉는다. 그리고 물주의 소개하며 송별회의 신호탄을 쐈다. 

 "니들 중에 혹시 봤었던 사람도 있을 거 같고, 오늘 처음 보는 사람도 있을 거 같네. 인사들하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친한 형님이셔. 인사들 하고, 시켜 논거 들이라 해라."


사시미 세트가 나오고 B가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듯 맥주잔을 모은다. "선배, 선배 잔 주세요. 제가 끝내주게 맙니다"며 넉살 좋은 웃음을 내보이는 B에게, 난 맥주잔을 두 손 모아 건넸다.  주인공인 A는 언제나처럼 묻는 말에만 답한다. 쿨한 건지 원래 성격인지 1년 가까이 같은 팀에서 지냈지만 오늘도 헷갈린다. 그래도 오늘 주인공을 위해 내가 좀 더 수고하자는 마음으로 A와의 대화를 이어갔다. A의 새로운 인생에 상당한 호기심을 보이고 있다고 비춰야 도리일 거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돈다.  한 시간여 지났을까, A가 입을 열 기회가 눈에 띄게 줄고 있다. 수십 번도 더 들었을 팀장의 개인사가 줄줄이 비앤나 소시지처럼 꼬리를 문다. 피곤해 보이던 A는 이제는 곧 졸 거 같은 모양새다.


지루하게 30분 정도 더 시간이 흘렀다. 허기를 채우기 위한 젓가락질도 흥미를 잃었다. 술은 취하지 않고, 엉덩이만 근질댄다. 팀장의 말을 끊어야 한다는 사명감 또는 도전 정신이 생긴다. 기회를 엿보며 마음을 다잡고 있는데 팀장이 이제 일어나잔다. 송별회 자리에서 유일하게 귀가 쫑긋했던 순간이다. 

밖으로 나온 팀장은 간단히 한잔 더 하자며 물주의 어깨에 팔을 얹는다. 당연한 수순이다. 주인공 A는 자연스럽게 작별 인사해야 할 처지다. 팀장은 2차 의향은 생략하고 A를 껴안으며 하나마나한 말을 늘어놓는다. A는 상당히 어색한 미소를 짓는다. 팀장 품에서 벗어난 A는 이제 좀 활기를 찾은 듯하다. 난 뭐라도 해야 하나, 라는 조급함에 A의 손을 꽉 잡고 마지막이 될 언어들을 잠시 주고받았다. 무슨 말을 했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난다. 


그렇게 우리는 주인공을 보내고 노래방으로 향했다. 역시나 팀장의 단골인 그곳에서 누구는 이제부터 취해보자는 심사로 악착같이 술을 찾고, 누구는 스피커의 소음으로 들리지도 않은 대화에 진정성을 알아달라는 식의 박장대소를 해대고, 또 다른 누구는 어느 시점에 여기를 벗어나야 가장 나이스 한 타이밍일까를 궁리하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송별회 이틀 뒤 A는 "그간 감사했습니다. 전 이만 나갑니다"라는 메시지를 남긴 채 '팀 단톡 방'을 떠났다. A의 글에 답글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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